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2다48855 판결 관련
甲 주식회사가 乙 은행으로부터 2억 원을 대출받으면서, 회사 소유 X 부동산에 채권최고액 2억 3천만 원의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주고, 그 대표이사 丙이 연대보증하였다. 그 후 甲 주식회사는 丁 은행에서 다시 1억 원을 대출받으며 위 X 부동산에 채권최고액 1억 2천만 원의 2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대표이사 丙이 연대보증하였다.
甲 주식회사가 대출금을 갚을 수 없자 丙은 연대보증인으로서 乙 은행에 대한 확정된 피담보채무액 중 5천만 원을 변제하였다. 乙 은행은 나머지 1억 5천만 원을 회수하기 위하여 X 부동산에 대한 경매를 신청하였고, X 부동산은 2억 원에 매각되었다.
이때 매각대금 중 집행비용을 제외한 1억 5천만 원이 乙 은행에 배당되고 남은 잔액을 누구에게 배당할 것인지 문제 된다. 丙은 배당요구를 하였다고 가정한다.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는 변제로 당연히 채권자를 대위한다(민법 제481조). 이에 따라 연대보증인 丙은 채권자인 乙 은행의 권리인 근저당권의 일부에 대한 권리를 근저당권 일부 이전의 부기등기 없이도 법률상 당연히 승계한다. 다만 민법 제482조 제2항 제1호에 의하면 "보증인은 미리 전세권이나 저당권의 등기에 그 대위를 부기하지 아니하면 전세물이나 저당물에 권리를 취득한 제3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후순위 저당권자를 이때의 저당물에 권리를 취득한 제3자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 되는데, 우리 판례는 이를 부정한다.* 따라서 연대보증인 丙은 1순위 근저당권자 乙 은행과 함께 乙 은행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2순위 근저당권자인 丁 은행에 우선하여 배당받을 수 있다.**
우리 판례가 보증인의 부기등기를 요하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민법 제482조 제2항 제2호의 제3취득자에 후순위 근저당권자가 포함되지 않음에도 같은 항 제1호의 제3자에는 후순위 근저당권자가 포함된다고 하면, 후순위 근저당권자는 보증인에 대하여 항상 채권자를 대위할 수 있지만 보증인은 후순위 근저당권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하기 위해서는 미리 대위의 부기등기를 하여야만 하므로 보증인보다 후순위 근저당권자를 더 보호하는 결과가 되는바, 이러한 결과는 법정대위자인 보증인과 후순위 근저당권자간의 이해관계를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조절하기 위한 민법 제482조 제2항 제1호와 제2호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후순위 근저당권자는 통상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선순위 근저당권의 담보가치를 초과하는 담보가치만을 파악하여 담보권을 취득한 자에 불과하므로 변제자대위와 관련해서 후순위 근저당권자를 보증인보다 더 보호할 이유도 없다.
