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오셨나요?”
지난 토요일 오후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그림도시 전시회에서 태재 작가님이 내게 물었다. 그림도시전은 1·2층을 그림도시, 2층을 책도시라는 공간으로 구분 지어 작가들이 각자의 창작물을 전시하는 곳이었다. 이미 1층에서 인기 작가 부스를 둘러싼 인파에 밀려서 엽서 몇 장 사는 데에도 땀을 한 바가지 흘리느라 기력을 소진해버렸다. 원래 목적인 책도시에 닿기도 전에 돌아가 버릴 뻔한 것 치고는 겨우 받은 보람된 질문이었다.
“일행 있으신가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듣는 질문의 기출 변형이라 망치로 두들긴 무릎이 튀어나오듯 자연스럽게 “네”라고 대답했다.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저는’ 상상 속의 나는 이렇게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다시 돌아봐도 기억 속의 나는 너무나 혼자였다. 전시회를 나와서 서울로7017 고가를 걸었다. 만리동에서 회현역 사이 중간 정도까지 갔다가 다시 서울역 방향으로 걸었다. 큰꿩의비름이라는 식물 근처 의자에 걸터앉아 생각해보았다.
“포크는 한 개만 드려도 괜찮을까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접시 위에 포크를 두 개 놓아주는 직원이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성의를 봐서라도 꽃게처럼 양손으로 케이크를 퍼먹어야 할 것 같다. 전시회를 보러 간 날도 적당한 카페를 찾아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그림 연습하거나 미루고 미룬 글쓰기를 할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고가 위를 왔다 갔다 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니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연인이나, 친구나, 가족과 함께였다.
‘혹시 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 행세를 하는 무언가 인 게 아닐까?’
혼자여도 너무 혼자일 때는 압도적인 이질감에 무서운 감정이 들 때가 있다. 별거 아닌 걸로 여기던 것들이 세상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때 특히 오싹한 감정이 든다. 세상에. 이거 참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연인의 유무에 앞서 어째서 나는 함께 다니는 친구마저 없을까? 실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의 거의 전부가 가상의 인물들과 뒤섞여 SNS에만, 메신저에만 존재한다. 여전히 그들을 알고 지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혼한 사람은 기혼의 사정에 따라, 혼자 남은 사람은 자기 삶을 살기 바쁘다.
인생의 어느 시점을 지나서부터는 과거처럼 돈독한 친분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이 놀라울 정도로 절멸해버렸다. 그와 함께 내 안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몸의 일부가 괴사 했다. 머리가 잘린 닭이 힘차게 돌아다녔다는 도시 괴담처럼, 사회적으로는 죽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 자신이 소실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건지도 모른다. 없는 다리로 잘도 돌아다녔다는 괴담을, 얼굴 반이 날아가 버린 오래된 석상을 떠올린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길가에, 카페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커버 이미지 출처 : Nighthawks by Edward Hopper 1942(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