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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Oct 16. 2023

아동언어치료의 세계

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3년 10월 14일 연재

지난 4월, 첫째 아이의 4번째 생일즈음 소아과 정기검진에 다녀왔다. 여태까지의 정기검진은 대부분 신체발달사항에 중점을 둔 검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4번째 생일 직후의 8번째 정기검진은 조금 달랐다. 부모와 떨어져 담당의와 개별적 상담을 하기도 하고, 그림을 통한 심리 검사도 한다. 물론, ‘말’로 의사전달을 해야 한다. 아이의 독일어 의사소통에 대한 검진도 포함되는 것이다.


첫째 아이는 생후 18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코로나로 인한 중간중간의 공백기를 제외하더라도 벌써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매일매일 다른 아이들과 ‘외국어’로 소통한 셈이다. 그러나 이 아이의 신체발달 사항과 맞추어 이 아이의 독일어 소통이 잘 발달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우리 아이가 한국말로 소통하는 만큼 다른 아이들은 각자의 가정에서 독일말로 소통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주변의 다른 한국가정들을 통해 독일어 소통에 대한 고충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부모의 모국어인 한국어로 소통하다 보니 독일어에 대한 노출이 적어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단어량, 언어량이나 소통 방법 등에 대해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더불어 아이들의 놀이에 행동보다 언어가 더 중요해지는 나이가 됐으니, 더 가깝게 체감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출생 이후 줄곧 ‘집에서는 모국어’ 사용이 기본 원칙이었다. 소아과 의사, 유치원 선생님은 물론 사회복지사 등등 우리가 그동안 만나온 모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같은 원칙을 주지했다. 보호자의 어색한 외국어 사용이 되려 아이에게 혼란을 준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로 미묘한 감정표현이나 세세한 의사표현은 한국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언어로 생각하는 방식을 배운다는 학문적인 원인은 제쳐 놓고, 일단 우리 부부의 수월한 의사소통수단은 한국어밖에 없었다. 고민한 결과가 아니라, 그저 우리 부부가 소통하는 언어가 한국어이니 우리 집의 모국어가 한국어가 된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 아이는 한국어 소통을 잘 따라와 주었다. 집안에서, 또는 한국말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 잘 적응했다. 매일매일 두 명의 어른과 동일한 언어로 많은 시간을 지내니, 결과적으로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러나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며, 오며 가며 다른 부모들이나 아이들과 소통을 하며, 독일어에 대한 아쉬움과 답답함은 항상 있었다. 때로는 아이가 어색한 상황을 보고 배울까 걱정도 했다. 유치원 선생님이나 담당의사 선생님과 더 얘기하고 싶기도 했다. 짧은 독일어로 의도치 않게 위축되는 상황도 있었고, 아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풍경도 더러 있었다.


이렇게 집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사회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가정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위한, 언어교정과 유사한 과정이 있다. 언어병리학(독일어로 로고페디, Logopädie)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이다. 아이의 발달과정과 가정환경 등을 고려해, 소아과 전문의가 언어교정을 위한 처방전을 발급하고, 대부분의 비용은 건강보험사가 지불한다.


부모가 아닌 친밀한 상대와 독일어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는 흔치 않다. 더군다나 공식적인 채널을 통한 기회이니, 독일어를 외국어로 인지하는 모든 또래의 아이들이 이 처방전을 바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모든 소아과 담당의가 이 처방전을 발급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집집마다 경우가 상이하고, 병원마다 사정이 다르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발급받은 처방전으로 언어병리학 진료시설을 찾아야 하는데, 이 또한 아주 번거롭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 진료시설은 기본 대기기간이 6개월 정도이다. 소아과 담당의에게 진찰받은 진단서를 들고 동네 근처 병원을 찾아다녀야 한다. 대부분의 병원에 일단 대기명단에는 올리지만 언제일지는 기약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4월부터 시작된 진료소 찾기가 8월이 되고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 시작되자 빈자리가 나기 시작했다. 모두들 장기간 여름휴가로 자리를 비우자 병원에도 빈자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몇 군데 병원에서 연락이 올 정도로 빈자리가 한꺼번에 나는 듯했다. 그렇게 집과 유치원 사이에 위치한 병원에서 부랴부랴 우리 아이도 드디어 첫 진료를 시작했다.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나섰다.


