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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가족하고만 떠난 유럽여행

by Iris Seok


결혼 10주년이던 올해 여름, 친정가족하고만 여행을 떠나게 됐다. 그것도 유럽으로. 아빠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한 여행으로, 남편의 엄청난 배려와 희생이 뒤따랐기에 가능했던 여행. 반년동안 그의 MBA 시험 공부를 지원해준 나 스스로에 대한 보상처럼 여겨졌다. 남편없이 아이들 친구 생일 파티를 가고, 놀이동산을 갔던 반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정말 그랬다. 여행길에 오르자 마자 지난 반년간의 고생이 마치 없던 일처럼 여겨졌다. 이런 자유를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독박육아쯤이야 얼마든지 또 할 수 있겠다는 생각.


결혼한 딸이, 그것도 아이를 둘이나 키우며 일도 하는 딸이, 한국도 아닌 미국에 사는 딸이 친정가족을 위한 유럽여행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님은 행복해보였다.


다들 놀라. 시집간 딸이 남편도 손주도 없이 유럽여행을 같이 간다고 하면. 허허.


부모님은 여행을 함께가지 못하는 사위에게 못내 미안한 감정이 드는 듯 했지만서도 좋은 내색을 숨기시지 못했다. 언제나 그리운 손주들이었지만 유럽여행을 함께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스러웠던 것이다. 유럽여행이 끝나면 미국에 사는 사위와 손주들이 한국에 방문할 예정이니 크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즐겁고 행복하게 무사히 여행을 마치면 또다른 기쁜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런던으로 떠나는 날.


아빠, 엄마, 남동생, 나까지 4명이 각각 캐리어 한 개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일반 차량 한 대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수준의 짐이라서 전날 카카오 택시로 밴을 예약해뒀다. 예약 시간이 되자 예약해둔 차량은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는 모든 짐을 트렁크에 넣은 후 차에 타서 깊은 숨을 내쉬었다.


떠나기 몇 분 전까지도 짐을 넣었다 뺐다 하며 분주히 짐을 쌌던터라 택시에 올라타자 안도감이 들었다. 전 가족이 유럽여행을 간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긴하다. 2주 동안 먹을 식량들, 가령 누릉지, 김, 깻잎, 참치, 컵라면 등을 챙기는 것도 큰 일이었다. 누가보면 미개한 국가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일만큼 우리는 충분하게 식량을 준비했다. 요즘 유로가 워낙 비싸기도 하고, 만약 호텔 주변에 한인 마켓이 없으면 굳이 한식을 먹기 위해 먼 곳까지 찾아갈 여력도 없을테니 뭐든 충분해야 마음이 놓였다.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이제서야 들뜬다.


아빠가 말했다. 여행을 떠나기 마지막 전까지도 걱정이 컸던 아빠는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설레보였다. 낯선 나라로 2주간 떠나는 여행. 아빠의 나이는 어느덧 칠십이다. 보수적으로 평균 수명을 80세라고 본다면 고작 이 세상에서 남은 아빠의 시간이 10년이라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슬퍼진다. 10년은 강산이 변할만큼 긴 시간이면서 또 눈 깜짝하면 지나가버릴 찰나이기도 하다.


야근을 하고 새벽에 들어와서 부랴부랴 짐을 쌌던 남동생은 옆에서 곯아 떨어져 있다. 차라리 남동생이 잠을 푹 자지 못 한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4시간30분 비행을 해야하는데, 눈이 말똥말똥해도 문제다. 잠을 푹 자면 금세 런던에 도착해 있을테니, 오히려 숙면을 취한 것보다는 나을지도.


아이들 없이 가족들하고만 여행길에 나서니 왠지 내가 20대로 회귀한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토록 자유롭다니...! 자유를 만끽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앞으로 2주동안 난 가족들의 가이드가 되어 하나부터 열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 막중한 부담감을 설렘이 이겼다. 어린 두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야 모두가 어른인 부모님, 동생을 책임지는 게 훨씬 쉬운 일이니, 사실 따져보면 부담일 것도 없다.


짐을 부치고 나니 더욱더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의 칠순 여행인 만큼 비즈니스 티켓을 끊었고(마치 신혼여행 가듯이), 가족 모두 편하게 비행을 즐길 수 있었다. 라운지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컵라면까지 야무지게 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밤 비행기가 아니라 바로 잠들지는 못했고, 아이패드에 다운 받아온 '미지의 서울' 드라마를 봤다. 첫번째 식사를 먹고, 그냥 잠들긴 아쉬워서 또 라면을 시켰다.


일분 일초가 아까워서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건 다 누리고 싶었다. 아이들이 없이 비행기를 타다니, 그것도 엄마, 아빠, 남동생과! 꿈만 같은 시간이 현재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었고, 난 매순간 아쉬움을 느꼈다. 자꾸만 더 즐기지 못해 조바심이 났다. 너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은 막상 그 순간에는 불안을 동반하게 된다는 걸 알았다. 너무 소중해서 불안한 감정.



런던에 무사 도착했다. 올해부터 런던에 오기 위해서는 사전에 ETA(전자여행허가제)를 온라인을 통해 발급받아야 했다. 발급할 당시에는 귀찮았지만, 막상 공항에 도착해서 지문만 찍고 수속을 마치니 미국 입국보다 훨씬 낫구나 싶었다. 부모님은 미국에 오실 때마다 입국 수속이 너무 힘들어서 도착과 동시에 진을 빼곤 했다. 거의 1시간씩은 소요되는 미국의 입국 심사와 비교하면 런던은 수월 그 자체였다. 첫 시작이 좋은 런던 여행. 미리 인터넷을 통해 숙지해 온 대로 표지판을 따라 우버 탑승하는 곳으로 갔다. 우버로 밴을 불러 (우리 가족이 다함께 캐리어를 들고 탈 수 있는 건 밴밖에 없었다) 숙소를 향했다.

저녁 8시 쯤에야 호텔에 도착했는데, 여름의 런던은 그 시간에도 밝았다. 호텔은 테라팔가 광장에 위치한 시타딘. 투베드룸 호텔이고, 간이 부엌이 딸려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머물기 좋은 곳이었다. 특히 무엇보다도 입지 조건이 대박이었다. 어디든 웬만해서는 도보로 이동 가능했고, ‘빅벤’까지 불과 10분이면 갈 수 있었다. 첫날밤 짐만 내려놓고 우리 가족은 빅벤까지 걸었다. 선선한 저녁, 긴 셔츠를 반팔 위에 걸쳐입고 빅벤까지 걷던 길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엄마, 아빠는 장거리 비행에 살짝 지쳐보였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다함께 런던에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 보였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말로만 듣던 런던, 영화로만 보던 런던 길거리를 걷다니.


빅벤 주변은 밤에도 관광 인파로 바글바글했다. 빅벤을 배경으로 10장 정도 사진을 찍은 뒤에 근처 강변에 위치한 야외 펍을 들렸다. 남동생이 호기롭게 런던 생맥주를 쏘겠다며 본인 신용카드를 꺼냈다. 집에서 막내인 남동생에게 뭔가를 얻어먹는 일은 우리 가족에게는 매우 드문 일이라 다들 더 기분이 업됐다. “오, 너가 웬일이냐! 하하하.“ 강변이라 날파리가 자꾸 주변을 얼쩡거렸지만, 그래도 낯선 런던 공기를 들이마시며 맥주를 짠하던 순간, 아 이건 오래도록 내가 꿈꿔온 ‘완벽한 행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마시며 강가 반대편에서 반짝이는 ’런던아이‘를 보며 부디 이 시간이 천천히 흘러 지나가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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