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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다 May 11. 2020

감기, 우울함

감기와 나, 링거 그리고 비

2018년 8월 어느날의 일기, 날씨 비


사계절내내 감기를 달고 사는 이들이 있다. 나와 엄마도 그 중 하나.


감기에 걸리면 보통 훌쩍, 코가 막히고 기침이 나오며 재채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양반이다.


올여름에도 난 어김없이 훌쩍훌쩍, 입사한지 반년밖에 되지 않은 회사에서 하루 종일 코를 훔쳤다. 입사 당일에도 신종플루에 걸려 타미플루를 먹으며 첫출근을 했다. 그 땐 일주일 내내 사무실 전체에 꽤 치명적인 소음을 발생시켰다.


감기에 걸리면 동반하는 증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위에서 말했던 아주 기본적인 증상 외에도 두통을 동반한 전신 근육통, 오한, 발열. 뭐 더 많지만 감기에 대한 증상은 이쯤만 말해도 모두 안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다. 오늘만해도 나는 그 감기로 링거까지 맞고 왔다. 회사와 병원의 점심시간이 겹치면 업무 시간 중간에 맞고 와야한다. 덕분에 아미노산 링거를 혈관에 들이 붓는 수준으로 때려 맞았다.


앞서 말했지만, 감기를 일년 내 달고 다니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엄마도 있다. 대체적으로 감기에 약한 유전자를 타고난 듯 싶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열중해있을 무렵 지갑 하나만 들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얇은 여름바지 왼쪽에는 신경안정제인 천심 상자를, 오른쪽에는 카드지갑을 꽂아놓으니 양쪽 주머니가 각 진 모양으로 우스꽝스럽게 튀어나왔다. 회사를 나오자마자 전속력으로 뛰어-그래봤자 빠르지 않은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뒤 가장 빨리 맞을 수 있는 수액을 골라 맞았다. 그 와중에 혈관이 가늘어 주사를 꽂는데 10분이나 소요됐다.


한 시간이 지났다. 보험청구서류까지 잘 챙기고, 병원에서 개업 기념이라고 나누어준 각티슈 3개를 잘 챙겨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폭염에 내리는 비가 반갑긴 하다만, 우산 없이 사무실로 돌아가려면 곤란했다.


왜 인간은 아직도 감기를 정복하지 못한 걸까? 인간이 우주에 가는 세상인데 의학의 발전은 이렇게나 더디다.


이제 한국도 거의 열대지역 우기에나 내릴법한 스콜처럼 비가 내린다. 오늘의 나에겐 다행이었다. 비가 빨리 그쳤으니까. 덕분에 아가미로 숨 쉬어도 될 법한 습기 속, 안개처럼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사무실로 무사히 돌아왔다. 점심까지 먹으러 나갈 시간이 없어 휴게실에 놓인 컵밥으로 때웠다.


아미노산과 비타민 B와 C와.. 의사 선생님 말씀에 뭔가 좋은게 많이 섞인 영양제를 맞고 나니 좀 살만 했다. 2호선 퇴근길은 사람의 존엄성과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모두 앗아간다. 내 몸이 이정도로 축난 것도 그 망할 놈의 2호선 퇴근길의 역할이 크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2018년 7월말 8월초의 만원 지하철. 쓰러지지 않은 내 자신이 기특하다. 문자로 죽겠다고 그렇게 애원을 하니 그제서야 조금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연명하며 퇴근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쪼록, 지하철을 타든 말든 감기는 조심해야 한다. 몸이 너무 지친다.


감기 얘기를 계속 하다보니 생각나는데, 우울증을 왜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걸까. 그건 인간이 우울증을 정복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사고가 반영된 것인가? 감기처럼 말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심하면 합병증을 거쳐 사망에 이르는 감기. 물론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변종 감기가 등장하고 있으니, 미래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감기. 난 분명 인간의 멸망은 그런 사소한 질병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소한 감기, 그런 감기같은 우울증?


둘 다 내 옷인마냥, 운명인 마냥 항상 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마음의 감기가 우울증으로 불리는 데 많은 불만이 있다. 감기는 힘들지만, 낫긴 낫는다. 변종 감기가 아닌이상. 우울증을 마음의 변종 감기라고 부르진 않지 않나? 감기와 비교할 대상은 우울'증'이 아니라 그냥 '우울'이다.


사람들에게 감기가 얼마나 괴로운 질병인지, 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안다. 그냥 괴롭다는 거, 어떤 증상이 있다는 거. 다 안다. 그런데 우울증도 그런가? 우울은 맞다. 나 우울해. 뭔 말인지 사람들은 다 안다. 하지만 나 우울증이야. 라고 했을 때도 알고 있는걸까.


우울증을 단순 의지의 문제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내 시냅스 사이에 신경전달 물질이 떨어지고 도파민이 제대로 생성이 안되고 변연계와 해마의 상호작용이 잘 못 이루어져 우울증에 걸렸어. 라고 설명해줘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더이상 설명하고 싶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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