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재도입된 피파(FIFA) 에이전트 제도*의 첫 시험에서 탈락의 쓴을 본 후, 업무를 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격증이 없어 생계에 위협(?)을 받는 속이 타는 상황이 작년 말까지 이어졌다.
*FIFA에서는 대리인 등록제에서 2023년 시험을 통한 FIFA 에이전트 제도로 규정을 바꾸었다.
당연히 통과할 줄 알았던 시험을 재수한 끝에 간신히 유예기간 내에 피파 에이전트 자격증을 취득에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 가깝게 지내는 멘토를 통해 배구계에 종사하는 지인을 소개받게 되었다.
그분과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새로운 사업 분야로 배구 에이전시를 구상 중이며 해외 관련된 에이전트 업무를 함께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배구도 이런 시장이 있구나, 재미있겠네.'라고 생각했다. 평소 배구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보는 게 전부였지만, 배구도 국제 공인 에이전트 제도가 있다는 말에 문득 관심이 생겼다.
특히 많은 축구 구단들이 배구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현재 하고 있는 축구 에이전트 일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터키 페네르바흐체 SK의 공식 홈페이지. 배구 선수 김연경과 축구 선수 김민재의 전 소속팀
소개받은 분께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고 조사를 해보니, 전 세계에 배구 에이전트가 100명도 되지 않는다는 점과 에이전시의 에이전트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부분이 나에게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장 자체가 축구에 비해 크지 않지만, 현재 내가 갖춘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대학교 졸업 후 오랜만에 피파 에이전트 자격증을 위해 공부를 하고 무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그리고 끝내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이 나를 다시 도전에 나서게 만들었다.
"그럼 제가 일단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겠습니다. 같이 한번 해보시죠." 호기롭게 파트너에게 이야기한 나는 우선 공부를 위한 교본 제본을 주문했다.
공부는 무조건 아날로그 방식으로
물론 피파와 같이 FIVB(국제배구연맹) 시험도 전부 영어로 진행이 되므로 공부도 영어 자료를 가지고 해야했다. 축구 이적 제도와 선수 계약 규정을 공부한 지 얼마 되지않아서인지, 배구 규정도 꽤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배구만의 특이한 부분이라고 하면 성전환 (트렌스젠더) 선수들에 관한 출전 조항이 있어, 세계 배구계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보통 축구의 '제3자 소유권 금지 조항'* 처럼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규정이 생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선수와 구단, 에이전트 외 제 3자가 선수 이적으로 인한 이윤을 나누어 갖고, 고용 관련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
나는 본업이 무색하게도 축구를 업무가 아닌 (내 클라이언트가 뛰는 경우가 아닌) 여가로는 자주 시청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배구의 규칙을 익히고 흥미를 갖기 위해 관련 유튜브 영상도 보고 애니메이션도 찾아보며 스스로 동기부여를 했다.
'실내에서 훈련하고 경기하니까, 배구 에이전트를 하면 춥거나 덥지는 않겠다.'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다른 종목과 비교해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3개월간 다시 학생의 마음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대망의 시험 날, 안타깝게도 시험 날의 타이밍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시험 당일 나는 몽골에서 온 유소년 팀의 전지훈련을 고양시에서 함께 숙식을 하며 진행하고 있었다. 비록 온라인 시험이었지만,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시험의 특성상 집중하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다. 우선 친구였던 몽골 팀 감독에게 잠시의 부재를 양해받은 뒤, 숙소 방 책상 앞에서 긴 심호흡을 하고 문제를 풀어나갔다.
매일 꾸준히 공부한 덕분일까. 엄청 어렵다고 느껴지는 문제는 없었다. 제출 후 긴장이 풀린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 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3주가 지나갔다. '이건 무조건 합격이다.'라는 시험 후 첫 느낌이 무뎌질 때쯤, 드디어 FIVB에서 합격 통보와 보증금 및 연회비 납부를 요청하는 메일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세계 98번째 배구 에이전트가 되었다.
딱 100번이 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98번째 FIVB 에이전트가 되었다.
운이 좋게도 자격증 취득 후 바로 함께하는 파트너들과 좋은 케이스를 맡아, 벌써 배구 에이전트로서 해외 미팅도 다녀오고 계약도 따낼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좀 지난 뒤 브런치에서...)
이번에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
1.어른들 말 틀린 게 없다. 역시 공부가 제일 쉽다.
2.적당한 스트레스는 건설적인 고민을 하게 한다.
3. 새로운 도전은 삶에 활력을 가져다 준다.
4. 세상은 참 넓고,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배구를 공부하면서 특정 스포츠 산업에 대한 인사이트가 넓어진 것은 스포츠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어느 정도 이 종목에서 자리를 잡고 시간이 생기면, (내년 혹은 내후년쯤) 에이전트 제도가 있는 e스포츠, 야구, 농구도 공부해 보고 싶다.
또, 에이전트 시험 자체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어 아카데미를 운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벌써 4개월 밖에 남지 않은 올해도 빠르진 않지만,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