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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Aug 21. 2022

취업과 변기의 관계

미국 어느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특별한 인재 채용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최종 면접을 위해 지원자의 집에 직접 방문한다는 것이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과 집안 물건의 정돈 상태만 봐도 그 사람의 평소 생활습관을 짐작할 수 있는데, 마지막 당락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화장실의 청결상태다! 인사담당자는 인터뷰 끝에 화장실을 사용해도 되냐고 정중하게 부탁한 후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커버를 살짝 들어본단다. 그렇게 채용한 직원의 직무능력은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고 했다. 변기커버 안쪽을 확인하다니! 충격이었다!     


살림을 그림같이 잘하는 지인이 있다. 그 집에는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것 같은 예쁜 접시, 가구, 소품들이 정갈하고 조화롭게 배치가 되어있어서, 그냥 앉아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과일 조금, 음료수 한잔에도 접시와 유리잔을 선택하는 안목이 탁월하다. 그의 살림 솜씨는 설거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릇을 모두 씻은 후, 매번 배수구 거름망에 끼어있는 음식물을 제거하고 앞뒤로 깨끗하게 닦아 탁탁 털어 뒤집어 놓는다. 그 집 싱크대는 배수구 안쪽까지 물때 하나 없다. 진정한 살림 고수다.     


미국 인사담당자의 얘기는 내 무의식에 깊이 각인이 되었다. 내가 직원을 채용할 것도 아닌데, 자꾸 변기커버를 들어 확인해 본다. 지인의 설거지 습관을 보고 난 후에는 나도 거름망까지 닦는 습관이 생겼다. 진정한 깔끔함은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의 청결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사소하지만 작지 않은 삶의 자세다.  

 

한국 휴가를 가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은 아들들이 사는 집이었다. 엄마 없이 일 년 넘게 사는 아들들이 기특하고, 대견하고, 안쓰러워 뭐든 해주고 싶었다. 외로웠을 텐데 잘 살아준 것이 고맙고 미안해서 돼지우리처럼 해놓고 살아도 용서가 될 것 같았다. 


살짝 가슴이 떨렸다. 아주 조금은 걱정이 됐다. ‘이 녀석들 어떻게 살고 있나?’ 다행히 정리정돈은 하고 산 것 같다. 아무 기대도 안 하기로 다짐했는데, 어느새 인사담당자의 눈이 돼서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다. 싱크대는 조리의 흔적이 조금 있고,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지는 않다. 안타깝게도 독서의 흔적은 없다. 테이블 위에는 최소한의 것만 있고 널브러져 있는 잡동사니는 없다. 옷은 옷걸이에 걸려있고, 수건은 잘 빨아져 건조대에 각 잡아 널어놨다. 날파리가 없는 걸 보니 쓰레기는 그때그때 버린 것 같다. 주방 찬장 안에는 각종 인스턴트 음식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고, 냉장고 안에 아무렇게나 넣어놓은 먹다 남은 음식은 없다.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정도면 양호하다!’하고 마음을 쓸어내리던 찰나, 이불과 소파에서 쾌쾌한 냄새가 난다. 바닥에는 털갈이의 흔적이.. 그렇다면 화장실은? 욕실 모서리의 주황색 물때가 유난히 거슬린다. 변기커버를 들춰봤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왔다. “이 녀석들! 너희는 불합격이다!”     


어라! 집에 청소용 락스도 없다. 로켓 배송으로 욕실 세정제를 주문했다. 남편과 함께 이불을 모조리 걷어 빨래방으로 갔다가 새벽 1시에나 돌아왔다. 오랜만에 폭신한 이불을 덮은 아들은 엄마 속도 모르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엄지 척을 날렸다.      


다음날은 욕실과 변기 구석구석 락스를 뿌렸다. 특히 변기커버를 들춰본 후 스멀스멀 올라온 불안감을 씻어내기라도 하듯 안팎으로 박박 솔질해 닦았다. 물때가 생기지 않게 슬리퍼 건조대를 사서 벽에 붙여놨다. 가스레인지도 말끔히 닦고, 싱크대 배수구 거름망까지 살균해서 뒤집어 놨다. 바닥을 쓸고, 미니 청소기의 먼지통을 비우고 필터를 세척했다. 향긋한 디퓨져를 주문해서 스틱을 꽂아놓았다.      


나름 잘 정돈하고 살아온 아들이 대견하지만, 뭔가 더 해줄 것이 없는지 매일 두리번거렸다. 나의 노파심은 아들의 변기와 취업, 인생을 동일 선상에 세워놓았다. 그리고는 마치 아들을 위해 대리시험을 봐주려는 듯 조급한 마음으로 손을 걷어붙였다. 내가 변기커버를 닦는다고 아들 삶의 습관이 바뀌지는 않는다. 내가 정리한 싱크대 배수구가 아들 일상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알면서도 엄마의 마음이 자꾸 몸을 움직이게 했다.       


내가 그리 동동거린들 결국 아부다비로 돌아올 날이 되었다. 락스와 청소솔을 어찌 사용하든 내 손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대리시험은 봐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스스로의 삶을 홀로 살아낼 시간이다. 그저 뽀송한 이불을 덮고, 향긋한 냄새를 맡고, 깔끔한 욕실을 사용할 때마다 엄마의 손길을 기억해주길 바랄 뿐이다. 가끔 스스로 변기커버를 들춰보고 한 번씩 배수구 거름망의 뒷면을 닦기를 기대한다면 그것마저 엄마의 욕심일까? 

"사랑하는 아들들! 너희의 삶을 응원한다! 이제 변기 뚜껑은 너희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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