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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Oct 24. 2018

화단's 스트리트 라이프 들어볼테냥

금수저(?) 길냥이 이야기닷 

마포구청역 *번 출구 앞, 어엿한 빌라를 갖고 있던 길냥이를 기억한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에도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집은 든든한 쉼터였을 뿐 아니라, 출입구 앞에 방풍비닐까지 씌워져있었다. 그리고 오가며 괜히 시비를 거는 학대자를 대비해 “CCTV 촬영 중”이라는 문구까지 붙어서 주거지가 노출된 이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고양이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었지만, 며칠 후 나붙은 종이에는 입양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입양 간 얘가 '꽃길'을 걷기만 바라던 찰라, 옥상에 갇힌 고양이를 구하다 화단이 보호자를 마주치게 되었다! 그래서 듣게 된 화단이의 생애를 글쓴이와 구조자의 이야길 토대로 재구성해봤다. 

(화단이의 플래시백에는 약간의 픽션이 포함돼 있어요) 


안냥? 난 화단(약 2세)이라구 해옹. 길에서 태어난 흔하디흔한 스트리트 출신은 아니다옹. (지금부턴 사람체로 쓸테니 이해해다옹) 


난 원래 역세권 빌라에 입양되어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지. 과히 사랑받지 않아도 내겐 따뜻한 집과 집사, 그리고 배곯지 않는 삶이 있었거든.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집사가 내게 냉담해진 것은. 더 이상 내가 귀엽고 작은 아깽이가 아니라서, 살가운 무릎냥이가 아니어서였을까? 점점 데면데면해지던 우리가 끝내 헤어진 건, 집사 가족이 이사를 간 후였어. 화물차가 들락거리는 와중에 집사는 차갑게 굳은 얼굴을 하고, 넌 함께 갈 수 없다며 거리로 내몰았지. 


며칠이나 난 어리둥절했어. 왜 집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온 것인지, 집사는 왜 밥을 주지 않는 건지, 길은 내 집이 아닌데 왜 지나는 사람마다 차가운 시선과 “도둑고양이”라는 말을 내뱉는 지 이해할 수 없었지. 하지만 나는 살아남아야 했어. 애써 애교를 부리며 밥 동냥을 하고, 너무 꼬질해 보이지 않도록 틈틈이 몸단장도 하면서 지하철 출구를 오가는 사람들을 살폈지. 


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지만, 대신 은인을 만났어. 할머니와 (물주인) 딸이 나를 불쌍히 여겨서 자전거 주차장 틈바구니에 집을 만들어주셨어. 그리고 매일 사료와 깨끗한 물도 주셨지. 틈만 나면 굴러온 돌이라며 괴롭히던 동네 고양이들도 밥을 얻어먹자 좀 누그러지더라고. 


길에서 보낸 첫해, 겨울은 정말 유난히도 추웠지. 할머니는 스티로폼 집으로 바꿔주셨고 겉에 담요도 둘러주셨어. 출구엔 바람막이용 비닐까지 있었지. 너무 추워서 간신히 버티던 어느 날, 어디서 굴러먹던 ‘새끼’가 나타났어. 출신도 부모도 모르지만 식구들이 다 얼어죽은 후 혼자 길을 헤매다 먹이를 발견한 것 같아. 내 먹이통에는 늘 사료가 있었으니까. 그 솜뭉치 녀석이 가끔 와서 밥을 먹고 가는 건 놔뒀지만, 집에 들어오는 건 싫어서 하악 거리곤 했어. 그런데 같이 있을 땐 훨씬 덜 춥더라고. 내 새끼도 아니지만 기꺼이 밥과 물, 잠잘 곳을 공유하고 나니 한층 훌륭한 고양이가 된 것 같았지. 



내 일상은 대부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었어. 행인에는 대체로 세 가지 정도의 부류가 있었어. 출퇴근 시간에 바삐 지나치며 큰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 그리고 오갈 때마다 나랑 눈을 맞추고 인사하고, 때론 맛난 간식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 간혹 침을 뱉거나 날 때리려고 지팡이를 치켜드는 사람도 있었어. 그리고 가장 어려운 사람들은 처음에는 친근하게 다가오다가 쓰다듬는 것을 거절하면 금세 돌변해서 화내는 부류였어. 


