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Feb 22. 2024

퇴근 후 집밥이 차려진 일상

집밥 냄새

실로 오랜만에 퇴근 후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향한다. 사무실에서 집까지는 불과 15분 안팎. 이토록 가까운데 지금까지는 이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퇴근 후 첫째와 둘째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 각각 초등학교, 유치원에 들려야 했기 때문. 두 아이를 픽업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넘어가 있곤 했다. 집에 오자 마자 옷을 갈아 입을 틈도 없이 30분 내로 저녁 준비를 하는 게 내 일상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 계신 친정 부모님이 미국집에 방문하면서 내 상황이 반전됐다. 부모님은 선거를 앞두고 주말도 없이 일하고 있는 보좌관 딸을 돌보기 위해 미국에 오셨다. 부모님은 손주들의 픽업과 살림을 도맡아 주셨다. 덕분에 난 퇴근 후 곧장 집을 향할 수 있게 됐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마자 집밥 냄새가 확 풍겼다. 학창시절 줄곧 맡아왔던 그 냄새였다. 그 당시에는 이게 얼마나 그리운 냄새가 될지 전혀 몰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늘 그리웠던 집밥 냄새. 내가 해먹는 음식이 아닌 엄마가 해주는 음식의 냄새. 여름방학 마다 한국에 들어갈 때면 아침의 단잠을 깨우던 향긋한 냄새. 바로 그 냄새가 지금 우리 집에서 날마다 풍기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먹으며 하루 있었던 일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아빠가 설거지를 해준다. 난 그 틈을 타서 선거유세 전화를 돌리고, 차고에 가서 런닝머신을 20분이라도 달린다. 내 고유한 시간을 가져본 게 얼마만인지, 감동이 밀려온다. 부모님이 오신 후에야 내게도 하루 최소 30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깨닫는다. 30대 중반인 나는 여전히 ‘엄마 아빠의 딸’로 살 때 안락하고 행복하구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언제까지고 엄마아빠의 딸로 살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고, 하루하루 엄마와 아빠는 노년의 삶에 접어들고 있다. 머지 않아 부모님에게 미국 방문은 ‘어렵고 고된 일’이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시간은 내 생에 얼마 남지 않았다, 는 사실을 자각하며 부모님과 함께 있는 그 순간에도 묘한 그리움이 차오른다.



타지에 살며 가장 억울한 일은 하루가 다르게 나이 들어 가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다는 것. 그래서 하루 빨리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은 늘 변함없이 마음에 품고 있다. 모든 이방인의 마음이 같지 않을까? 언제 다시 한국에 돌아가 부모님 가까이에서 지낼 수 있을까? 알 수가 없다. 그저 그 방향으로만 삶이 흘러가기를 기도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30대라니, 그 젊음이 부러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