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3년 11월 11일 연재
둘째 아이의 출생으로 육아휴직을 할 때였다. 때는 8월, 9월로 베를린의 여름 날씨가 절정이었다. 매일매일 너무나도 화창한 날씨를 보내는 게,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여름의 태양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렇게 좋은 날씨에도, 아이의 유치원은 걸어가기는 멀고, 차로 가기에는 주차에 뭐에 중간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애매했다. 원래부터 자전거는 첫째 아이의 유치원 통학을 위한 최적의 교통수단이었다.
여름이면 베를린에는 눈에 띄게 자전거 인구가 많이 늘어난다. 그중 오전 이른 시간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자전거 행렬이 인상적이다. 때론 보호자 앞에 타기도 하고, 보호자 뒤에 타기도 하며, 바구니처럼 생긴 어린이 탑승용 자전거, 말만 자전거지 삼륜차와 다를 바 없는 덩치 큰 자전거도 있다.
나는 성장하면서 자전거로 아이를 통학시켜 주는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자전거를 즐겨 타고 관리하는 걸 즐겼지만, 학교를 가는 통학수단으로 이용하지는 못했다. 아파트 단지에 일렬로 주차된 노란 버스들이 아이들을 픽업하는 풍경에서, 자전거는 대부분 주말이나 방과 후의 레저수단쯤으로 치부됐다.
베를린의 천차만별 자전거 인구를 보며, ‘나도 우리 아이와 저렇게 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원인 모를 도전 의식을 느낀 후,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당연히 자전거가 필요했다. 그것도 그냥 자전거가 아닌, 아이를 태우기 피해 필요한 장비들이 한가득 장착되어 있는 자전거가 말이다. 인터넷의 중고거래되는 자전거들을 보니 기세가 단번에 꺾인다. 아이와 함께 화창한 날씨를 즐기는 것도 중요했지만 예상에 없는 큰 지출은 또 곤란했다. 그러다 머리에 번뜩, 이웃이 몇 달째 방치하고 있는 자전거가 떠올랐다.
이웃의 다정한 배려에 드디어 자전거 본체는 섭외가 됐다. 물론 자잘한 자전거 수리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했다. 그래서 결국 자전거는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아이를 태울 어린이용 시트가 필요했다. 다시 중고거래 사이트를 뒤지고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그냥 새것을 구입하기로 했다. 나야 그렇다 치고 왠지 아이는 새것을 태워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몇십 년 만에 나에게 자전거가 다시 생겼다. 전적으로 필요에 의한 기능을 장착한 자전거가. 헬멧을 씌우고 아이를 처음 태우던 그날에 아직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난다. 까르르까르르 웃음 짓던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열심히 페달을 저어 아이의 통학을 시키던 몇 주의 시간이 지나, 다시 복직을 하게 됐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아이의 통학을 엄마가 담당하며 당연히 자전거는 다시 사용할 일이 많이 줄어들고, 밖에서 애꾿은 비만 맞고 녹만 슬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사무실 내 자리의 맞은편, 아이 셋을 키운 직장의 동료가 60대의 나이에 편도 14킬로미터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는 이야기에 강한 자극을 받고, 자전거 출퇴근에 도전하게 됐다. 이번에도 역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자전거가 다니기 좋은 길을 어플로 찾아봤다. 집에서 사무실까지의 거리를 자전거로 완주하다간, 출근하자마자 퇴근해야 할 지경이니, 그건 어렵고 대신 어느 구간에 몇 킬로 정도를 타면 좋을지 살펴봤다. 그리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지하철에 자전거를 실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자전거와 함께 탑승하기 위한 추가 운임을 구입했다. 베를린 해당 지역의 모든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월 정액권이 있다면, 약간의 추가 운임만 지불하면 된다. 2023년 10월 기준, 1달 동안 자전거 탑승에 대한 추가 운임은 12유로이다. 다행히 모든 지하철에는 자전거, 휠체어, 유아차 등을 위한 별도의 칸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자, 이제 자전거를 타면 된다. 아이가 탑승하지 않아 유난히 덜그럭 거리는 아이용 카시트를 착용한 채로. 일단 몸풀기로, 집에서 두 정거장 정도를 탔다. 붐비지 않는 자전거 도로는 날씨가 좀 짗굳어도 좋다. 그 후에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 근처까지 이동한다. 사무실이 위치한 베를린의 하케셔 막트(Hackescher Markt)는 언제나 사람으로 붐비기도 하지만, 지하철역의 구조가 복잡하다. 다른 근처 지하철역인 오라니엔부어거 스트라쎄(Oranienburger Straße) 역은 사무실과 너무 가까워 타는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몇 정거장 전인, 브란덴 부르크(Brandenburger Tor) 역에 내리기로 했다.
