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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Jul 04. 2022

지상 최악의 콜 포비아

가족은 현실이었다.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공항에는 마중 나온 가족이 있다. 반가운 웃음과 따뜻한 포옹이 있다. 때로는 눈물도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접하는 가정의 모습을 보며 지금 이상의 행복을 꿈꾼다. 마치 언젠가 지금보다 더 나은 연애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듯이.


프랑스와 영국에서 반년을 보내고 입국하던 날, 아버지는 ‘괜히 가봐야 정우가 싫어한다.’는 핑계 같은 팩트를 대며 귀국장에 오지 않았다. 반면 엄마는 마중 나와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멀리서부터 출구를 빠져나오는 아들을 알아보았다.


다녀오느라 고생했다는 엄마와 이야기하며 습관적으로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미니 사이즈 휴대전화 두 개를 무심코 꺼냈다. 오렌지텔레콤이라는 회사에서 판매하던 값싼 선불 폰이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그때그때 돈을 충전해서 현지 유학생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용도로만 썼던 전화기였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손바닥만 한 기계를 본 순간 표정이 굳었던 엄마는 잠깐 말이 없었다.


가끔 이메일 계정을 이용해서 짧은 글로 엄마와 소식을 주고받았던 나는 끝끝내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엄마는 국제전화비가 비싸서 집에 전화하지 않은 줄 알았을 것이다. 생활비를 직접 벌지 않고 집에서 수백 유로씩 보내준 돈으로 펑펑 쓰며 살았기 때문에 통화비 부담은 말이 되지 않는 핑계였다. 


나는 지상 최악의 콜 포비아였다. 몰래 숨겨둔 휴대전화를 엄마에게 들켰던 그때 인천공항 귀국장에서의 나는 누구보다 최악이었다. 그러니 그때보다는 나아졌겠지 하는 의구심으로 ‘∼였다’라는 과거형을 써본다. 세상에는 이토록 형편없는 아들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족의 현실이다. 부모님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과도 전화하지 않고 긴 시간을 문자 메시지만을 보내며 살았다. 


돌이켜보면 참 마음이 편했다. 문자 메시지만 주고받으며 생활하면 전화기가 길게 반복해서 울릴 일이 없다. 가슴이 두근거릴 필요도 없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곧바로 받아서 대화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여유를 두고 미루고 묵혀놓았다가 짧게 대답하면 되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예를 들면 ‘세시에 벨쿠르 광장 맥도날드 앞에서 보자.’고 문자를 보내고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나타나면 문제없었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완전한 내 세상이었다.


부모님의 잔소리도 이메일로 대신하면 한결 괜찮았다. 한 마디 다음에 다음 말이 있고 그다음 말이 이어지는 전화와 달리 몇 초 만에 읽으면 되니까. 어차피 해외 생활이 끝나면 한국에서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 불편한 편안함을 조금이라도 더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안락한 외로움. 시간을 끌지 않아도 되는 간편한 쓸쓸함의 대가다. 엄마의 실망한 표정은 머릿속에 오래도 남아있는데, 이게 가장 흉이 진 기억이다. 나는 이런 놈이었다. ‘어차피 전화는 다음에도 받을 수 있으니까’라고 여기는 현실이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안 지금은 엄마를 속이지 않는다. 오는 전화는 정말 받을 수 없을 때를 빼고는 재깍재깍 받는다. 목 아플 때 침 삼키기만큼 어려운 전화도 가끔 드린다. 나는 이런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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