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1월도 저물고 12월이 코앞이다. 근처 스타벅스에만 가도 Holiday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시즈널 메뉴에 크리스마스 기념 컵까지. 운전할 때마다 수시로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내 안의 크리스마스 스피릿을 끄내려 노력하는 요즘이다.
초등학생 3학년, 1학년인 두 아들은 귀엽게도 아직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뭐 받고 싶어?
선물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그 선물을 가져다주실 확률이 높으니까 인터넷으로 사진 찾아보자!"
그렇게 두 아이를 꼬득이곤,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찾은 그 아이템을 몰래 주문해 포장해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가져다 두는게 매년 나의 미션이다.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선물을 받고 감탄하는 두 아이의 표정은 매번 볼때마다 날 행복하게 해준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이대로 쭉 산타의 존재를 믿었으면 좋겠는데, 과연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11월과 12월은 지역 시의원 사무실도 무척이나 바쁜 시기다. 참석해야 할 연말 행사가 쏟아지기 때문. 보좌관들은 시의원님을 대신해 지역 행사에 최대한 참석하고, 때때로는 시의원님을 보좌해 큰 행사에 함께 참석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야근도 많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 주말에는 내가 맡은 지역의 한 대형교회에서 '트리 라이팅(Tree Lighting) 행사'가 열렸다. 매우 큰 크리스마스 트리에 공식적으로 불을 밝히는 행사였던 만큼 매년 수많은 인파가 모이는 행사였다.
문제는 하필 그 날 폭우가 쏟아졌다는 거다.
LA에서 폭우라니!
전날부터 비가 내렸던지라 당연히 행사가 취소될줄 알았다. 하지만 행사 당일 아침에 확인해 보니 행사는 취소되지 않고, 스케줄대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비오는 날 홀로 가기는 더욱이 싫어서, 남편과 두 아이들을 대동해 함께 행사에 참석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날씨가 몹시 추웠다. 그런데도 행사 시작 시간이 다가올 수록 사람들이 많아졌고, 빼곡하게 장소를 메웠다. 세상에나. 비 오는 와중에 공연도 열렸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폭우 속에 울려퍼졌고, 사람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두 아이는 핫초코를 마시며, 벌벌 떨면서도 크리스마스 행사가 재밌다고 했다. 혹여나 두 아이가 감기에 걸릴까봐 노심초사했지만, 다행스럽게 두 아이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그날 행사에서 아시안은 시의원님 가족과 우리가족 뿐인 것만 같았다. 보좌관으로 일하며 새삼 신기한 건 시의원 사무실, 또는 정부에서 진행하는 큰 행사에 참여하는 아시안 주민들이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다. 백인 뿐만 아니라 다른 인종들은 곳곳에서 보이는데, 이상하리만큼 아시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한국인은 더더욱.
거의 유일한 아시안 가족으로서 크리스마스 트리 라이팅 행사에 폭우를 뚫고 참석하다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마냥 오묘했다. 다음번 행사날에는 부디 비가 내리지 않길 바라지만, 다신 해보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었다. 비와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수많은 인파. 미국인들의 크리스마스 사랑을 알아준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