이러한 사정들과 민법 제482조 제2항 제1호와 제2호가 상호작용하에 법정대위자 중 보증인과 제3취득자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규정인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보증인은 미리 저당권의 등기에 그 대위를 부기하지 않고서도 저당물에 후순위 근저당권을 취득한 제3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민법 제482조 제2항 제1호의 제3자에 후순위 근저당권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판시에 나타난 민법 제482조 제2항 제2호는 "제3취득자는 보증인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하지 못한다."고 정한다. 이때의 제3취득자에 후순위 저당권자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위 판례는 또한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민법 제482조 제2항 제1호와 제2호에서 보증인에게 대위권을 인정하면서도 제3취득자는 보증인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수 없다고 규정한 까닭은, 제3취득자는 등기부상 담보권의 부담이 있음을 알고 권리를 취득한 자로서 그 담보권의 실행으로 인하여 예기치 못한 손해를 입을 염려가 없고, 또한 저당부동산에 대하여 소유권, 지상권 또는 전세권을 취득한 제3자는 저당권자에게 그 부동산으로 담보된 채권을 변제하고 저당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으며(민법 제364조), 저당물의 제3취득자가 그 부동산의 보존, 개량을 위하여 필요비 또는 유익비를 지출한 때에는 저당물의 경매대가에서 우선상환을 받을 수 있도록(민법 제367조)하는 등 그 이익을 보호하는 규정도 마련되어 있으므로, 변제자대위와 관련해서는 제3취득자보다는 보증인을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당부동산에 대하여 후순위 근저당권을 취득한 제3자는 민법 제364조에서 정한 저당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3취득자에 해당하지 아니하고(대법원 2006. 1. 26. 선고 2005다17341 판결 참조), 달리 선순위 근저당권의 실행으로부터 그의 이익을 보호하는 규정이 없으므로 변제자 대위와 관련해서 후순위 근저당권자보다 보증인을 더 보호할 이유가 없으며, 나아가 선순위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에 대하여 직접 보증책임을 지는 보증인과 달리 선순위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에 대한 직접 변제책임을 지지 않는 후순위 근저당권자는 보증인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민법 제482조 제2항 제2호의 제3취득자에 후순위 근저당권자는 포함되지 아니한다.
후순위 저당권자가 보증인에 대해 채권자를 대위할 수 있는 이유로 판례는 ① 제3취득자와 달리 후순위 저당권자는 선순위 저당권의 실행으로부터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규정이 없고, ② 보증인과 달리 선순위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에 대해 직접 변제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을 들고 있다.
개인적 견해로는 이러한 이유 제시는 모두 불필요하다. 후순위 저당권자의 자격으로 보증인을 대위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생각해본다면, 후순위 저당권부 채권을 선순위 저당권자에게 양도하여 대물변제로써 선순위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를 변제하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으나, 이때도 후순위 저당권자의 지위가 아니라 양도한 채권의 채권자의 지위에서의 대위이다. 저당권 없는 채권으로 대물변제하였어도 대위는 인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후순위 저당권으로 선순위 저당권의 피담보채무를 변제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후순위 저당권자가 자신의 다른 재산으로 선순위 저당권자에게 변제하더라도 이는 후순위 저당권자의 지위에서의 변제가 아니라 그냥 이해관계 있는 제3자로서의 변제일 뿐이다.*** 판례가 제시한 이유 중 첫 번째는 후순위 저당권자에게 이해관계가 있다는 내용에 다름 아니고, 두 번째는 제3자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먼저 본 바와 같이 판례는 보증인이 후순위 저당권자에 대해 보증인이 채권자를 대위하기 위해 부기등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① 후순위 저당권자는 보증인에 대해 항상 채권자를 대위할 수 있다는 점, ② 후순위 저당권자는 보통 자신의 이익을 위해 ③ 선순위 근저당권의 담보가치를 초과하는 담보가치만을 파악하여 담보권을 취득하는 점, ④ 민법 제482조 제2항 제1호와 제2호는 보증인과 제3취득자의 이해관계를 상호작용하에 조절하는 규정이라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타당할 수 없음을 앞에서 보았다. 하지만 역시 이러한 이유 설시는 모두 불필요하다.****
