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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게구름 Oct 13. 2019

인공지능 미술의 태동(1960년대)

"溫故知新(온고지신)", 미래를 그려보는 데 있어 효과적인 방법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했고 그 당시 사람들의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앞의 글에서 소개했던 벨라미 초상화, 넥스트 렘브란트와 같은 인공지능 작품 역시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의 고민을 현대 기술을 사용하여 해결하면서 탄생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주된 줄거리가 되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얘기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한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곡을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알고리즘을 찾아내려고 했다. 냉철한 이성적 분석도 재능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살리에리는 "신이시여, 왜 내게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주셨으면서, 음악을 만드는 재능은 주지 않으셨습니까?"라고 신을 원망한다. 창조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은 꿈은 어찌 살리에리만의 것이겠는가. 음악, 미술, 문학 등 모든 예술 영역에서 거장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1946년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이 등장하고, 앨런 튜닝(Alan Mathison Turing) 은 1950년에 발표한 <계산 기계와 지능 -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라는 논문을 통해 인공지능에 대한 개념적 토대를 놓았다. 그리고 1956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 있던 존 매카시(John McCarthy) 교수가 개최한 다트머스 회의를 통해 처음으로 인공지능(AI)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앨런 뉴얼(Allen Newell)과 허버트 사이먼(Herbert Alexander Simon)은 컴퓨터가 체스 세계 챔피언이 될 것이며, 미적으로 가치 있는 음악을 작곡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1차 인공지능 붐(Boom)의 시작이다. 


인간 고유의  지적인 활동을 일면 흉내 낼 수 있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살리에리의 꿈을 향한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가장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되던 예술 세계를 수학과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하여 창조의 비밀을 밝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기계에 의한 창출도 가능하다고 믿는 예술가 그룹이 등장하게 된다. 음악과 문학 분야는 1950년대부터 컴퓨터로 창작물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미술 영역은 10년 정도 늦게 시작됐다. 이것은 미술의 특징인 공간성과 비정형성 때문이다. 음악과 회화를 비교해 보자. 음악은 도, 레, 미, 파, 솔, 라, 시, 7개 단위 요소의 시계열적인 배열로 단순화하여 볼 수 있으며, 화성법이라는 정형화된 문법 체계도 가지고 있다. 반면 회화는 2차원 공간 상에 각양각색의 무수히 많은 점, 선, 면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을 배치하는 정형화된 규칙도 없다.  한마디로 컴퓨터로 회화를 다루는 것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PC에서 순차적으로 문자열로 된 명령어를 입력하는 DOS 체제가 90년대에 들어서야 그래픽 기반의 윈도우로 바뀐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60년대 들어 컴퓨터 예술(Computer Art)이란 이름으로 컴퓨터가 미술에 접목되기 시작한다. 컴퓨터 예술의 선구자는 소위 3N이라고 불리는 A.Michael Noll(미국, 1949~), Georg Nees(독일, 1926~2016), Frieder Nake(독일, 1938~)이다.  그런데 3명 모두 예술가가 아닌 컴퓨터 과학자였다.  그 당시의 작업 환경은 1인 1PC 시대인 요즘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했다. 방만한 크기의 메인프레임 컴퓨터밖에 없어 연구소, 대학, 대기업 소속이 아니면 접근 자체가 어려웠다. 그리고 FORTRAN, ALGOL과 같은 언어로 프로그램을 작성해 펀치카드에 구멍을 뚫어 담당자에게 제출하면, 며칠을 기다렸다가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컴퓨터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은 시도조차 불가능했고,  미술에 관심이 있는 컴퓨터 과학자가 선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우선, 전자공학을 전공한 A.Michael Noll은 1961년부터 10년간 트랜지스터를 탄생시킨 곳으로 유명한 벨 연구소(Bell Laboratories)에서 근무했다. 1962년 여름 Noll은 FORTRAN으로 <Patterns>이란 이름의 작품들을 프로그래밍했다. 프로그램을 벨 연구소에 있던 IBM7090 컴퓨터로 처리한 후, microfilm-plotter로 출력된 화면을 사진 찍어 작품을 완성했다. 2개 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는데 다음 차례 점을 무작위(random) 적으로 생성하도록 프로그램되었기 때문에 <Patterns>는 아래의 그림처럼 서로 다른 길이와 방향을 가진 직선이 무질서하게 연결되어 있는 형태를 가진다. 