대부분 모든 유아 진료과정이 그렇듯 언어치료과정 역시 ‘놀이 같은 진료’이다. 첫 한 달은 이 아이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 다양한 검사를 한다. 단어 검사, 문장 검사 등등 아이가 지루할까 꼼꼼하고 세심한 선생님의 지도 아래 방대한 양의 문진표를 작성한다. 물론, 부모와 함께 개별상담도 한다. 우리 아이의 모국어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어느 정도의 소통이 가능한지, 신체기능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다른 문제는 없는지, 시험을 방불케 하는 검사들을 진행한다.  


백과사전처럼 두툼한 책에 담긴 내용대로 차근차근 검사를 한다. 그 사이에 아이의 집중력을 위해 간단한 놀이도 하고 아이와의 친밀감을 위해 선생님도 노력한다. 그림을 보고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그림을 단어로 설명하기도 하고, 퍼즐처럼 이루어진 상관관계를 유추하기도 한다.


그렇게 검사가 완료될 무렵, 이제는 아이도 선생님과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제법 활발하게 진료에 임한다. 사실 말이 진료이지, 아이에게는 '놀이'라고 설명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놀이를 한다. 그래서인지 진료공간은 보드게임카페를 방불케 하는 다양한 놀이기구와 게임등을 구비하고 있다.


아이들 교감에 필수인 역할놀이도 있다. 갑자기 뜬금없는 상황극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주변에 보이는 물건들로 특정한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의 점원과 손님이라는 상황을 만들어, 해당 상황에 필요한 단어들과 문장들을 틈틈이 연습하거나 익숙해지도록 유도한다. 부엌 놀이는 평소에도 아이가 즐기는 놀이인데, 부엌과 관련한 상황만 해도, 수많은 단어들과 상황들을 언어로 표현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놀이인 동시에 연습이고 치료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편안하게 독일어로 책을 읽어주는 상황에서 아이는 나름대로의 억양과 톤을 기억할 것이다. 언어에 부자연스러움을 가지고 있으면, 읽어주는 소리에도 그 어색함이 묻어난다. 아이가 가끔씩 집에서 독일어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난감할 때가 있었다. 단어와 문장과 발음에 신경 쓰느라 부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하루는 여러 대의 미니카를 가지고 한 시간을 놀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미니카를 돌아가 집어가며, 각 미니카와 관련된 용어들을 들어보기도 하고, 평소 길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상황을 재현하기도 한다. 자전거 도로와 차도가 겹치는 부분에서는 교통법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면 병원에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도 듣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는 사이, 아이의 독일어 소통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아이의 진료가 진행되며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인 우리의 인식도 변한다. 독일사회에 살며 독일어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에 말이다. 모르면 찾아보고, 익숙해져야 하고, 다음번에는 배운 걸 써보려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아이와 선생님의 소통을 돕기 위해 아이에게 설명할 때는 한국말로 설명을 하는데, 이것이 단지 다른 언어일 뿐, 내용만 잘 전달되면 그뿐이라는 인식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나도, 아내도, 우리 아이도, 한국어만큼 독일어를 알 수는 없다. 이 단순한 인정이 이상할 만큼의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왠지 독일사회에 살며 독일어를 유창하지 구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부분이 많이 편안해졌다.


아이와 선생님과 셋이 둘러앉아 한국어 단어를 알려주기도 하고 독일어 단어를 배우기도 하고 언어를 돌아가며 소통하는 과정은 아이에게도 충분히 자신감을 준 모양이다. 또한 진료와 관련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유치원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도 한몫했는지, 아이는 이중언어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의 서툰 독일어가 ‘그럴 수도 있는 ‘ 현상이라고 이야기해 준 선생님이 고마울 따름이다.


독일에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운 한국 가정의 부모들은 항상 이야기한다. 때에 따라 천천히, 때론 재빠르게, 아이 각자의 리듬으로 배우게 된다고. 언어에 대한 염려는 기우일 뿐이라 한다. 육아의 다른 모든 과정이 그렇듯 언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머릿속으론 이해하지만, 당장 동네 놀이터에서 속 시원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하면 항상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일주일에 한 번, 이제는 아이도 로고페디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이 수업을 받게 되기까지 복잡하고 머리 아팠던 노력을 기분 좋게 상쇄해 준다. 지난주에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웠는지 계속해서 중얼중얼거리는 노래를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손으로 써준 가사를 들고, 이제는 집에서 아이와 함께 불러보려 노력한다. 놀이터에 우연히 만난 아이가 이 노래를 중얼거리면 씩 웃으며 함께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주, 우리 아이는 태어나 두 번째로 유치원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꽁냥꽁냥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생긴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함께하는 주말의 생일파티가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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