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사 Aug 26. 2020

나는 잠자기 직전이 가장 무섭다

낮잠을 잘 자야 밤잠도 잘 잔다는 믿음과 경험하에 돌 전까지 내 모든 관심은 아기 낮잠에 있었다. 낮잠을 잘 자야 나도 낮이든 밤이든 충분히 쉬고 다음날 다시 육아에 전념할 수 있으니.


아기의 수면 교육은 꽤 성공적이었다. 태어나서 줄곧 분리 수면을 했고 7개월 차에는 방 분리도 해냈다. 뒤집기, 되집기를 하기 시작한 아기는 혼자 슈퍼싱글 침대를 대굴대굴 굴러대며 행복한 밤잠을 잤다. 아침 7시에 일어난 소리가 들리면 '똑똑'하고 아기 방문을 두드린다. 그러고는 미소를 띠며 아기를 안아주러 갔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게 과거형이 됐다. 아기의 기질이 그간의 수면교육도 이겨먹은 것. 지금은 자러가기가 무섭다. '애가 또 언제 일어나려나.' 돌 이후 한동안 내 몰골은 신생아 엄마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 아기는 에너지가 넘쳐난다. 에너지만 많으랴. 흥도 많다. 뽀로로가 그랬던가 '노는 게 제일 좋아~' 우리 아이 18번 예약이다. 말 하기 시작하면 저 노래를 본인 타이틀곡처럼 부르고 다닐 듯하다.


아기가 점점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밤에 깨서 놀기 시작했다. 그게 돌 전후다. 마치 누우면 눈을 감고 일으켜 세우면 눈 뜨는 목각 인형처럼. 잠을 자기 시작하고 5-6시간쯤 지난 아기는 에너지가 완전히 충전된 로봇처럼 눈을 번쩍 뜬다.


아기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더 이상 나에겐 도망갈 곳이 없었다. 새벽 두세시. 자다 일어난 아기는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 '엄마 엄마 어딨어.' 그래서 우는 게 아니라 반짝이는 눈으로 레이저빔을 쏜다. '어딨어? 나랑 놀자!!!'


처음에는 그저 신기했다. 아기가 침대에서 기어 나와 안방까지 왔다. '우리 아기 많이 컸다'하고 쓱 안아서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토닥토닥 좀 해주니 다시 자더라. 이때까지는 할만했다.


걸어 다니고 더욱 사람답게 되자 자기주장과 의지도 한껏 강해졌다. 이제는 걸어와서 안방 문을 밀고 들어온다. 말은 하지 못해도 그의 눈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지금이 몇 신데 누워 있나? 나랑 놀자!' 아가야, 새벽 2시 45분이란다.


돌쯤부터 우리 아기의 새벽은 노는 시간이 됐다. 배고파서 그런가 하고 밤수를 해봤다. 잔다. 그러다 치아우식증이 걱정된다. 물로 갈음해줬다. 물만 마셔도 곧잘 자네? 배고픈 건 아닌가 보다. 그럼에도 계속 깬다. 철분이 부족하면 밤에 뒤척인대서 일부러 소고기도 권장량보다 넘치게 먹였는데도 이렇다. 비타민D가 부족해도 그런대서 내가 살이 빠지도록 밖에서 나가 놀아준다. 잠에 빠질 때는 곯아떨어지는데 그래도 새벽에는 깬다. 대체 뭘까.



소아과에 물어봐도 '그걸 왜 물으시냐'라고 반문한다. 밤에 깨는 게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딱히 처방을 해줄 수 없단 것이다. 중이염인지 확인도 해봤지만 그것도 아니다. 철분 부족이라고 하기엔 양상이 다르다고 한다. 철분 부족이면 그냥 잠을 잘 못 자서 힘들어한다니 확실히 우리 아이랑은 다르다.


동대문에서 알만한 사람은 안다는 은둔의 약사에게 찾아갔다. 오동통통한 아기 팔을 쓱 잡더니 씩 웃으신다. '애가 건강하네.'


그냥 애의 기질이 그런 거라고 한다. 에너지가 넘치니 새벽에도 깨서 놀고 싶어 하는 애라고. 부교감신경을 자극해서 좀 릴랙스 해줄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게 처방의 전부였다. 철분도 비타민D도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아녔다. 애가 그냥 놀고 싶은 거랜다.


그래서 나는 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새벽 2~3시에 고군분투한다. 아기는 놀려고 난리를 치고, 나는 어떻게든 자는 시간임을 인지하게 해 주려고 두 시간 동안 자는 척하고 자장가 불러주고. 그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반복되고 있다.


한동안은 이런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잠을 못 자게 하는 것도 고문의 한 방법이라고 하지 않나. 내가 딱 그 고문을 당하고 있는 거다. 낮에는 좀비처럼 비틀거리다 너무 힘들면 울기도 하고. 밤에는 잠에 드는 게 두렵다. 좀 자려고 치면 애가 일어나곤 하니.


그런 삶이 2, 3주쯤 지났을까. 어느 날은 애가 낮잠도 자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그런 애한테 '좀 자!'라고 소리를 치고 나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더라. 호통치는 엄마한테 놀란 아기는 파르르 떨며 나한테 다시 달려 안긴다. 그 얼굴을 보니 내가 뭐한 거지 싶었다. 아기가 날 괴롭히려고 그러는 게 아닌데. 세상이, 또 엄마 아빠와 노는 게 너무 즐거워서 자지 않고 싶을 뿐인데 '엄마는 왜 화를 낼까. 내가 엄마랑 놀려는 게 싫은가?' 아기가 이렇게 생각하게 될까 두려움이 밀려온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에게 '그게 아니라 엄마 피곤해서 그래'라고 백번 천번 이야기한들 뭐가 바뀌겠나. 아기는 내가 호통칠 때의 그 분위기와 공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기가 밤잠이든 낮잠이든 남들보다 덜 자려고 하는 행동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아기가 악의가 있는 게 아니라 기질인 거다. 우리 아기는 호기심이 많고 내가 정말 잘 놀아줘서 그런 거다. 내가 상황을 보는 눈을 바꾸니 그나마 할만해졌다. 이제는 새벽에 애가 깨면 그러려니 하고 가서는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응 다른 사람들 자는 시간에 일어났구나'하곤 비위를 맞춰준다. 가끔씩 밤에 깨지 않고 푹 자주면 그렇게 고맙고 더욱더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남들 자는 시간에 나도 잘 수 있다는 게 이리 큰 행복이 될 줄이야.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육아카페 등에 수시로 글을 올린다. '애가 잠을 안 자요' '2시간마다 일어나는 아기 때문에 미치겠어요' 등. 아기 잠 문제는 육아의 질과 직결돼 서다. 애가 자지 않으면 정말 고통스럽다.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사람들이 '100일의 기적'을 바라는 이유가 아기가 밤에 내리 몇 시간 자길 바라서 때문이지 않나. 근데 기적도 없이 계속해서 자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된다면 어떻겠는가. 삶 자체가 형벌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심호흡 좀 하고 아기를 아기로 보면 분명 내려놓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아기인데, 수십 년 더 살아본 내가 한발 물러서야지, 맞춰줘야지. 체력적, 정신적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니까. 부모니까 그러고 사는 거지 뭐. 나 역시 당분간 몇 년은 불침번 예약이다.



Photo by James V Sajeeve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전생은 무엇입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