흔히들 말하는 ‘묘연’을 처음 느낀 사람은 젊은 여성(A)이었네.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지 다른 녀석의 냄새가 났는데 간혹 맛있는 간식을 줬어. 난 열심히 야옹거리며 다리에 냄새를 묻혔어. 그분이 날 둘째로 데려가줬으면 했지. 그래서 그분이 지나갈 시간이 되면 열심히 몸단장을 했어. 어느 날 밥 주는 할머니와 A가 마주쳤어. 이사 후로 버려진 내 사연을 듣고 A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날 데려가라는 할머니의 요청은 예의를 차리며 거절하더라.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더 예쁘게 태어나지 못한 걸 후회하는 수밖에 없었어. 그치만 후로도 A는 날 변함없이 챙겨줬어. 


두 번째 묘연은 키가 큰 남자였어. 간혹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걸 봤는데 날 보고 흥분해서 달려드는 녀석을 말리곤 했어. 그리고 오리고기 같은 별미도 나눠줬고. 이런 걸 매일 먹으면서 사는 개란 놈이 정말 부러워서, 그가 “너 우리 집에 갈래?”라고 말해주길 기다렸지만 그 이상의 친절을 베풀지는 않더라고. 그래도 날 때리려 했던 사람이 대부분 남자였으니 그는 드문 사람이었지. 


이 글을 쓰는 E를 만난 당시는 상처와 체념이 공존하는 상태였달까. 오가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고 맛난 걸 주지도 않았지만 이 사람이 내게 시도한 건 ‘장난’이었어.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서 흔들거나 손가락을 사냥감처럼 사용해서 나와 놀려고 한 닝겐. 그치만 난 애기가 아닌걸! 우리 집에 얹혀있던 아깽이는 몹시 홀린 눈빛으로 E를 쳐다봤지만 겁이 많아서 다가가진 않더라고. 사실 친해진 사람의 다리 사이를 오가면서 냄새를 묻히긴 하지만 날 만질 수 있는 건 주인뿐이야. 늦은 밤 귀가하던 E는 한동안 말없이 내 옆에 앉아있다가 가기도 했어. 날 때리려는 할아버지를 막아준 적도 있지만 난 단호하게 “만지는 건 싫어!”라고 말했어. 동물-인간 사이에도 가장 중요한 건 예의와 거리란 것을 명심해. 



다행히도 내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야. 나의 진정한 묘연은 먼 곳에 있지 않았어. 몇 달 전 밥 주는 할머니와 딸이 큰 가방을 갖고 와서 날 데려갔고, 난 온통 하얀 벽으로 되고 날카로운 것들이 있는 무서운 곳에서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할머니의 집으로 옮겨졌어. 


내게 '화단'이란 이름을 지어준 분과 함께 살게 됐어! 스티로폼 말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거대한 집도!! 나만 쓰는 전용 화장실은 또 어떻고!!! 이게 젤 짱이야. 그렇게 난 집냥이 ‘화단’이로 다시 태어났지. 이제는 무서운 사람이 지나갈까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고 먹을 걸 얻어먹으려고 비굴하게 애교를 부리지 않아도 된다고(아 눈물...)! 성정이 깔끔한 할머니는 내가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집을 어지럽히는 건 싫어했지만 다른 건 다 괜찮다고 했어. 내가 아깽이가 아니고 미묘가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게다가 할머니 눈엔 내가 젤 예쁘대(이 팔불출 같으니...)!! 난 할머니가 바깥의 고양이들을 챙기거나 장을 보러 집을 비우면, 창가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할머니만 기다려. 


내가 집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E가 집에 나타났어. 글쎄 그 양반이, 우리 집과 백미터밖에  안 떨어진 곳에 살더라고. 길냥이 밥을 챙기는 할머니랑 마주쳤다나. ‘캣맘’들은 서로 통하는 게 있잖아. 잠깐 얘길 나누다가 내가 당신 집에 있다고 하셨대. 정말 놀라운 일이지? 난 사실 E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애교를 부리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데면데면한 척 굴었어. 사실 내가 이제 예쁜 옷도 입었으니 좀 콧대 높은 척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아깽이 녀석, 잘 가렴~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옹

여튼, 화단이의 얘긴 여기까지였다옹. 난 여전히 할머니랑 잘 살고 있다옹. 그러니 더 이상 내 안부를 걱정하지 말길. 그리고 봄이 오자 문득 사라진 아깽이 녀석도 인간 바짓가랑이를 꽉 물어 간택해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옹!!! 그럼 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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