대위(代位)는 축어적으로는 지위를 대신한다는 의미이다. 민법 제482조 제1항에서 변제자는 채권자의 지위를 대신하고, 그 효과로서 "채권 및 그 담보에 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채권자의 지위란 채무자와의 관계에서 인정되는 것이고, 담보에 관한 권리는 담보권 설정자 또는 그 승계인에 대해 행사되는 것이다.*****
그런데 선순위 저당권자와 후순위 저당권자는 상호 채권자-채무자의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담보권자-담보권 설정자 또는 그 승계인의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연히 동일한 담보권 설정자로부터 시간의 차이를 두고 담보권을 취득하여 법에 따라****** 담보물로부터의 변제에 우선순위를 부여받는 관계일 뿐이다. 따라서 보증인이 선순위 저당권자인 채권자를 대위하더라도 권리 행사의 상대방은 채무자 및 담보권 설정자 또는 그 승계인이고, 후순위 저당권자에 대해 변제자 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민법 제482조 제2항 제1호에서 '보증인이 저당물에 권리를 취득한 제3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한다는 의미는 제3자에 대해 채권자의 담보에 관한 권리를 행사한다는 의미이다. 동조는 보증인의 변제자 대위권과 후순위 저당권자의 저당권의 우선순위에 관하여 아무것도 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동조의 해석을 통해 양자의 변제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영미법의 경우 물권법 체계가 우리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비슷해 보이는 사안에서 어떠한 내용의 판단을 하였는지 보고자 한다. 여기서 보려고 하는 Bofinger v Kingsway Group Ltd 판결*******의 사실관계를 단순화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원고는 주택개발사업을 하는 B&B Holdings라는 회사의 이사이다. 위 회사는 사업을 위해 매수한 부동산들을 담보로 피고 Kingsway Group에 1순위 Mortgage를 설정하고 8,278,000달러를 대출받고, 원고는 그 채무에 대해 보증하였다. 그 다음 B&B Holdings는 피고 Rekley Pty로부터 1,400,000달러를 대출받고 동일한 부동산들에 2순위 Mortgage를 설정해주었으며, 원고는 그 채무에 대해서도 보증하였다.
B&B Holdings가 채무를 불이행하자 원고는 선순위 채권자인 Kingsway Group에 채무 중 일부인 1,519,234.40달러를 상환하였다. 위 채권자는 Mortgage 계약상 권리(Power of sale)를 행사하여 위 부동산들을 매각하여 매각대금으로 자신의 채권 전부에 충당하고, 후순위 채권자인 Rekley Pty에게 남은 잔액을 교부하였다. 또한 매각되지 아니한 타운하우스 2채에 대한 자신의 Mortgage를 소멸시켜 말소등기하고 그 소유명의를 후순위 채권자인 Rekley Pty에게 이전하였다. 이에 원고는 선순위 채권자인 Kingsway Group에 대하여는 그가 2순위 채권자에게 지급한 매각대금 잔액과 손해배상의 지급을 구하였다.
호주의 연방대법원(High Court of Appeal)은 원칙적으로 보증인의 채권자에 대한 대위(subrogation)********는 그 채권자보다 후순위 권리자에 우선한다고 본다. 보증인의 채권자에 대한 대위를 인정하는 근거는 보증인을 면책시켜주어야 할 주채무자의 최종적 책임에 있다. 주채무자가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채권자로부터 담보를 회수하는 것은 비양심적(unconscientious)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증인의 대위의 권리는 주채무자의 채권자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주채무자에 대한 관계에서 권리를 주장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그 채권자가 행사할 수 있었던 모든 지분을 주장할 수 있다.
보증인의 대위에 대해 후순위 Mortgage 채권자가 항변할 수 없는 이유는, 후순위 채권자는 선순위 Mortgage의 효력 범위를 초과하여 남는 부분의 권리를 취득하고 선순위 Mortgage의 존재에 대해 통지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선순위 Mortgage의 존재에 대한 통지가 없었다면 보증인의 대위가 우선할 수는 없다.
변제자 대위에서 대위의 의미는 채권자의 채권을 승계하여(우리나라의 통설) 행사하는 것으로서, 그 권리의 상대방은 채무자 및 담보권 설정자 내지 그 승계인이다. 따라서 변제자 대위권 사이의 관계를 정한 민법 제482조 제2항은 채무자 및 담보권 설정자 내지 그 승계인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적용된다. 그런데 후순위 저당권자는 그 자격으로 변제자 대위권을 취득할 수가 없다. 보증인의 변제자 대위권도 후순위 저당권자에 대해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보증인의 채권자 대위권이 후순위 저당권보다 변제에 있어 우선순위라는 결론은 민법 제482조의 해석으로 구할 수 없고, 민법 제370조 및 제333조의 일반원칙에 따른 것이다.
