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dly satisfying text that relaxes you
‘1 Hour Oddly Satisfying Video That Relaxes You Before Sleep with Calming Music(자기 전에 당신을 이완시켜줄 이상하게 만족스러운 영상과 차분한 음악 1시간)‘
유튜브에서 만족스러운 비디오(Satisfying Video)라는 영상을 삼십 분 넘게 보았다. 기계나 도구로 무언가를 자르고 부수고 새기고 칠하는 단순 작업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멍해지면서 빠져들었다. 그중에 거대한 분쇄기가 달린 포클레인이 건물 4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나무를 꼭대기에서부터 톱밥으로 갈아버리는 영상도 있었다. ‘목재인데 저렇게 갈아버리면 너무 아까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 나야말로 오래전부터 1열에 3개씩 쌓아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들을 깨고 자르고 부숴서 50개 밑으로 줄여버렸다. 그러고 나니 만족스러웠다. 아깝지 않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인스타그램 게시물 하나 올리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업로드할 사진을 고르고, 쓸 말을 적고, 해시태그도 고민해야 한다. 올리고 나면 다른 사용자와 소통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만큼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낭비 취급을 받는 SNS 게시물도 나에겐 공들인 노력이 담긴 작업물들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적립한 데이터다. 이들을 삭제하지 않아도 ‘보관’ 기능을 활용하면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데이터를 지우지 않아도 더 이상의 주목과 관심을 포기하고 버리는 셈이다.
몇십 개의 게시물 대부분은 나의 얼굴이 나온다는 이유로 안 보이게 치워버렸다. 세상에는 원하는 관심만 받으면서 원치 않는 관심을 차단하는 방법이란 없는 듯하다. 이미 신분을 노출하고 나와 내 고양이 얼굴을 종이에 찍어서 책을 낸 시점에서 원하지 않는 관심을 피할 길이 없어졌다. SNS 주소도 책에 적어버렸다. 회사 사람이 내 SNS를 볼 수 없게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사진이라도 모두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예 형체가 없는 채로 활동하기는 싫어서 낙서 수준이라도 그리는 법을 배웠다.
게시물을 없앤 더 큰 이유는 작년에 냈던 책을 알리느라 무수히도 많이 팔았던 발품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출간 초반 3개월은 죽어라 노력하라는 어느 출간 마케팅 책에 나온 조언대로 처음 몇 달은 다시 하라고 해도 못 할 정도로 책 홍보에 자신을 갈아 넣었다. 그러면서도 책 내용을 당당히 SNS에 공개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지는 않았다. 어쩌면 노력은 노력대로 했음에도 ‘나 같은 인간이 감히 책을?’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깎아내리는 ‘가면 증후군’ 일 수도 있다. 대신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저자가 직접 발로 뛰는 서점 영업’을 콘셉트로 잡은 나는 책 소개 자료를 파일에 넣어 동네 서점부터 돌아다녔다. 처음엔 서울에 있는 모든 교보문고를 돌아다녔다. 그다음엔 서울에 있는 모든 영풍문고를 돌아다녔다. 직장 다니면서 신간 매대에서 밀려나기 전에 가능한 많은 지점을 다니려니 몹시 고되었다. 연말까지 교보문고 포항공대점, 부산 센텀시티점까지 마침내 전국 교보문고를 모두 돌아다녔다. 발품은 오프라인으로 그치지 않았다.
키우는 고양이 때문에 어디를 가든 아침 일찍 가서 밤늦게라도 꼭 돌아오면서도 다녀온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람들은 고맙게도 호응해주었다. 영업을 뛰는 저자 이야기가 인스타그램 피드에 정사각형으로 점점 쌓이면서 내 스토리가 되었다. 하나씩 올릴 때마다 꽤 높은 숫자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렸다. 어떤 이는 나를 떠올리면 서점 영업 이야기가 생각난다며 그의 글에 응원의 뜻을 담아 소개해주기도 했다.
부산에 당일로 영업을 다녀오는 길에는 KTX나 고속버스 좌석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이미지를 편집해서 다시 아이폰에 옮긴 다음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진만 올릴 수 없으니 본문도 적었다. 해시태그도 너무 같은 것만 올리면 안 좋을 수 있으니 열심히 찾고 골랐다. 움직이는 공간 안에서 글 쓰는 일을 하면 쉽게 멀미했다. 게시물을 올린다고 끝이 아니다. 달리는 댓글에 답글을 달고 답방문도 가서 거기에도 댓글을 달아야 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밤낮으로 영업했다.
사실은 친한 지인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도 바로 대답하지 않고 길면 몇 시간 있다가 대답할 정도로 연락에 피로감을 느낀다. 그런데도 오프라인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의 관심이 내가 온오프라인으로 발품을 팔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나는 계속 움직였다. 그러다 지치고 지쳐서 도저히 불능이 된 순간에 깨달았다. 혼자 움직이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엇에 비유해야 하나. 요즘은 3세 이상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자동차도 뒤로 밀면 앞으로 나간다. 액션을 하면 피드백이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랬다. 내가 뒤로 가면 뒤로 가서 멈추고, 앞으로 밀면 단지 그만큼만 앞으로 움직이다 정지할 뿐이었다. 실질적인 인기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니 저자로서 노력하는 이상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때까지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내 책을 놓아주기로 했다. 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서 철칙처럼 지켰던 발품 팔이에도 회의가 들었다. 댓글에는 무조건 답글을 달고 방문엔 반드시 답방을 간다 한들 그때만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기브 앤 테이크가 끝나면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어떤 물질에 열을 가하면 온도가 올랐다가 열원을 멀리하면 식는 것과 같은 세상 이치다. 당연한 원리를 몸으로 겪어보고 고단함을 글로 적는 것은 어찌 보면 투정처럼 읽힐지도 모른다. 요즘 많이 보는 자영업 관련 유튜브를 보면 노력한 만큼 얻는 것이 당연하고 아무도 가게 주인의 고된 삶에 관심이 없는 것 또한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아직도 이 글에 차마 적을 수 없는 분함과 억울함, 가깝게 여겼던 사람의 무관심, 자신을 상품으로 내놓고 느낀 ‘현타’의 덧없는 감정 또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노력할 수 있는 땔감이 되기를 바라며.
SNS에서 자신을 파는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막대한 시간과 노력, 땀, 체력, 감정을 응축한 인스타그램 게시물들은 죄다 내리고 없다. 10장씩 중첩된 작은 네모들은 아직도 뜨겁다. 더는 남겨둘 필요도, 보여줄 이유도 없는 게시물을 지운 과정을 길게 쓴 이유는 첫째로 여전히 남은 미련을 마지막으로 털어내고 싶어서이다. 두 번째는 공들여 만든 무언가를 파괴하는 영상이 이상하게 만족스럽듯이(Oddly Satisfying), 지극한 노력으로 기록한 사진과 글을 없애게 된 과정을 담은 이 글이 누군가에게 묘한 만족감을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파괴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생산이다.
* 커버 사진 출처: Vapaaseen kaupalliseen käyttöön, Nimeämistä ei edellytetä(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