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십 시작
지금은 많은 나라를 다니고 있지만, 당시에는 캐나다와 가까운 미국, 그리고 모국인 한국 정도만 가본 상태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이 유럽으로 졸업여행을 가는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그들의 사진을 소셜미디어에서 보며 컴퓨터로 지도를 찾아보던 기억이 난다. 그때를 돌아보면, 앞으로 내가 얼마나 많은 곳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상상도 못 했지만, 당시 서양 문화권이 아닌 아시아로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대학교와의 인턴십 프로그램 면접은 순조롭게 끝났다. 단 몇 가지 질문이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대학 간 협약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자매결연이 맺어진 학교의 학생들이 주로 참여했다. 그들은 학점이나 다른 혜택을 제공했지만, 우리 학교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학과가 없었고, 협약도 되어 있지 않아 학점 인정이나 급여 제공이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
“괜찮습니다.”
별로 상관없었다. 학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한 ‘보험’이자 ‘수단’이라고 생각했고, 실제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이론보다 더 가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럼 내부 검토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면접이 끝난 지 3일도 지나지 않아, 여름부터 인턴십을 시작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슴이 설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다니!
여행은 떠나기 전의 설렘부터 시작된다는 말처럼, 그때부터 중국어를 공부하고 대만의 영화, 음악, 역사 등을 찾아보았다. 특히 대만의 유명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여러 번 돌려보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인턴십을 시작할 대학인 타이베이 단수이에 위치한 ‘진리대학교(Aletheia University)’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봄 학기가 끝나고, 먼저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인턴십 시작일을 기다리며, 이번 여름은 케니와 자취방에서 며칠 지내기로 했고, 틈틈이 한국의 스포츠 경기도 관전하며 여름을 준비했다.
그리고 드디어, 첫 해외 출장지이자 나에게는 미지의 섬인 대만 타이베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 도착하니, 진리대학교 스포츠 매니지먼트 학과의 직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니카라고 소개하며, 내 짐을 챙겨 학교 캠퍼스로 안내해 주었다. 긴장해서였을까, 한국의 여름과는 다른 대만의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더욱 느껴졌다.
생각보다 잘 정돈된 도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지나, 좁은 골목을 지나며 대학교 캠퍼스에 도착했다. 학교의 첫인상은 굉장히 푸릇푸릇했다. 캠퍼스 내에는 대만의 첫 서양식 대학답게 'Oxford College'라는 명판을 단 오래된 건물과 교회가 연못 옆으로 보였고, 그 뒤로는 각 학과 강의실들이 있는 건물들이 운동장과 체육관 주변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인턴십을 관리하는 노아 교수님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학교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기숙사는 이층 침대로 되어 있었는데, 아래에는 책상이 있고 위에는 침대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이층 침대에서 자는 것이 소소한 꿈이었던 나는, 사다리를 올라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음에도 이층 짐대가 썩 마음에 들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영국 학생들이 인턴십을 하고 있었는데, 4인 1실 기숙사에서 나와 영국 친구 두 명이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기숙사 생활은 처음이라, 다른 나라와 인종의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너무 값지게 느껴졌다. 이미 인턴십을 시작해 2주 후면 떠나야 하는 룸메이트 루크와 조던은 둘 다 영국인이었지만, 루크는 부모님이 자메이카 출신이라고 소개했고, 조던은 LA로 가서 모델로 활동하고 싶다는 멋진 꿈을 가진 친구였다. 짐을 정리한 뒤, 인턴십 프로그램 스태프들과 함께 웰컴 디너를 먹고 숙소에 돌아와 바로 잠에 들었다.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첫날이 지나고, 출근 첫날 교수님이 내게 말했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대강의실에서 학과 학생들 전체 미팅이 있을 거야. 그때 자기소개 준비해.”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