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Aug 22. 2024

미국병도 아닌 뉴욕병


지난해 연말부터 난 '뉴욕병'에 걸렸다. 미국병도 아닌 지역이 더 구체적으로 좁혀진 '뉴욕병'이다. 이른바 뉴욕앓이를 하기 시작한 건데, 참 요상한 일이다. 이미 미국에서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LA에 살고 있으면서 뉴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니 스스로도 잘 납득이가지 않는 감정이었다.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뉴욕을 그저 재미난 '여행지' 정도로만 여겼지, 살 곳은 못된다고 여겨왔던 사람이다. 뉴욕에 처음 간 건 만 18세 겨울. 당시 친구와 둘이서 영어 공부도 할겸 해서 약 6주간 뉴욕으로 떠났다. 사실 공부를 빙자한 여행이었다. 친구와 함께 난생 처음 도착한 미국땅은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영화에서만 보던 노락 택시를 타고 호텔을 향하던 길이 떠오른다. 우리가 6주간 묵을 숙소는 타임스퀘어에서 가까운 '뉴요커' 호텔 레지던스였다. 택시가 타임스퀘어를 지나갈 때는 '헙' 하고 숨이 잠시 참아졌던 것도 같은데, 그 화려한 조명에 압도당해서였다.


내게 첫 미국은 그런 곳이었다. 기가 막히게 화려한 곳.


그런데 그 화려함을 향한 긍정의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12월의 뉴욕은 너무 추웠고, 황량했다. 덜덜 떨며 눈 오는 길 위를 미끄러질까봐 조심 조심 걸어가며, 하루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욕실에서 시시때때로 발견되는 바퀴벌레도 싫고, 비싼 커피값도 싫고, 냄새나는 전철도 싫었다. 한인타운에서 장을 보고 장갑을 낀 양손에 장바구니를 든 채로 숙소까지 걸어오는 길이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거대한 뉴욕의 인파 속에서 나는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 아마 한국에 있었으면 송년회다 뭐다 바빴을 연말이었기에 외로운 감정이 더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뉴욕은 내게 'so-so'. 아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곳이었다. 당연히 살고 싶지는 않은 곳.



이후 서부 시애틀에서 첫 유학생활을 시작한 이유도 동부 뉴욕에서의 그저 그랬던 기억 때문이었다. 난 유학원 언니에게 최대한 사람 냄새 나는 시골같은 곳에서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언니는 그러면 시애틀 근교 지역이 딱일거라고 이야기해줬다. 뉴욕과 정반대 되는 곳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시애틀에 정감이 갔다.


물론 시애틀에 직접 살면서는 하루 빨리 LA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언제나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계절로 꼽았던 나는 LA가 내가 살 수 있는 최고의 파라다이스라고 여겼다. 그리고 실제로 LA에 살면서 내 생각이 맞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는데, 사시사철 쨍한 날씨에 언제든 갈 수 있는 가까운 바다, 도시와 시골을 적절하게 섞은 듯한 분위기는 내가 꿈꾸던 도시 그 자체였다.


그런데 10년도 넘게 LA에 살다보니 차츰 질릴 때가 됐는지 요새 부쩍 LA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LA가 싫어진 건 아니다. 여전히 LA는 매력적인 도시다. 그렇지만 지난 10년 동안 LA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도시들이 쇠퇴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학생 시절에만 해도 홈리스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는데 지금 LA와 샌프란시스코의 홈리스 상황은 완전 비상 그 자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홈리스 상황을 개선하기는 커녕 나날이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니, 10년 후의 캘리포니아 모습이 심히 걱정이 된다.



24살, 졸업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찾았던 뉴욕이 내 기억 속 마지막 뉴욕이었다. 여름 뉴욕은 겨울 뉴욕과는 반대로 더워도 너무 더웠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 길을 걷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선 절대 살지 말아야지." 내게 뉴욕은 절대 살아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인간이란 오묘한 존재이다 싶은게 나이와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취향, 가치관은 유동적으로 바뀐다. 영원할 줄로만 알았던 많은 것들이 결국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뉴욕을 향한 내 마음도 180도 바뀌게 됐다.


지난 연말 9년 만에 뉴욕에 방문했다. 그 9년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기간이었다. 9년 동안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해외 이사를 했다. 남편, 두 아이와 함께 타임스퀘어에 들어섰을 때 대체 지난 9년 동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진지하게 되감기 해봐야했다. 어리고, 철없고, 패기 넘치던 20대의 여성은 대체 어디로 가고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어떻게 내가 두 아이의 엄마일까? 내 인생은 대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

9년 전과 현재의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뤘기에 더욱 신기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9년 전과는 달리 갑자기 뉴욕을 사랑하게 됐다. 내가 존재하고 싶은 장소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LA가 아닌 뉴욕이라는 점이 확실했다. 지난 세월 동안 LA는 홈리스가 급증하고, 나날이 도시가 망하고 있는 반면 뉴욕은 오히려 과거와 비교해 훨씬 더 깨끗하고 편리해져 있었다. 애플 페이를 사용해 지하철을 탈 수 있었고, 지하철에서 나던 꼬질꼬질한 냄새도 옅어졌다. 여전히 타임스퀘어에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한창이었고, 전광판은 그 어느때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화려한 도시 길 위에 서서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러니까 아마도 난 도시의 끝판왕인 뉴욕에 반한 것일게다.


서울을 사랑하는 것과 유사한 이유로.


서울에서 LA로 이사와서 삶을 살아간지 어느덧 8년차다. 지금도 난 내 고향 서울이 그립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한국에 돌아가는 것은 유보 상태다. 언젠가 돌아가기야 하겠지만, 가까운 미래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조금 더 미국에 살아야한다면 이왕이면 뉴욕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울보다 활기차고 볼거리가 많은 뉴욕이야 말로 나의 향수를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도시가 아닐까.


우리 가족이 이번 생애 진짜 뉴욕에서 살게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뉴욕을 갈망하는 마음과 이주계획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채 살다보면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도 믿을뿐.


그리고 실제 뉴욕으로 이사가는 게 현실이 된다면 LA를 떠나는 마음도 가볍지는 않을 거다. 아마 많이 슬프고 아쉬울 거다. 이미 자리 잡은 남편의 사업채, 내 직장, 아이들의 학교, 집, 이웃, 친구들...이 모든 것들을 뒤로 남겨두고 작별을 해야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울지. 그래서 어쩌면 난 그저 뉴욕을 그리고 꿈꾸며 뉴욕병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뉴욕을 하나의 컨텐츠로 소비하고 있는 거다. 진짜 그곳에 가서 살고 싶은 건 아닐지도.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오늘은 뉴욕 영상과 사진을 보고, 뉴욕에 대한 글을 쓰며 뉴욕앓이를 해본다.


어쩌면 뉴욕앓이야 말로 내가 가장 즐겨하는 취미생활인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