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의 유럽 여행 하루 전날, 부랴부랴 여행자 건강 보험을 검색해서 가입했다. 아빠의 칠순을 기념해서 가는 유럽여행인데, 정작 주인공인 아빠는 걱정이 많아 보였다.
"이상하게 이번 여행은 불안하네. 유럽이라 그런가..."
아빠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괜찮다고, 모든 게 무사히 지나갈 거라고 답하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나 역시 불안함을 느꼈다. 가장 큰 불안함은 유럽의 치안이 워낙 좋지 않다는 고정관념에서 기인했다. 혹시 가서 여권이나 소중한 물품을 도난 당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유튜브에서는 유럽 여행 중 캐리어, 현금, 보석 등을 도난 당했다는 사연의 영상이 알고리즘으로 우후죽순 떴다. 이러니 더 불안할 수밖에...
게다가 부모님의 건강도 우려되긴 매한가지였다. 부모님이 어디 크게 아픈건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매일 챙겨드시는 약이 있는 65세 이상의 노년층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과거 부모님과 미국 여행을 할 때만 해도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미국은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터전이었기 때문에 한국 다음으로는 가장 안전함을 느끼는 나라다. 혹여 부모님이 아프다 해도 우리집에는 충분한 비상약이 있었고, 동네 '얼전트 케어'에 부모님을 데려갈 수 있었다. 또한 보험이 없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현금을 내면 치료해주는 한인타운 내 병원도 알고 있었고.
이래 저래 미국에서는 부모님 건강과 관련한 걱정이 크지 않았는데, 유럽은 상황이 달랐다. 9년 만에 가는 유럽은 매우 낯선 나라였다. 9년 전 처음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는 모든 걸 남편에게 의존했기에 사실상 나는 유럽 여행 준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부모님과의 유럽 자유여행을 계획했을 때 모든 여행 일정은 내 책임 하에 있었고 난 막중함 책임감을 느꼈다. 특히 부모님이 '건강하게' 어디 아프지 않고, 무탈하게 이 여행을 마치는게 가장 중요했다.
미국에서는 한국 휴대폰번호 인증을 할 수 없어서 마지막까지 미뤄뒀던 여행자 보험 가입을 마치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여행 전날 밤 내가 짜둔 여행 일정을 프린트해서 부모님에게 나눠드렸다. 부모님은 여행 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며 좋아하셨다. 런던, 파리, 니스로 이어지는 12박14일간의 유럽여행. 나는 이제 2주 동안 부모님의 여행 가이드가 될 예정이었다.
부디 아빠의 칠순여행이 근사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