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재택근무
캘리포니아 LA에서는 최근들어 연일 폭염 소식이 들려온다. 9월이면 가을로 접어들 무렵쯤 됐건만 날씨는 마지막 여름을 화려하게 장식할 셈인지 엄청난 폭염이 들이닥쳤다. 지난주부터 우리 동네 날씨는 낮 최고 기온 40도에 육박했는데, 올여름 가장 더웠던 것 같다. 운전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차에서 잠깐 내릴 때 태양볕이 하도 세서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이런날은 자고로 에어컨 틀어놓고 집에서 널부러져 누워있어야 한다.
생명을 위협할 법한 폭염 속에서 믿고싶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더워도 너무 더운 것이다. 아니, 집이 왜 이렇게 덥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에어컨에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잠든 시간에 에어컨 작동이 멈춰버렸다. 남편은 그날 출근을 하지 않고, 동네 에어컨 수리 기사를 수소문 해서 하루만에 에어컨을 고쳤다. 모든게 느리게 돌아가는 미국에서 하루만에 에어컨을 고쳤다니, 놀랍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에어컨 고치는 비용이 평소보다 2~3배는 더 비쌌다. 그래도 어쩌랴. 이 폭염 속에 에어컨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으니.
문제는 우리 회사 에어컨도 같은 날 고장이 났다는 사실이다. 더운 집에서 탈출하듯이 빠져나와 회사에 출근했는데, 오후 무렵 회사에서도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더위를 느꼈다. 왜 이렇게 덥지? 동료들 하나 둘씩 각자 방에서 나와 무슨 일인지 살피기 시작했는데, 에어컨 작동이 멈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국 그날 오후 3시쯤 조기 퇴근을 했고, 아이들을 각각 학교에서 픽업해 집에 왔더니 그제서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었다. 실내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는 일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사람은 고생을 좀 해봐야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사소함을 넘어 아주 소중한 것임을 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의 집도 다음날 에어컨이 고장났는데, 하필 저녁에 고장이 나는 바람에 하룻밤 동안은 에어컨 없이 잠을 자야했다. 친구는 밤새 잠을 설쳤다고 했다. 창문을 열어도 더운 바람이 들어오고, 선풍기를 켜도 더운 바람이 불어오니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고.
집에 에어컨은 금방 고쳐진데 반해 사무실을 에어컨을 고치는데는 역시 미국 답게 오래 걸렸다. 목요일 오후부터 작동하지 않은 에어컨은 그 다음 화요일 오후가 돼서야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금요일, 월요일, 화요일 오전까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다.
이직하기 전에 4년 동안 재택근무로 일해왔던터라 재택근무 시스템이 몹시도 그리웠는데, 폭염 날씨에 고마울 지경이었다.
재택근무를 할 때 가장 좋은 점은 월요병이 전혀 없다는 사실. 사무실에 가지 않기 때문에 월요일이 가져다 주는 특유의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편한 옷을 입고, 원하는 장소에서 업무를 볼 수 있다는 건 직장인에게 꿈같은 일이다.
재택근무를 하던 시절에 아침마다 들렸던 카페를 갔다. 아침 시간에 일을 하러 카페에 온 건 8개월만의 일이다. 늘 주문해 먹던 핫라떼, 블루베리 시콘을 시켜 늘 앉던 자리에 착석했다. 일을 하다 보니 누군가가 옆에서 툭쳤다. 늘 카페에 와서 만나곤 했던 히스패닉 친구였다. 안 그래도 카페에 들어서서 왜 그가 안 보이나 궁금했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럼! 난 한동안 이 카페에 오지 않았어. 오랜만에 들린거야."
"오, 나도 마찬가지야! 뭘하며 지내?"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으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모든게 그대로인 것만 같았다. 이직 후 8개월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마치 과거에서 현재로 점프를 한 것만 같았다. 이직 후의 시간은 내게 없었던 시간, 아니면 잠시 꿈을 꾼 시간쯤으로 여겨졌다.
에어컨 고장 덕분에 간만에 재택근무를 하며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었다. 화요일 오후 1시 사무실로 되돌아오니, 이제야 내 진짜 현실로 돌아온 것을 실감했다. 재택근무 덕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었다. 종종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