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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Jun 27. 2022

귀는 어째서 항상 열려있나요?

“사람이 말을 할 때는 눈을 쳐다봐야지.” 


눈 마주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해서 많이도 들었던 말. 어느 정도 지나니 눈동자를 똑바로 보지 않는다고 한 소리 듣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속으로는 욕을 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편하다. 동양 문화권 태생이라 눈을 쳐다보지 않는 게 익숙하다며 변명해본다. 섣불리 눈을 쳐다보면 건방지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마주한 사람의 홍채가 갈색 계통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바라보았던 때가 도무지 오래전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눈을 맞추고 긴 대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 지 오래다.


고개를 돌리고 자세를 고쳐 앉지 않으면 좀처럼 말할 일이 없다. 귀 근육을 32개나 갖고도 부르면 들은 척만 겨우 하는 고양이처럼 듣는 사람과는 좀처럼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다가와서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하는 식으로 최대한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네….” 해리포터에 나오는 디멘터처럼 뻥 뚫린 입으로 생기를 앗아가는 상상을 하며.


이런 식으로 한 명, 두 명 다가오는 사람들을 적잖이 ‘퇴치’했다. 자신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다가와서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마저도 말 걸기를 싫어할 만할 이유를 하나 만들어줘라. 지나치게 반사회적인 방법이라 선뜻 남에게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직접 인생에 적용하고 실험해본 결과 나쁘지 않았다. 말이 독처럼 느껴질 때는 그에 상응하는 독한 처방을 내려야 몸에 쌓인 독소를 빼낼 수 있다. 과하게 많은 말은 독이다. 이렇게 독한 마음을 먹어도 들어주지도 않는데 자기 멋대로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실은 승보다 패가 많다. 그래도 계속 싸운다.


모근이 더 싱싱하고 굵어지면 좋겠다. 피부가 지금보다 탄력 있고 투명해졌으면 좋겠다. 눈가가 건조한 날에도 콘택트렌즈를 낀 것처럼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또렷했으면 좋겠다. 신체 중에 지금보다 기능이 향상되지 않았으면 하는 게 하나 있다면, 귀다. 아니면 차라리 귀도 눈처럼 감았다 떴다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엔 카페에 갔다가도 다른 사람 소리가 시끄러워서 후회하는 미련한 짓을 곧잘 한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도 역부족이라서 진지하게 헤드폰 구매를 고민 중일 정도다.


짐작건대 인간이 생존하는 데 있어서 소리를 듣는 능력이란 무척이나 소중했을 것이다. 나의 조상은 아마 10미터 밖에서 맹수가 나뭇가지 밟는 소리도 돌비 사운드로 들을 수 있었기에 살아남아 자손의 자손을 낳아 나를 남겼을 거다. 이제 현대 사회에서 생존하는 그의 자손은 도처에 널린 천적인 목소리 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고통받고 있다.


이제는 남의 웃음소리마저 듣기 싫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시끄럽다. 상상이 가는가? 웃음에 전염되는 사람은 스트레스가 덜한 사람이다. 생각해보니, 회사일이 힘들 때는 어김없이 다른 사람의 웃음소리가 불쾌했다. 그리고 그건 꽤 높은 확률로 상태가 심각함을 알려주는 지표였다. 며칠 정도만 사람이 적고 조용한 동네에서 편히 쉬고 싶다.




* 커버 이미지 출처 : Photo by Jessica Flavi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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