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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Jun 18. 2023

자동차로 가족여행

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3년 06월 17일 연재


유럽에 사는 큰 장점 중 하나는 육로여행이다. 육로로 경험하는 이색적인 문화체험은 항상 매력적이다. 아이를 동반한 3인 이상의 가족이 매일 타는 익숙한 자가용을 타고 아무 멀리, 다른 언어와 다른 생김새의 도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긴 이동시간으로 인한 피로감도 감히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휴일이 유난히도 많은 5월의 징검다리 휴가에 우리 가족이 계획한 이번 휴가는 대략 1700킬로미터의 여정이었다. 5일간의 기간 동안 3개국을 거치는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염려는 바로 긴 이동시간이었다. 어차피 사는 곳에서 1-2시간 거리에 있는 장소들은 평소에도 자주 다니곤 했으니, 한 번에 큰 걸음으로, 최대한 멀리 이동해야 했다.


사실 장거리 자동차여행은 아이만큼이나 어른들에게도 힘들다. 오랜 시간 동안 차에 머무는 것은 흔하지 않은 경험이라 그렇기도 하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부부에게 차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는 320킬로미터, 바로 서울과 부산의 거리였다.


서울-부산, 320 킬로미터. 대한민국 사람에게 ‘가장 먼 거리’로 통용되는 암묵적인 사회적 단위. 그런 우리에게 이번 1700킬로미터의 여행은 서울과 부산을 거의 3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로, 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한 거리였다. 그러니 '전혀 감이 오지 않는 거리'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첫날의 여정은 베를린에서 바이에른주(Bayern)의 레겐스부르크(Regensburg)까지였다. 대략 39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의 여행에는 5시간가량에 소요됐다. ‘독일의 고속도로에는 속도 제한이 없다’는 오래된 한국식 농담이 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여전히 논쟁 중인 고속도로 속도제한의 기준은 보통 시속 130킬로미터이다. 차가 없을 때는 더 빨리, 때로는 교통체증으로 더 느리게, 그렇게 달리고 달려 5시간을 이동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 살짝 늦은 점심을 먹을 시간에 도착했다. 멀리 바이에른까지 왔으니, 그곳에서 무얼 먹는지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전통 음식점에 간다. 바이에른 음식은 워낙 '독일의 음식'으로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많이 접할 수 있는 음식이긴 하다. 학세(Haxe)나 제철음식인 슈파겔(Spargel)을 곁들인 수프 등을 시킨다. 소시지를 뜻하는 부어스트(Wurst)도 빠질 수 없다. 장거리 운전 후라 마음 편하게 마시지 못한 밀도 높은 독일 남부의 맥주는 지금도 한스럽다.


오래된 구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식당에서 분위기에 한뜻 취해 식사를 하고 걸어서 도시를 누빈다. 오래된 성을 지나 마차가 지나던 좁은 길에 마주해 있는 오래된 도시의 흔적 사이로 거닌다. 이색적인 풍경과 익숙하지 않은 재료, 질감, 스케일에 연신 우리 모두는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린다.


다시 한 시간 정도를 이동해 오늘의 숙소로 이동했다. 란트슈트(Landschut)에 위치한 유스호스텔이다. 유스호스텔(Youthhostel)은 말 그래도 젊은 사람들을 위한 경제적인 숙소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가족단위나 단체여행객들 위한 숙소로도 좋다. 많은 호텔등의 숙박업소들이 대부분 2-3인실이 표준이기에 특히나 4인 이상의 가족에게는 이런 유스호스텔이 매력적이다.


간단한 회원가입과 연회비를 납부하면 유럽전역의 유스호스텔을 이용할 수 있다. 알려진 관광지에 위치한 유스호스텔은 성수기와 비성수기 차이가 커, 때로는 예약하기가 아주 어렵다. 보통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등의 부대시설을 포함하고, 도심지 외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처럼 아이와 함께 자동차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알맞다.


우리 아이는 무엇보다 2층침대에 아주 매력을 느꼈다. 시종일관 오르락내리락하며 자신의 물건을 옮겼다 말았다는 반복하는 아이는 당장이라도 2층에서 혼자 잘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결국 엄마와 함께 잠들어야 했다. 잠자리 분리가 안된 아이와 1인용 침대에서 숙박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피곤하다.