한편 오스트레일리아 판례법에서도 보증인의 대위권이 후순위 권리자에게 우선한다는 비슷한 결론에 이르지만, 후순위 권리자에 대한 통지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보증인의 부기등기를 요하지 않는다고 보는 우리나라의 판례와는 반대된다.
만약 후순위 권리자가 선순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던 상황에서 권리를 취득한 경우, 예를 들어 선순위 저당권이 원인무효의 사유로 말소된 이후 후순위 저당권이 설정된 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선순위 채권자를 보증한 보증인의 변제자 대위권이 우선하겠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 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2다48855 판결. 다만 이 판례의 사안은 보증인이 선순위 저당권의 피담보채무에 대해서만 보증한 것으로 보인다. 보증인이 후순위 저당권의 피담보채무에 대해서도 보증한 경우 어떠한 판결을 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 보증인은 변제증서를 제출하여 담보권의 승계인임을 증명하여 배당요구하여야 할 것이다.
*** 후순위 저당권자는 민법 제469조 제2항의 이해관계 있는 제3자에 해당한다. 편집대표 김용담, 주석 민법(채권총칙) 제4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4, 166면.
**** 논거 자체도 설득력이 부족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두 번째 이유는 보증계약이 선의에 의한 무상계약이라는 전제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유상의 보증계약(신용보증기금, 서울보증보험(주), 건설공제조합,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수많은 금융기관이 행하는 보증은 전부 유상계약이고, 위 판례의 사안도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인이다)이거나, 보증을 하면서 주채무자로부터 별도의 담보를 제공받는 경우에는 보증인과 후순위 저당권자를 달리 볼 이유가 없어 보인다. 마지막 이유는 그 취지가 분명하지 않으나, 민법 제482조 제2항 제1호와 제2호의 해석에서 제3취득자의 개념을 달리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짐작된다. 이런 의미라면 일응 타당하지만, 본문에서 본 바와 같이 각 호와 후순위 저당권자와의 관련성이 없다.
***** 담보권 관계는 물권관계의 하나로서 물권의 이전에 따라 그 물권관계도 승계된다. 예컨대 원인무효의 근저당권 말소등기 청구의 상대방은 현재의 명의인이고, 그 내용은 주등기인 설정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것이다(대법원 1995. 5. 26. 선고 95다7550 판결 등).
****** 민법 제333조, 제370조.
******* 239 CLR 269, [2009] HCA 44.
******** 대위는 형평법상의 원칙이다. 이러한 대위는 그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그 자체를 청구원인으로 할 수는 없고, 부당이득(unjust enrichment)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사건에 직접 적용하기 충분할 만큼의 요건을 제공하는 원칙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영국에서 부당이득을 하나의 법원칙으로 인정하려는 모습과는 다른 것이다.
********* 사실 위 판결에서 주된 쟁점은 보증인의 대위권이 인정될 때 대위권 포기의 사전 동의가 없는 상황에서, 채권자는 의제신탁(constructive trust)의 수탁자 지위에 있고 보증인에 대한 신임의무를 부담하는지였고, 피고들도 의제신탁의 성립 여부를 다투었을 뿐 보증인의 대위가 후순위 Mortgage에 우선한다는 법리를 다투지는 아니하였다.
특히 선순위 Mortgage의 보증인이 후순위 Mortgage에 대해서도 보증하였다고 하여 선순위 채권자를 대위하는 권리를 포기하였다고 볼 수 없고, 그 권리를 행사하더라도 형평(equity)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피고는 어차피 후순위 채권자에게 보증채무를 이행해야 하므로 위와 같은 대위권의 행사는 형평에 반한다고 주장하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