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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수의힘 Nov 15. 2024

수능 연기의 추억

그땐 그랬지...

2017년이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갓 옮겨 온 1년 차 신임 기간제 교사였으며, 1학년 담임이었다. 수능날이 다가오자 학교는 수능 준비를 위해 매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중에 가장 민감한 사항은 수능 감독을 정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도 감독을 자진해서 한다는 사람은 없었다. 수능 감독은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가 극에 달하는 일이다. 그냥 서 있기만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도 물론 있으시겠지만, 그냥 아무 곳에서나 5시간 서 있는 것과 수능 시험장 한 복판에서 5시간을 서 있는 건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신적 피로가 극심한 일이다. 굳이 상상해 보시겠다면 회사 임원진들이 심각한 회의를 하는 상황에서 그 옆에 그냥 5시간 동안 서 있는 일을 상상해 보시면 되겠다.


다행히도 난 수능 감독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아무래도 신임 기간제 교사에게 감독 업무를 맡기는 것은 학교 차원에서도 부담스러웠으라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수능 전날 교실을 청소하고(학생들에게 맡겨야 하지만 학생들이 청소한 걸 그대로 뒀다간 그다음에 수험생들에게 고소당할 수도 있다.) 완벽하게 내 교실을 수험장으로 탈바꿈시킨 뒤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세시 정도로 기억한다. 포항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진이라니, 그것도 강력한 지진(당시 기억으로 5.5)이 발생하여 온 뉴스가 지진 관련으로 떠들썩했다. 

'세상에 우리나라에서도 지진이 발생해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럼 내일 수능은?'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어찌 보면 교사로서는 당연한 본능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교나 건물들이 많이 파손되었는데 그럼 저 지역 학생들은 수능을 어디서 보지? 갑자기 교실을 확보하려면 그것도 보통 일은 아니겠는데? 게다가 포항에 사는 학생들을 다른 지역으로 실어 나르려면 버스 같은 건 어디서 대절하지? 이런 고민들이 떠올랐던 것 같다. 



그리고 저녁 무렵 갑자기 수능 연기라는 발표가 나왔다. 나는 그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었다. 수능을 연기할 수 있다니,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영어 듣기 시간에는 착륙을 하지 않는다는 수능 시험 아닌가. 수능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했던 대청소와 시험장 준비를 위해 했던 온갖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나는 계속 '수능을 연기할 수도 있다고?'를 되뇌었었다.


그래 맞다. 중요한 시험인 것은 맞지만, 그게 학생들의 안전보다 중요할 순 없지. 나도 문득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의 안전보다 수능이라는 행사가 문제없이 치러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수능을 준비하고 있을 포항의 수험생들은 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일 텐데 그것조차 생각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큰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저 먼 곳의 학생들도 결국은 우리 학생들일 텐데.


학교는 하루 휴업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수능 전날 시원하게 책을 버린 고3학생들의 울분이 온 인터넷을 떠돌았다. 그러나 그냥 수능을 강행하지 왜 수능을 연기했냐고 탓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들을 다들 했었으리라.


고등학교만 10년 근무하며, 나도 모르게 그만 학생의 안전보다 수능 시험을 우선시했음을 인정한 바로 그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통렬한 반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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