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진하는 밤, 김소연, 문학과지성사, 2023
촉진하는 밤, 김소연 시집 -비좁은 밤
안녕하세요!
상담심리전문가 김세정입니다.
오늘은 이웃 분들과 시 한 편 나누고 싶어 가져왔어요.
낭송하듯 읽어보면 어떨까요?
비좁은 밤
촉진하는 밤
김소연 시집 116p.
너무 많은 말이 밤으로 밤으로 밀려갑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들과 하나 마나 한 말들이 밤으로 터덜터덜 걸어갑니다
어느 지점까지만 헤아리다 만 생각들이 어제처럼 또 그제처럼 밤에게 도착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도 조금 더 해보았다면 그럴 시간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반복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않았을 것이라는, 익숙한 이 후회 역시 낮을 배웅하며 어딘가에 걸터앉아 밤을 기다리고 있군요
(이하 중략)
* 굵은 글씨는 제가 강조했고 시의 원문과 다릅니다.
시를 읽다 한 문장에 멈칫했어요.
'해서는 안될 말들과 하나 마나 한 말들, 너무 많은 말들'에 밑줄을 칩니다.
저는 작년 10월 소리아씨의 호흡과 발성훈련 soma & voice workshop에 다녀왔어요.
수업 끝에 소감 나누는 시간에 한 분이 그러더라고요.
내가 그동안 해왔던 말들이 '그냥' 생각없이 했던 말이구나.
쓸데없는 소리가 많았고 정말 의미있고 중요한 말은 많지 않았다는 걸 알았어요.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대강 위와 같은 말씀을 해서 놀랐어요. 저도 동감했거든요.
저도 워크샵 들으면서
지금까지 해온 말들이 진심이었는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언지,
내 몸의 진동인 소리로 나가기 전에
말하고 싶은 충동을 생생히 느꼈는지,
궁금해졌어요.
우리가 아이 시절 처음 입을 뗄 때, 무언가 하고 싶어서 소리를 낸 걸텐데요.
그 첫 목소리, 성대의 떨림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싶더라고요.
우리가 특정 장애가 없다면, 혼자 24시간 생활하지 않는다면, 하루 동안 누군가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삶이에요.
그런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끝맺어야 할지,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지, 늘 고민이 되지요.
신나게 수다 떨고 왔는데 집에 오면서 특히 시 속에서 말하는 밤이 되면 뒷맛이 씁쓸한 경우가 있잖아요.
시의 내용처럼 '않았을 것이라는, 익숙한 이 후회'가 되지요.
저는 심리상담사로서 일이 대화 치료이자, 말로 하는 작업이다 보니 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첫째, 상담사로서 내가 하는 말이 어떤 의도와 치료적인 목적을 갖고 하는 건가?
둘째, 내 말을 듣고 내담자가 어떤 영향을 받을까?
(안전감을 경험할까? vs 상처받을까?)
안그래도 밖에서 말에 대한 상처를 받고 오는 내담자들에게,
상담사의 말로 또 한 번 상처줄 수는 없겠지요?
매번 알아차리려 해도, 저도 실수를 종종 합니다.
그러면 또 내담자가 어떻게 경험했을지에 대해 나누고 진정어린 사과를 하기도 합니다.
공감 실패에 대한 공감
상담이 내담자에게 최적으로 조율되지 않았을 때 알아차리고 내담자에게 다시 조율
상담사와 내담자 모두 무의식적으로 경험한 것을 분명하게 말로 표현하는 연습
이런 대화가 매 상담시간마다 반복되어 내담자가 안전감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상담을 하면 할수록, 대화를 하면 할수록, 말이 상대에게 가닿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매번 절감합니다.
말은 마음을 담기에 어찌나 작은 그릇인지, 서로의 뇌에 각인된 언어의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말이예요.
말도 그럴진데, 제 글은 읽는 분들에게 또 어떻게 가닿을지 궁금하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촉진하는 밤, 김소연, 문학과지성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