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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30. 2021

소설<알쏭당>

냄새

" 형원이가 조금 모자란 돈을 충당했어요~"

장 팀장은 호찌민 공항의 찌는 듯한 더위 아래 늘어선 야자수를 바라보며 화들짝 웃는 팀원들에게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 보험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전국 방방 곳곳으로 당일치기 시책 여행이나 팀 여행은 자주 갔었고 가끔 실적을 달성하면 가까운 동남아로 해외여행을 가곤 했지만 이렇게 팀원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다. 멀리 타국 땅까지 와서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을 만큼의 팀워크를 발휘하는 팀은 그동안 흔치 않았다. 직위와 계급이 분명하게 나눠진 일반 회사라면 사장이 계획을 정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겠지만 보험회사는 누구나 위촉직 사업자 개념으로 팀장이 마음먹고 팀을 단합하려 이런저런 시도를 해도 할 수 있는 건 고작 서울 교외로 나가 밥을 함께 먹고 오는 정도였다.

"형원 씨 때문에 좋은 구경 하겠네,일 잘해~ 돈 잘 벌어~가정적이고~뭐 모자란 게 없네 호호~"

팀장과 나 그리고 형원이 형과 어머니 뻘의 고참 설계사 두 분이 느닷없는 팀 여행에 동참했다. 팀 여행이라고 오로지 팀 비로 여행비를 충당하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 우리 팀이 실적이 좋아 팀 비가 남아서 이걸 다 써야 해요~ 그래서 형원이랑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팀 화합도 하고 이번 연휴에 맞춰서 가려합니다"

아침 팀 회의 시간은 장기명 팀장이 선공을 날리면 형원이 형이 그걸 받아 자세히 설명하는 식이었다.

"제가 여행사 들어가서 알아봤는데 개인이 30만 원 정도 부담하면 나머지는 여행경비랑 현지 가면 또 우리끼리 사 먹고 그런 건 저랑 형이랑 부담하기로 했으니 딱 30만 원만 내면 됩니다"

말은 팀장과 자신이 부담한다고 했지만 형원이 형이 거의 낸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팀원들 중 몇 명은 연휴 동안 가족들과의 약속을 핑계로 참여하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자리로 돌아온 옆자리 고참선배는 내게 들리라는 듯 혼잣말로 속삭였다.

"지들끼리 팀 비 다 쓸려고 저러는지 뭐~"

선배는 연차가 무려 20년이 넘는, 지점에서 오랜 경력을 다투는 몇 안 되는, 차분하고 조용한 분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나와 비슷한 또래라면 가끔 아들이 결혼을 할 생각이 통 안 보인다며 요즘 젊은 친구들의 생각이 궁금한 듯 가끔 말을 걸어오셨다.

"팀 비를 그래도 나눠주는 게 맞지 않나요?"

복화술 같은 자기의 혼잣말을 내가 엿들은 게 놀랐는지 "어머~"라고 말한 그녀는 체념한 듯

"근데 뭐 어쩌겠어? 아마 팀 비의 대부분이 형원 씨가 한걸 거야~잘 갔다 와요~자기는 결혼도 안 했고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잖아~형들이 맛난 거 많이 사주겠지~"

그녀의 말도 사실 맞았다. 형원이 형이 매달 체결하는 계약 건수는 웬만한 설계사의 서너 명 분이었다. 그만큼 계약에 따른 시책도 많이 나올 테니 형의 지분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쟤 정도면 E급중에서 양반인 편이야~회사에 E급들이 얼마나 진상들이 많은지 알아?"

공항 앞에 마중 나온 여행사 버스를 올라타면서 팀장은 호찌민의 습기에 금세 적응한 사람처럼 팔뚝을 실룩거리며 나를 툭치며 사무실에서는 볼 수 없던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쟤가 네가 마음에 드나 보다, 완전 개인주의 잔 어, 예전엔 사무실에서 이어폰 꼽고 말도 한마디 안 했다더라~"

형원이 형은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개인주의라는 말을 꼭 달고 시작했다. 그는 개인주의라는 말이 썩 어울리는 외형을 가진 건 분명했다. 짧고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 안경 너머로의 표정이 읽히지 않는 얼굴, 누가 봐도 꾸준히 관리해온 몸등 무언가 깔끔하게 정리된 그의 외모는 사뭇 경제적이라고 할 만큼 개인주의자에 가까웠지만 그것을 차치하고도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소신과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그 무엇에 무관심한 부분들이 그가 자신을 개인주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 너만 생각하고 말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내게 그는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취조하듯 말했다. 그리 기분 나쁜 취조는 아니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너가 가고 싶은대로 결정한다는 나름의 다운 겁박이었다.

하노이,다낭등 휴양지를 선택하지 않고 도시 호찌민을 선택한 이유는 커피와 전쟁박물관 때문이었다. 베트남에서 재배되는 로부스타 품종은 비록 인스턴트 커피에 주로 사용되어 아라비카 품종보다 질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트남의 커피 문화를 현지에서 접하고 싶었다. 그리고 베트남은 "플래툰" "디어헌터" "머나먼 정글" 같은 전쟁영화와 드라마로 가보진 않았지만 항상 가본 적이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곳이었고  미국이 유일하게 전쟁에서 패배한 전쟁으로 기억되는 나라였다. 천하의 미국을 곤혹스럽게 한 이 나라의 국민들이 궁금했다. 그리고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전쟁 박물관을 가보고 싶었다.

" 형들은 호찌민에서 어딜 제일 가고 싶어요?"

"너 얘랑 여행은 처음이지?"

장팀장은 내게 아주 좋은 질문을 했다는 눈짓을 보내더니 그간 형원이형과 함께 했던 해외 시책 여행을 떠올리며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전번 푸켓 때인가, 얜 무슨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날 데리고 어딜 가자는데 무슨 여행을...

또 어디야? 대만 여행 때, 그때는 아주 밤새도록 돌아다니는데 아주 죽겠더라니깐"

팀장의 말을 듣기만 한 것 뿐인데 이국 땅의 새벽 거리를 장팀장을 이끌고 걷는 모습과 숨을 헐떡 거리며 팀장을 데리고 밤늦은 거리를 행군하듯 구경하는 형원이형의 모습이 그려졌다.

"난 좀 여유있게 커피 한잔하면서 이곳저곳 유유자적 하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그것을 여유가 없고 여행의 묘미를 모른다고 치부하기엔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부지런함도 따라주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여러분~ 오늘 좀 피곤 하시겠지만~일정을 소화하고 밤늦게 숙소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갓 가이드 업계에 입성한 초짜 티가 나는 젊은 가이드가 헤어질때 까지 계속 저런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하는 기분좋은 톤으로  우릴 반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베트남의 첫인상은 예상과 다르게 거리에 휴지 한조각도 안보일 만큼 청결했으며 프랑스 파리의 건축물을 옮겨 놓았다고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유럽의 느낌이 물씬 묻어 나왔다. 갑자기 버스 주위로 벌떼처럼 시뻘건 오토바이 무리가 둘러 싸더니 도로 위는 운전대를 잡은 베트남의 젊은이들의 행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장관이었다. 호찌민은 이제 막 피기 시작한 향기가 지독한 꽃처럼 생생한 젊음이 여기저기 널린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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