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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오이 Jul 13. 2018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제보다 오늘 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

생각보다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옷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얼마 전 새로 산 원피스가 눈에 띈다. 오늘은 기필코 저 화려한 원피스를 꺼내 입으리라, 손을 뻗어 결국 집어 든 것은 어제도 입은 검정 셔츠이다. 나는 오늘도 안전한 선택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였나.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예전처럼 엉덩이가 가벼워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나오길 기다리다 마침내 나를 발견하곤 나의 얼굴과 머리 모양 등을 면밀히 평가할 것이 분명하고, 특히나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라면 옆집 오빠와 절대 마주칠 수 없었다. 나는 잠깐의 외출에도 엄청난 공을 들였다. 행여 앞머리가 바람에 날릴까 단단히 붙잡고 그렇게 도망치듯 슈퍼로 뛰어갔다.




옷을 입었을 때 실제보다 말라보였으면 한다. 내 팔에 붙어 있는 살들을 누구에게도 들킬 수 없으므로, 30년 넘게 민소매 착용을 기피한다. 옷장에는 대부분 어두운 계통의 옷들이 걸려있다. 노란색과 흰색처럼 밝은 계통의 옷은 거의 입지 않는다. 반면 남자 친구 S는 입었을 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옷을 고른다. 가끔 이해하기 힘든 요란한 옷을 고를 때가 있는데 본인이 스스로 멋지다고 느껴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S는 철저히 본인 위주의 사고를 한다.
남을 의식하면서 옷을 고르는 나와는 많이 다르게.










검정 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선다. 앞, 뒤, 옆모습까지 꼼꼼히 들여다보고 이 정도면 괜찮아 보이겠지, 마음이 놓일 때쯤 신발을 신는다. 신발장 앞에서 한 번 더 내 모습을 체크한다. 다들 오늘 내 모습을 얼마나 궁금해할까. 조금 두근거리면서 현관문을 연다. 그리고 자, 드디어 내가 거리로 나왔으니 마음껏 봐주세요. 신경 많이 썼으니까.


오늘 하루 나와 마주친 사람은 핸드폰에 시선을 빼앗긴 사람, 바삐 내 옆을 스쳐간 사람, 아이들 챙기느라 여념 없던 사람, 생각에 빠져 먼산을 바라보던 사람 등이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몇 초 뒤 내 얼굴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쯤 되면 거울 앞에 서있던 내 시간이 참으로 아쉬워진다. 어쩌면 화장도 하지 않고, 케첩이 튄 허름한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어도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을 거다. 문득 나는 외로워진다. 원래 사람들은 남한테 별로 관심이 없는데 나만 남들의 생각과 시선에 온통 관심을 가지고 에너지를 쏟는 것 같아서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 내일은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을 좀 더 줄여보자고 다짐해본다.


'마음 편히 갖자. 사람들이 내 세상의 배경으로 존재하듯 나도 사람들의 괜찮은 배경이 되어주면 그만인걸.'





몇 년째 뚜렷한 사회적 성과가 없었으니 그들의 시선에서 나는 게으름뱅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충분히 치열한 시간들이었다. 삶의 대부분을 일에 바치는 동안 사소하게 지나친 중요한 행위들을 제대로 시작해보았다. 나의 기분은 어떤지,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더 많이 물었고 가장 가까운 가족을 더 자주 생각하였으며 친구들과 더 진득하게 대화하였다. 나는 그간 참 많이 놓치고 살았다 싶다. 늦게나마 부스러기처럼 흩어진 소중한 것들을 잘 쓸어 담는 중이다. 제대로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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