자료: Thomas Dreher(2015), History of Computer Art

Noll은 5개 <Patterns> 시리즈를 선보인 후 1963년 <Gaussian Quadratic>을 발표한다.  <Gaussian Quadratic>은 x축 좌표는 정규 또는 가우시안 분포를 보이고 y 축은 이차방정식으로 계산된 값을 갖는 99개 점이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Noll은 <Gaussian Quadratic>에 일정한 규칙성을 부여함으로써 정보 미학(Information Aesthetic) 관점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알고리즘을  <Patterns> 시리즈 보다 쉽게 구현할 수 있었다. (정보 미학은 질서와 복잡도의 조합 정도로 미적 가치를 판단하는 것으로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글에서 하겠다.) 1965년 4월 Noll은 뉴욕의 Howard Wise Gallery에서 최초로 작품을 전시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작품 활동을 그만두고 3차원 입력 및 디스플레이, 촉각 피드백 장치 등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한편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Georg Nees는 1951년부터 1985년까지 지멘스(Simens)에서 산업 수학자로 근무하면서 1969년 슈투트가르트 대학(Univ. of Stuttgart)에서 Generative Computergrahpik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박사과정을 시작한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컴퓨터가 스스로 그래픽 이미지를 생성해 내고, 이것을 미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이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Noll이 선을 이용했던 반면 Nees는 다각형을 랜덤하게 이동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다각형을 무작위적으로 이동시키다 보면 아래 왼쪽 그림처럼 어떤 부분은 아주 복잡하게 중첩되게 보인다. 이와 같은 '질서와 복잡성'의 관계는 미학적 가치 측정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여기서 얻은 미적 기준은 오른쪽 그림처럼 예술적으로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기반이 된다. Nees는 컴퓨터 예술의 결과를 밀링머신에 입력하여 조각 작품을 만들었으며, 건축 설계에도 응용했다. 그리고 다수의 전시회에 참여하여 컴퓨터 예술을 알렸고, 197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그의 작품이 특별 전시되기도 했다. 

Gerge Nees, Untitled(1967, 왼쪽), Gravel(1968, 오른쪽)

 마지막으로 Frieder Nake는 3N 중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수학을 전공한 Nake는 슈투트가르트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하면서 Nees의 지도 교수이자 정보 미학 대가인 Max Bense 강의에 영향을 받아 1963년부터 컴퓨터 예술을 시작했다. 1969년까지 compArt ER56 (1963-65), Walk-through-raster (1966), Matrix multiplication (1967/68), Generative aesthetics I (1968/69) 등 시리즈로 400개 가까운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1965년 11월 Nees와 함께한 슈투트가르트 전시회를 시작으로 개인 또는 단체로 다수의 컴퓨터 예술 전시회를 개최했다. Nake는 다른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보 미학 관점에서 작품을 제작했으나, 자신의 전공인 확률론을 접목시켰다. 이동 방향 및 거리와 발생 확률이 서로 다른 몇 개의 모드를 정해놓고 선 또는 도형이 특정 조건이 되면 모드를 선택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Nake는 1971년 'the Bulletin of the Computer Arts Society'에 컴퓨터 예술이 전쟁, 자동화로 인한 인력 대체 등에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는 글(There should be no Computer art )을 게재하여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1972년 독일의 Bremen 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컴퓨터 그래픽스, 디지털 미디어, 컴퓨터 예술, 상호작용 시스템 등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받쳤다.

Frieder Nake(1965), Random bundles of lines(왼쪽), Hommage to Paul Klee(오른쪽)
Frieder Nake(1966),  Walk-through-Raster.Serie 7.3-1
Frieder Nake(1967),  Matrix Multiplication Serie 32

지금까지 컴퓨터 예술의 선구자 3인을 살펴봤다. 그런데 1950년대 초 MIT에서 벡터 그래픽 기술이 개발됐을 정도로 이들 작품은 컴퓨터 그래픽(Computer Graphics, CG) 관점에서 대단한 기술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기존 CG와 무엇이 달라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인 별도의 영역이 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의 답은 인공지능 기술과 예술을 구분 짓는데 실마리를 줄 것이다.


3인 작품과 기존 CG의 가장 큰 차별점은 '창조성'과 '정보 미학'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CG는 사용자의 의도를 정확히 구현해줄 뿐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3인은 랜덤 함수를 사용하여 컴퓨터가 '우연에 의한 창조'를 스스로 하게 한 것이다. '우연에 의한 창조'는 예술가들이 창장 과정에 많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어떤 사람은 랜덤 함수도 사용자가 프로그래밍한 것이기 때문에 컴퓨터가 창조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이 문제는 요즘 인공지능 예술에 대해서도 많이 지적되는 사항이다.) 사용자가 알고리즘을 설계했지만 결과까지는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컴퓨터가 일정 부분 스스로 창조했다고 볼 수 있다.


원숭이에게 타자기를 주고 맘대로 치게 한다면 언젠가 훌륭한 문학 작품이 나올까? 아마 제대로 된 문장 하나도 완성되기 힘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컴퓨터가 우연에 의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더라도 결과를 평가하고 설명할 수 없다면, 아무렇게나 끄적거린 어린아이들의 낙서에 불과하다. '정보 미학'이 컴퓨터의 창작물을 예술적 기준으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단순한 CG 작업을 넘어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 컴퓨터 예술이 가졌던 두 가지 차별점은 인공지능 미술의 미래를 그려보는 데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일단 최근 사용되는 딥러닝(deep learning) 기법은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의한 창조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70년대 이후 일반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CG 프로그램이 보급되면서 컴퓨터 예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들을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60년대 선구자 3인의 작업 방식을 생성 예술 또는 알고리즘 예술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 미술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정보 미학'과 같은 미학적 이론체계가 필요하다. 이것은 예술로 인정받기 위함도 있지만,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좋은 결과인지에 관한 판단 기준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예술에 관한 미학적 이론체계는 미학자만의 몫이 아니며 엔지니어, 예술가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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