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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May 21. 2023

독일의 출산문화, 헤바메

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3년 05월 20일 연재

우리 첫째 아이는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코로나 전이니 벌써 4년 전이지만, 우리 부부는 지금도 생생하게 그 과정들을 기억한다. 처음이라는 어색함과 서툰 독일어로 인해 하나라도 놓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는지 일상의 긴장도가 높았다. 직접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독일에서의 출산 과정은 매번 큰 고비를 계속 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출산을 위한 준비 중 가장 큰 고비 중 하나는 바로 임신 기간과 출산 기간을 함께하는 든든한 동반자, 헤바메(Hebamme)를 찾는 것이었다.  


독일의 출산문화 중 하나인 헤바메는 "출산도우미" 혹은 "산파"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전에는 집에서 출산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가정 출산을 돕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요즘에도 병원이 아닌 집 등의 장소에서 다양한 형태의 출산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헤바메는 보통 출산 전 후로 집으로 방문해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체크해 준다. 특히 출산 후 첫 달에는 거의 매일 혹은 2일에 한 번씩 집으로 방문해 모유수유, 아기 목욕, 아기의 탯줄 상태, 엄마의 회복 상태 등을 점검하고 관리한다. 아이의 몸무게나 키, 둘레 등 발달에 관련된 치수의 기록도 그녀의 몫이다. 이 모든 과정은 건강보험에서 처리가 되기 때문에 따로 비용이 들지 않는 독일의 출산 복지정책 중 하나이다.


우리 부부는 처음에 이 헤바메 분들이 왜 꼭 필요한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학적 도움이 필요하면 병원에 의사분들과 간호사분들이 계시고, 출산은 당연히 병원에서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산직후 대부분의 산모들이 보통 3-4일 만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헤바메의 의미를 깨달았다. 더군다나 한국식 '산후조리원'이라는 문화가 없으니 누군가의 일상적인 도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하물며 기저귀를 갈고, 제때에 먹이고, 아이를 씻기고, 심지어는 산모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경험과 지식들이 절실했다. 가족, 친지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 서툰 두 명의 여자와 남자가 갓 태어난 아이를 보살피는 것은 절실히 학습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던 2019년에는 헤바메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거의 모든 헤바메 분들은 어느 조직의 소속이 아니라 프리랜서처럼 개인으로 활동하시기 때문에 말 그대로 '수소문'을 해야 했다. 산부인과 담당 의사나 간호사분들을 통해서, 지인을 통해서 알아낸 연락처 목록에서 일일이 전화를 해야 했다. 가장 좋은 건 역시 집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하시는, 산모와 잘 맞는 분을 찾는 것이었다.


편하게 핸드폰으로 검색할 수 있는 특별한 곳도 없었고, 인터넷에도 최신 정보가 많이 없었던 탓에, 온라인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산부인과에서 구한 "우리 동네 헤바메"라는 손바닥만 한 책으로 각 동네별로 구분되어 있는 헤바메들을 찾아야 했다. 그마저도 대부분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스케줄이 정해져 있었다.


이런 분위기 덕에 임신 초기부터 다른 예비부모들과 보이지 않는 '눈치 전쟁'이 시작된다. 경쟁이 치열한 지역은 30-40통 이상 전화를 하고 메일을 계속 보내며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집들보다 늦은 임신 7-8개월쯤 뒤늦게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약속한 날짜에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하고, 서로 연락이 엇갈리다 예정일이 다가와 버리는 일도 있다는 주변의 염려는 근심이 되었다. 진짜 이러다 못 구할 수도 있으니 헤바메가 없어도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단념하려던 참에 겨우 한 명과 연결이 됐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와 출산까지 함께 하기로 '계약'했다.


"산파"라는 단어의 느낌 때문인지 할머니쯤 되는 사람을 생각했었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내가 상상한 헤바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 봤을 땐 너무 젊어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아이가 다섯이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 신랑은 그녀를 진정한 전문가로 인정했다. 아이 다섯의 엄마가 이렇게 활발하게 직업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2019년에 이어 금년에도 그분에게 연락해 보았으나, 일을 그만두신 건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해서 우리 부부는 또다시 다른 헤바메를 수소문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눈부신 변화들이 있었다. 코로나 시간을 거치면서 온라인 서비스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간편한 핸드폰 앱으로 기간과 거주 장소 등을 입력하면 출산예정일에 가능한 헤바메 분들의 목록을 구할 수도 있고, 심지어 그중에는 화상상담등을 하시는 분들도 생겼다.


헤바메는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역할이다. 의학적인 지식 및 경험을 가진 것은 물론, 본인 스스로 더 많은 산모들을 유치하기 위해 특기 등을 자신의 프로필에 기재해 놓는다. 보통은 자신만의 차별화 전략으로, 그 종류도 여러 가지이다. 영어, 프랑스어 등의 각종 언어로 소통가능함이나 '침놓기'등의 차별화된 기술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다.


이번 둘째 출산을 위해 아내가 직접 수소문한 새로운 헤바메 분을 아직 난 만나보지 못했다.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 혼자 헤바메와 만난 아내는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스스로 해보려는 아내의 노력이 고맙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다. 그리고 꼼꼼하다 못해 번역기까지 돌려 한글로 문자를 보내주는 헤바메의 수고도 고맙다.


몇 해 전인가 한국의 산후조리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아내와 함께 봤다. 아이의 출산과 관련된 사람의 모든 페이소스가 코믹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된 드라마를 보며, 아내와 나는 매 순간 감탄했다. 본의 아니게 출생단계부터 생소한 문화를 경험한 탓에 한국에서의 출산 경험을 가진 가족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새롭고 즐겁다.


특히나 갓 태어난 신생아의 깨끗하고 말끔한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 첫째 아이는 태어난지 대략 2주만에 첫 목욕을 했는데, 태어난지 얼마 안된 신생아라 물티슈롤 닭아줄 생가은 커녕 물에 대는 것도 겁이 났었다. 거기에 당시 헤바메는 탯줄이 자연스레 말라서 떨어질때까지 목욕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확실한 철학이 있었다. 아마도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냥 우리가 알아서 조심조심 좀 씻기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라 그럴까, 우리 부부는 첫째를 통해 겪었던 막연한 두려움을 많이 느끼지 않는다. 어디서 누군가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면 심지어 든든하기까지 하다. 헤바메가 집으로 온다는 것이 지난번엔 적잖이 부담스러웠는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 있을까. 집까지 와서 일대일 개인 육아레슨을 받는다는 게 그저 편리하고 고마울 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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