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를린부부 Dec 31. 2022

1년을 기다린 크리스마스

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2년 12월 31일 연재



아내는 크리스마스를 정말 좋아한다.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크리스마스 노래를 즐겨 듣는 그녀에게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 그 이상이다.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며 매년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우리 부부가 어릴 적, 집집마다 하나씩은 꼭 있었던 조그마한 전구가 주렁주렁 달린 크리스마스트리는 겨울 일상 중 하나였다. 어느 집은 조금 크고, 어느 집은 한 층이 더 많고, 어느 집은 줄전구를 더 둘렀고 등등의 차이는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다 고만고만한 트리를 보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크리스마스트리를 '진짜 나무'로 장식하는 독일 사람들이 참 생소하게 느껴졌다. 크기별로, 색깔별로, 천차만별 가격대로 판매되는 이 진짜 나무들은, 습기가 많은 겨울철, 집안의 벌레를 없애준다는 유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기능보다 유래가 중요한 건 아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 어디서나 중요한 행사다. 특히 유럽에서는 그 문화적, 인문학적 가치를 다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있는 행사이다. 가톨릭과 기독교의 역사가 깊은 유럽의 도시들에서는 더욱 그 의미가 크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 하루이지만, 독일을 포함한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26일도 '두 번째 크리스마스(Zweiten Weinachten), 영어로는 '박싱 데이(Boxing day)'라는 명칭으로 공식 휴일이다. 더불어 유럽 대부분의 도시에서 성탄절과 관련된 행사들은 일찌감치 11월 정도에 시작된다. 도시의 널찍한 광장이나 거리에선 하나둘씩 크리스마스 특수를 위한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며, 주말엔 벌써 거리의 모습이며, 붐비는 사람들이며,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난다.


구도심이 있는 독일의 다른 대도시들, 뮌헨, 뉘른베어크, 드레스덴 등의 도시들에선 항상 구시가지의 중심에 가장 크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때에 따라 입장료를 받는 곳도 있고, 상점에서 개별적으로 지불하는 것 외 입장 무료인 경우도 있다. 입장료가 없는 무료마켓인 경우, 도시의 다른 거리들과 물리적인 구분이 없기에 걷다 보면 어느새 마켓의 중심에 도달하는 식이다. 유료 마켓인 경우, 보통 5-10유로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맞다. 이것도 역시 싼 금액은 아니다. 특히나, 몇 년 전 불과 2-3유로 했던 '코로나 전'입장료를 생각하면 크리스마스 마켓에도 인플레이션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대신 훌쩍 비싸진 입장료를 만회하려는 듯, 주최 측에서도 이런저런 신경을 쓴다. 입장권으로 음료나 간단한 음식을 먹거나 마실 수 있다던지 등으로.


그저 '아 이런 분위기구나'정도만 어깨너머로 볼 생각이면 굳이 유료 마켓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입장료를 내는 장소들이 상대적으로 더 정돈되고, 화장실 등의 부대시설도 깨끗한 편이며, 뻔하지 않은 음식과 이벤트를 하긴 한다. 가장 중심 공간에 무대가 함께 있어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연극을 하며 함께 관람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중심 공간에 항상 큰 규모로 음식을 파는 상점들이 있다. 한국의 ‘잔치음식’하면 쉽게 떠올리는 듯한 음식들을 판매한다. 커다란 장작을 태워 직화로 굽는 돼지 목살구이, 굵직한 소시지, 각종 꼬치구이 등등 이름만으로도 배가 든든해지는 메뉴들이다. 양배추 절임의 한 종류인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와 오직 밀로만 만든 밀빵도 빠지면 섭섭하다. 그을음 가득한 고기를 한입 베어내면 잔치 분위기가 물씬 난다.


