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길에 무슨 음악을 들을까 유튜브를 켰다. 알고리즘은 딩고뮤직에 출연한 신승훈 가수의 영상으로 이끌었다.
첫 곡을 들을 때부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여전히 청량한 그의 목소리로 I believe를 들으니, 아주 오래 전 봤던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과 차태현이 눈 앞을 어른거렸다. 그 시절 초등학생이던 내가 집 거실에 앉아 영화를 보던 장면이 현재로 소환됐다.
뒤이어 그의 데뷔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진 않지만/
그보다 더 진한 향기가/
너는 별빛보다 환하진 않지만/
그보다 더 따사로워./
일상에 치여 집 나갔던 감성이 아침부터 요동쳤다. 아, 어쩜 이렇게 사람 마음을 후벼파는 노래가 있을 수 있지...
김창환 프로듀서는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데모 테이프를 듣자 마자 숨이 막혔다고 표현했다. '이 음악이면 자신 있다'라는 생각으로 신승훈이 있는 대전으로 바로 향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신승훈이 작사 작곡한 이 곡을 들으면 왜 프로듀서가 듣자마자 신승훈에게 달려갈 수밖에 없었는지 바로 납득이 된다. 신승훈은 1990년 데뷔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가요계에 등장했고,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의 노래 가사는 서정적이고, 한국 문학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노래를 들으면 저절로 어떤 장면들이 머리 속에 스쳐지나간다. 구구절절한 사랑 이야기들. 특히 김소월의 '진달래꽃'으로부터 내려오는 '애이불비'(슬퍼도 울지 않는)의 정서가 잘 담겨있다. 슬퍼도 울지 않고, 절제하며 노래하는 모습...그리하여 노래를 듣는 관객이 오히려 더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 절절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그가 오래전에 아주 사랑했던 한 여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별 노래는 대부분 그 여성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처럼 보인다. 신승훈은 "전 여자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고 더이상 그녀와의 사랑이야기에 대해 작사하는 걸 멈췄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대체 그와 그녀는 어떤 사랑을 했을까. 이토록 사랑했는데 왜 헤어진걸까. 그녀는 신승훈의 노래를 들으며 가끔씩은 추억에 젖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릴까? 별별 상상을 다해보게 된다.
신승훈 나이가 몇살이지...? 찾아보니 66년생. 올해로 59세. 환갑을 앞둔 그가 어찌 리즈시절과 다를바없는 실력으로 노래를 부르는건지. 음악에 열중하고 가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CF도 찍지 않았다는 그. 대부분의 곡을 작사/작곡하는 진정한 싱어송라이터. 대한민국의 발라드 전설. 이 모든 수식어가 부족한 신승훈. 그의 팬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출근길 신승훈 노래를 들으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니 이제야 알았지만 난 그의 팬이었다.
노래란게 신기하다. 살아보지도 않았던 어떤 과거의 한 시절을 살아보게 해준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덕분에 낭만적이고 행복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