자전거로 사무실에 가기에는 아주 적당한 거리지만 브란덴 부르크 역은 베를린의 대표적인 여행지로, 항상 여행객들로 붐빈다. 비단 이 역뿐만 아니라 이 근방 도심 지역이 대체로 그랬다. 그러나 염려와 다르게 자전거 도로가 너무 잘 갖추어져 있는 시내 중심가의 모습에 매일 놀란다. 심지어는 ‘자전거 우선 도로’가 생각보다 많이 지정되어 있다. 바닥에 큰 글씨로 표시되어 있는 이 자전거 우선 도로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일반 도로로, 일반 차량들과 교차 사용되지만, 자전거를 위한 차선이 따로 그려져 있다. 평일 출퇴근 시간에는 꽤나 자전거 통행량이 많아서 자동차 운전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이 도로에서 우선순위는 항상 자전거이다.
사실 자전거 우선도로뿐만 아니라, 도심 어느 곳에서도 ‘차량 우선 도로’는 없다. 일반도로에서도 자전거 및 이륜차들이 함께 운행하기 때문에 기능상으로는 도심 내 ’ 고속도로‘가 유일한 자동차 전용도로이다. 일상 곳곳에서 발견되는 신호등이 없는 보행자 도로나, 일반 차도에서도 사람이 제일 먼저, 자전거가 다음, 그리고 자동차가 제일 나중이다. 외부충격의 강도를 생각해 봤을 때 당연한 순서이다. 종종 베를린에 방문하는 이들이 체감하는 베를린 사람들의 충격적인 행태는 사실 법적으로 규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어릴 때부터 교육받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봐온 결과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전거와 관련된 교통법 및 숙련에 대해 교육한다.
그러나 자전거 이용을 위한 도로체계나, 자전거 주차장 등, 자전거와 관련된 인프라를 시 차원에서 제공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무작정 자전거를 타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비가 많이 오는 추운 겨울 날씨, 방한복을 가득 두른 사람들이 궂은 날씨에도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과 통학을 하는 데는 가장 먼저 '시간'이 제일 중요한 동기이다. 같은 거리를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으로 이동했을 때의 시간보다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이 더 빨라서이기도 하고, 번거롭게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아서 되서이기도 하다.
일명, 화이트 컬러라 불리는, 매일 정장을 직장에서 착용하는 사람은 자전거 출퇴근이 아마도 더 번거로울 수 있다. 나 자신도 업무상 특별한 미팅이 있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경우는 자전거 이용을 피한다. '특별한 일이 없거나', 같은 이동시간이라면 그냥 대중교통에 몸을 싫은 것보다 짧은 거리라도 자전거를 이용하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도 작용한다. 그리고 특별한 시간을 내서 하는 운동보다, 일상과 더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자전거나 걷기 등이 오히려 더 반복적으로 몸을 건강하게 자극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전거 이용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다. 마치 자동차 모의 시험장 같은 '자전거 도로'를 달리며 수신호 등을 익히고, 사고나 응급 상황에 어떻게 대쳐 해야 할지에 대해 배운다고 한다. 자전거 인구가 많은 만큼,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만큼, 공공차원에서 교육으로 풀어가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는 탓일 것이다.
그러나 자전거 이용과 관련해, '법규'로 이루어진 내용보다 '권고'사항이 많다. 때문인지, 자전거 도로에서 위험한 상황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자전거끼리의 추돌, 자동차와의 충돌, 보행자와의 접촉사고 등부터 트램의 트랙에 자전거 바퀴가 끼는 안전사고들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니, '도로'에 맞는 정신무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가장 필요하다. 시간에 쫓기면 마음이 급해지고, 급하다 보면 서두르게 되며, 위험한 상황에 이르기 때문이다.
좋은 날씨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아이와 함께 자전거로 도시를 이동하는 것은 상쾌하다. 왠지 결말과도 같은 이 상괘함이 달고 다니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다 만족해야 하듯, 자전거 이용 역시 책임감이 따르고, 질서가 필요하다. 평소 달그락 소리만 나는 아이의 자전거 시트에 아이를 태우고 이동할 때면, 나 역시도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더 조심하게 된다. 아이에게 자전거를 함께 타며, 마냥 즐거운 부분만 아니라, 저기에 따라오는 책임감과 같은 부분도 아이가 배웠으면 한다. 이 아이도 언젠가 누군가를 뒤에 태울수도 있으니 말이다.
주말에는 내가 도리에 자전거를 타러 나가자고 한다. 집 근처 마트에 갈 일을 일부러 만들기도 한다. 둘이 헬멧을 쓰고 마트에 가서 필요한 것도 사고, 군것질 거리도 하는 것도 자전거 타기의 일부이다. 내가 자전거 타기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듯, 이렇게 작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 아이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전거 타기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게 언제, 어느 장소가 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