다음 행선지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였다. 독일 남부 국경과 맞닿아 있는 산속의 도시 잘츠부르크는 이미 한국사람들에겐 많이 알려져 있는 관광지이다. 오스트리아로 향하며 차로 국경을 넘는 재미가 있는데, 물리적 경계가 있는 게 아니라 간판으로 구분되어 있다. 같은 독일어지만 단어나 억양이 매우 다른 이 지역은 인구 대략 15만 명의 아담한 도시이다.


겹겹이 쌓인 등고선 사이에 들어선 이 도시는 높이차로 인해 독특한 도시 풍경을 가지고 있다. 길거리마다 높낮이가 다른 건물들, 그에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교차하는 거리는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확 트인 시야부터, 그 사이사이 오밀조밀 들어선 도시는 모차르트의 생가 외에도 도시 자체로서 아주 매력적인 장소이다. 굽이 굽이 길거리를 걷다 보면, 입이 딱 벌어지는 풍경과 비현실적인 일상의 풍경들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잘츠부르크와 가깝게 이동가능한 거리에 쾨닉제(Königssee)라는 호수가 있다. 독일어를 직역하면, '왕의 호수'가 되는 이 산속 거대한 호수는 히틀러가 가장 사랑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배를 타고 몇 시간 투어도 가능할 정도의 대규모로, 곤돌라나 여러 형태의 숙박시설, 대규모 주차장 등 독일의 다른 장소와 다른 제대로 된 관광지다운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로 잘츠부르크까지 간다면, 쾨닉제는 꼭 함께 들려야 할 장소이다.


우리는 독일 남부를 출발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지나 체코 프라하까지 달렸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경계와는 달리 오스트리아와 체코의 경계는 더 눈에 많이 띈다. 일단 언어가 바뀌며, 도로명이나 지명 외에는 이해할 수 있는 게 없어졌고, 도시의 풍경도 급격스럽게 바뀐다.


프라하 시내는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 위해, 우리는 프라하 외곽에 숙소를 잡고 차로 숙소에 내내 세워두었다. 대중교통은 핸드폰이나 카드로 결제하기 편리하게 되어있어, 별 어려움이 없었다. 아내와 연애할 당시에도 둘이 차를 빌려 이번과 비슷하게 유럽 도시들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둘이 프라하를 왔었다. 그러나 성탄절이라는 특수한 시점에 물려, 도시의 특정 부분만 붐비는 탓에 제대로 돌아보지는 못했다.


그 후로, 6년 반이 지나 4인 가족이 되어 다시 들른 프라하는, 여전히 매력적이며 볼거리가 넘쳐났다. 여행 내내 뛰어놀지 못한 아이를 위해 놀이터도 가야 했고, 중간중간에 더 쉬엄쉬엄 휴식을 해야 했지만, 그것도 여행의 일부였다. 예전처럼 멋진 명소를 가기보다는 베를린에서 할 수 없는 경험들에 더 집중했다.


산이 없는 베를린에 살아서인지, 산이 너무 많은 서울에 엄마 아빠가 오래 살아서 인지, 등고차가 있는 도시는 모두 흥미롭다.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와 기술 등이 녹아있는 도시의 풍경은 언제 봐도 재미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2만보를 함께 걸어 프라하를 여행했다. 쉬엄쉬엄, 앉았다, 먹었다, 걸었다, 그렇게 모두 즐거운 여행을 위해 서로 적당히 양보하며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


프라하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로, 베를린과는 불과 4시간 반 정도 거리이다. 그러니 마음을 먹으면, 아침 일찍 출발해 점심을 즐길 수 있는 거리다. 독일에 비해 저렴한 물가뿐만 아니라, 몇 시간 거리에 다른 언어와 풍습으로 사는 풍경에 관심이 있다면 시도해 볼 만한 근거리 여행지다.


그렇게 대략일주일간의 자동차 여행이 끝났다. 생각보다 만삭의 아내와 아이가 차를 너무 잘 타줬으며, 운전도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보다는 수월했다. 중간중간의 화장실이나 휴게소도 여행을 지치지 않게 만들었고, 여행에 전반적으로 필요한 수단들이 전산화가 많이 되어 편리했다.


이번엔 남쪽으로 큰 원을 그렸으니 다음번엔 서쪽으로 큰 원을 그리는 여행을 상상한다. 혹은 여느 가족처럼, 20시간을 내리 달려 남부 유럽으로 향하는 꿈을 꾼다. 서서히 조금씩 장거리 여행에 대한 근육이 생기다 보면 어느새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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