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이야기 - 이혼소송 3
그렇게 난 병원을 그만뒀다
착하기만한난 그냥 그만뒀다.... 아무말 없이....
그렇게 자신이 없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
이혼소송 첫공판에 나타나지 않았던 남편은 판사님의 부름으로 두번째 공판장에 나타났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아직도 생생한 그 발걸음소리가 생각난다
계단으로 올라오는 그 무거운 발걸음소리 .. 남편이었다
강원도 진부에서 몸이 아파서 간신히 계단을 올라오던 그 발걸음 소리랑 똑같았다
"너도 아프구나~~" 밉기만했던 남편이 짠했다 난 그런 바보스런 여자였다 지금도 변한건 없지만....
재판장은 이혼하는 사람들의 무거운 분위기와 멀치감치 떨어진 몸과 맘에 거리만큼이나 거리가 생긴
부부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나는건 남편이 "시골로 내려온다면 이 소송없는걸로 하겠다"
10년전에 나는 "미친놈 아니야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 미친건가??" 의아했다
그런데 10년 후에 이제야 이혼중인 나는....
......... 그때 ........그냥.......못......... 이긴척.......... 하고 ............따라갈껄..............!!!
사랑했다면 진짜 사랑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
그냥 따라가 줄껄 ..... 져줄껄 ...... 나의 아집 고집때문에 친정엄마 내자식들이
나때문에 고통받고 아이들은 아빠없이 그 아픔을 어떻게 내가 알까
울엄마는 그 모진 내 통증들을 바라만 봐야했다
10년전 이혼소송..
남편은이혼소송을 준비하면서 내가 쓰지도 않는 은행계좌로 월30만원을 입금하고 있었고...
그것마저도 50으로 올리라는 판사님의 말에 1번인가 주더니 그것마저도 주지 않았다
남편은 이혼소송 사이에 노력항을 그만두고 무직이라고
월급을 월 70만원으로 측정하며 양육비를 깍고 있었다
끝무렵 우린 이혼조종을 했는데 ,, 남편을 근 1년만에 처음봤다
난 아이들과 안전하게 살 지금의 아파트를 원했다 아이들도 나도 안전한곳이 필요했다
나이트(새볔일)를 나가야할 나는 (간호사는 3교대 근무다)
** 그후로 요양병원에 들어가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병원에서 10년을 그렇게 근무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있어야 일을 나갈수 있었다
재산분할도 6:4 남편이 6이었다
남편은" 왜 제가 6입니까? 더 받아야 하지 않나요?" 판사님께 따져 물었다
판사님은"아이들이 있어 더이상 낮게 측정을 못합니다" 라고 말을 하셨다
남편은 본인은 친권 나에겐 양육권을 가지길 바랬으나 판사님이 반대하셨다
아이들을 키우기 힘들다고 ....
난 돈이 없었고 ,,아파트를 가져온 대신 아이들의 양육비는 각각 15만원씩
30만원을 받기로 하고 남편이름으로된 아파트를 받는 댓가로 남편에게 3천만원을 줘야했다
다른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어떻게 돈을 가져갈수있냐고...
남편을 그렇게 냉혈인간이 되어있었다
아파트 명의를 받을 때도 남편은 "너를 못믿겠다 먼저 대출을 받아서 돈을 먼저 줘라 명의만 넘기고
돈을 못받을것 같다 ... " 난... 그렇게....몇일을 시달려야 했다
"준다고 돈이 없잖아 내가 돈이 어딨냐~~"더러워서 안가져간다고~~"
그렇게 광주까지 와서도 못넘겨준다고 나를 달달 볶았다
"알아서 해라 니가 안준다는데... "하고 끊고 전화를 안받으니 가자고 연락이왔다
본인앞으로 돈이 들어온걸 확인하고는 냉차게 나가며"니 자식 니가 키워라~~" 하고
그래고 가버리고 안왔다 그렇게 10년을 ...
그동안 몇번.. 그건 다음애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