한편, 마실거리도 빠질 수 없다.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글루바인(Glühwein)은 집집마다 다른 레시피가 있다고 할 정도로 각 가정들까지도 역사가 깊은 음료이다. 이 걸쭉하고 달콤한 와인은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즐기기에 태어난 음료다. 따뜻하게 데운 와인에 계피, 설탕 및 각종 향신료를 넣어 서서히 달여낸 이 ‘음료’는 처음 들이키는 순간 달콤한 알코올 향이 코를 확 자극한다. 이와 더불어 후식으로 즐길만한 겨울 간식들, 달달하게 코팅한 견과류 및 건식품, 당 쇼크가 올 듯 두텁게 색색깔의 초콜릿을 입은 과일 등은 차가워진 추운 날씨에 움츠려든 몸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먹거리와 살 거리에 이어 빠지지 않는 하나가 바로 아이들의 놀이기구다. 성탄절과 관련된 행사들이 모두 그렇듯이 이 놀이기구들 역시 임시로 설치된 구조물이다. 쉽게 말해 후다닥 짧은 시간에 축제를 위해 들어선 기구들이다 보니, 대형 놀이동산에서 볼듯한 규모나 짜릿한 전율은 기대하기 힘들다. 부지가 넓은 곳에선 추억의 범퍼카도 보이고, 미니 열차, 회전목마, 미니 바이킹 등이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은 까르르까르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한다. ‘에이 뭐 이런 허접한 걸 타고 그러지’라는 생각은 너무 많은 시간에 때 묻은 어른의 생각이었다. 이미 까르르 웃는 아이들이 넘치는 공간 곁에는 있기만 해도 누구라도 덩달아 웃음 짓는 걸 말이다. ‘아빠가 나중에 더 근사한 거 태워줄게!’란 말은 필요 없다. 주머니에서 뒤적뒤적 꺼낸 몇 유로짜리 동전이면 된다. 그걸로 아이는 그 순간의 즐거움을 기억할 것이다.


베를린의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에서는 매년 눈썰매가 설치된다. '유럽에서 가장 큰 인공 썰매장'이라는 이 시설은 길이가 70m에 달한다. 올해는 눈이 좀 오긴 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인공눈으로 운영된다. 유료로 운영되는 이 시설은 한 번 타는 데는 1.5유로, 5번 타는데 5유로다. 친절하게 썰매를 직접 가지고 오면 무료라는 이 썰매장은, 요금이 어찌 됐건 아이의 눈에 띄면 그냥 무조건 가서 같이 타야 한다. 바로 옆에서 꽤나 크게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과 더불어, 성탄절 시즌에 세계 여러 나라 관광객들이 몰리는 장소 중 하나이다. 특히나 다른 베를린 지역보다 고층건물이 많이 들어선 장소의 특성 때문인지 더 이국적이고 색다른 풍경이다. 그렇게 어디선가 울리는 캐럴 노래를 들으며, 각자 손에 먹을거리를 하나씩 들고, 평소에 보기 힘든 거대한 눈썰매니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사진을 연신 찍어댄다.


왁자지껄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 크리스 마켓 분위기는 도시 전체 곳곳에서 일어난다. 도시 곳곳의 광장 및 중심가는 물론이고, 학교며, 직장은 물론이다. 봄의 부활절과 더불어 연중 큰 행사 중의 하나인 크리스마스는 역시 어린이들에게도 중요한 행사다. 유아원에서도 몇 주전부터 선생님, 학부모 할 것 없이 일사불란하게 계획들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모두들 열심이다. 직장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열심히 선물을 고민하고 정성스레 모두에게 선물한다.


반면 성탄절 및 연말에 가장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음악을 전공하기 위해 유학을 온 학생이 유독 많은 독일어권 나라들 중 하나인 독일에서 음악과 관련해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몇몇 지인분들은 성악가로 독일의 여러 극장에서 활동 중이신데, 이 분들은 성탄절이야 말로 '일하는 기간'이다. 모두들 성탄절 연휴를 맞아, 가족을 찾아, 휴식을 찾아 쉬는 동안 극장을 찾기 때문이다. 오페라 극장 및 각종 공연장 티켓은 특히나 성탄절 시즌이 되면 구하기 더 힘들다. 말 그대로 극장 및 공연장들의 성수기 시즌이다. 같은 이유로 주말이면 더 바빠지는 그분들에게는 '주말'이 꼭 '여유로움'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는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늘, 대부분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문을 닫는다. 늦게는 성탄절 당일까지 여는 곳이 있긴 하지만, 보통 크리스마스이브 점심때 슬슬 산책 삼아 나가보면 모두들 부산하게 정리 중이다. 공식적으로 25일과 26일이 공휴일이니, 마켓에서 이래 저래 일하던 사람들도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대명절'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성탄절 풍경과 다르게 도시 전체가 고요해지는 베를린의 성탄절에는 마트들도 문을 닫는다. 며칠 동안 가족들과, 친구들과, 지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장을 봐놓고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한다. 창문마다 형형색색의 장식을 달고, 연신 캐럴 음악을 들으며 성탄절 본연의 의미도, 거기서 파생된 나눔의 의미도 되새긴다. 몇 년 만에 평안한 성탄절을 보낼 수 있게 된 엔데믹에 감사하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에 한국에 가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