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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Jun 07. 2022

김호중과 케이윌, 케이윌과 김호중

“야, 너 엄마랑 김호중 콘서트 보러 갈래? 엄마가 예매 하마.”


인기 절정의 트로트 가수 김호중의 앨범을 내밀며 상기된 표정의 엄마가 들뜬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석쇠 위 곰장어처럼 반사적으로 소파에 앉은 자세를 뒤척이며 대답했다.


“아이 엄마, 그 사람은 도박도 했다던데요 무슨…”*


만약 내가 엄마였다면 “그러는 너는 마약 중독자 에미넴 음악은 왜 흥얼거리고 있냐. 남자를 약에 취하게 해서 재우고 도둑질을 한 카디비를 듣는 네가 할 소리냐. 이센스도 좋아하지 너?”라는 말로 입을 닫게 했을 거다.


‘트바로티’ 김호중이 소액으로 불법 스포츠토토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본인이 인정한 사실이라고 서술된 기사를 머릿속에서 지푸라기처럼 손에 잡히는 대로 움켜쥐며 말했을 뿐이었다. 


올림픽공원 주차장에 가끔 영탁이나 임영웅 얼굴을 거대한 크기로 래핑한 전세버스들이 제국군 함대처럼 정박해있을 때가 있다. 버스 주변에는 흰색 또는 하늘색 단체티를 맞춰 입고 약속한 듯 선글라스와 스카프를 착장 한 중장년의 여성들이 점령지를 순찰하듯 공원을 누비곤 했다. 카페 한 곳을 통째로 빌려서 팬 카페로 꾸며놓은 모습도 봤다. 극성맞아 보이지만, 넘치는 돈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 덕질을 하는 게 뭐 어떤가 생각했는데, 엄마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상상하니 그만 불효를 참을 수가 없어졌다.


엄마는 평생 바쁘게 일만 하며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남은 친구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친한 친구가 있어도 함께 공연을 보러 가자고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시간도 맞춰야 하거니와 음악 취향이란 게 우정과는 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DNA를 공유하는 아들이라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어렵게 꺼낸 말이었을 텐데. 이 정도면 유전자 가위니 뭐니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취향까지 이식할 수는 없는 건가 보다.


명제가 거짓이면 대우도 거짓, 명제가 참이면 대우도 참이다. 「콘서트를 같이 간다면(p), 나는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다.(q)」라는 명제를 가정해보자. 이 명제의 대우는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면(~q) 콘서트를 같이 가지 않는다.(~p)」이다. 당연히 김호중 콘서트를 같이 가지 않는다고 해서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대우가 거짓이면 참이 아닌 명제다.


명제와 대우, 역과 이는 고등수학(하)에 나오는 개념이다. 고교 졸업 이후에 수학을 멀리하면 이렇게 타인을 사랑하는 증거를 취향 공유와 희생으로 오해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전 여자 친구가 대전에 케이윌 콘서트를 보러 가자고 했을 때도 명제와 대우를 알았더라면. 공연장을 나오면서 연인에 대한 나의 애정을 의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케이윌이 세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며 펼치는 여성향 퍼포먼스에 어쩔 줄을 모르며 좋아하는 팬들 속에서 정말로 어쩔 줄 몰랐던 사람은 나였다. 팬도 아닌, 심지어 발라드는 우울감을 증폭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취향의 내게 케이윌의 공연은 자초한 고문이었다. 여자 친구가 가끔 내 쪽을 볼 때마다 애써지어 보였던 미소를 다른 이가 봤다면 입가 근육이 사후 경직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심심한 애도를.


“사랑이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느끼며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초인 니체의 말처럼, 사랑이란 타인과 나의 차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차이를 사랑한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거듭 설명하지만, 나는 김호중을 좋아하는 엄마를 사랑하는 거지 엄마의 가요 취향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저 존중할 뿐이다. 올해 보너스가 나오면 뒤늦게라도 예매해보련다. 부디 아버지가 엄마와 함께 가주시길.


P.S – …그런 의미에서 백예린을 좋아하시면서 공연도 즐기시는 분이 계시다면 안녕하세요, 당신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 기사 출처는 「김호중, 불법 도박 인정 “금액 떠나 죄송… 큰 죄책감 느껴”」, 정혜정 기자, 2020.08.19., 중앙일보를 참고했습니다. 저는 김호중 님께 악감정이 없습니다. 저야말로 죄 많은 사람입니다. 본인 또한 반성했고, 오래 전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는 2021년 12월 29일 불법 도박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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