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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 서머싯 몸

나는 어떤 굴레에 갇혀 있나?

by Erica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사람의 삶에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태어난다거나 태어나지않는다거나,
산다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것은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삶도 무의미하고 죽음도 무의미하다.


고등학생 시절,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는 내게 큰 충격으로 남았다.
그때의 나는 아직 세상을 다 알기엔 너무 어렸고, 그 속에 담긴 삶의 고통과 주인공 남자와 밀드러드의 관계는 감당하기 벅찼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주인공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던 그 책은 내게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삶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처음 마주하게 한 경험이었고, 삶이 괴롭고 집착의 늪에 반복적으로 빠질 때마다 그 책의 제목만 떠올랐다.

이제 중년이 된 지금, 그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 맞춰보고 싶어졌다.
젊은 날에는 감정의 무게로 읽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삶의 답답함과 불안, 풀리지 않는 관계와 욕망의 굴레 속에서,
그때처럼 책 속에서 내 마음의 해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어쩌면 이 고전이 수십 년 전의 나에게 그랬듯,
지금의 나에게도 그 굴레를 조금은 느슨하게 푸는 실마리를 건네줄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를 품은 채, 나는 다시 『인간의 굴레에서』의 첫 장을 펼쳤다.



간단 줄거리


주인공 필립 캐리는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 장애를 지닌 채 세상에 나온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외삼촌의 집에서 자라며 외로움 속에 성장한 그는, 사랑과 인정에 대한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미술가의 꿈을 품지만 재능의 한계를 느껴 좌절하고, 우연히 만난 여인 밀드리드에게 집착하며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러나 잇따른 실패와 고통 속에서 그는 점차 깨닫는다. 삶은 완벽하거나 의미로 가득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인간은 누구나 결핍과 한계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결국 필립은 평범한 사랑과 일상의 삶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발견한다.



책 속으로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머리에는 끊임없이 주입되어 온 진실 없는 이상들만 가득 차 있어 현실에 접촉할 때마다 멍들고 상처받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어떤 공모의 희생자처럼 보인다. 선택의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 이상적인 책들과 망각의 장밋빛 아지랑이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는 나이 든 사람들의 말, 이 두 가지가 공모하여 젊은이들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삶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기가 읽은 모든 것, 자기가 들은 모든 것이 거짓말투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그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은 인생의 십자가에 그들을 때려 박는 못이 된다. 이상한 것은 쓰라린 환멸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번에는 무의식적으로 저마다 억제할 수 없는 내부의 어떤 큰 힘에 의해 그 환멸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그건 불가능해. 자네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야. 세상을 살 만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우선 필요한 일은 인간의 불가피한 이기심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걸 말일세. 자넨 타인에게 이기적이기 않기를 요구하는데 그건 자네의 욕망을 위해 타인더러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라는 모순된 주장이야. 타인이 왜 그래야 하나. 모든 개인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사실을 자네가 받아들여야 자넨 다른 사람들에게 덜 요구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덜 실망할 거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어. 사람은 인생에서 단 한가지를 추구하지. 그건 자기 자신의 쾌락이야."



"그러한 삶의 원리가 소용없다면 도대체 어떤 원리가 있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이런 방식이 아니고 저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결국 감정에 따라 행동하리라. 하지만 그 감정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결과가 좋게 끝난다거나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거나 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 아닐까. 생각할수록 삶은 얽히고설킨 혼돈 같았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힘에 사로잡혀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목적도 증발해 버린다. 그저 뛰기 위해 뛰고 있는 것만 같다."


"필립은 행복을 얻고 싶은 욕망을 버림으로써 그의 마지막 미망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라는 척도로 삶을 잰다면 이제까지 그의 삶은 끔찍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척도로도 잴 수 있음을 알고나니 절로 기운이 솟는 듯 했다. 고통도 문제가 아니듯 행복도 문제가 아니었다. 살면서 만나는 행복이나 고통은 모두 삶의 다른 세부적인 사건들과 함께 디자인을 정교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한순간 그는 삶의 우연사들을 넘어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들은 전처럼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이제는 삶의 무늬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동기가 될 뿐이다."


"필립은 끝없는 노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에게 삶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저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듯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것이리라. 이 모두가 헛된 것이려니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필립으로서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마다, 생각되는 것마다 그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것은 즐거운 분노였다. 삶이 무의미하다면 그것을 별로 두려워할 것도 없을 테니까. 필립은 이상한 힘을 느끼며 삶과 마주했다."




책장을 덮으며


『인간의 굴레에서』를 다시 읽으며 나는 고등학교 시절 겪은 충격과는 다른 충격을 받았다. 젊은 시절에는 필립의 고통이 답답하고 그의 선택들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인간다운 것임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듯 하다. 삶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어긋나고 다시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걸까.

서머싯 몸은 이 소설을 통해 우리 모두가 각자의 굴레를 지닌 채 살아간다는 사실을 담담히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그 굴레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이라는 메세지를 주는 것 같다.

삶에 무의미에 대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굴레와 집착에 대하여,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다.


젊은 날엔 답이 없어서 괴로웠지만, 지금은 답이 없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든다.

어쩌면 그게, 굴레 속에서도 자유를 배우는 어른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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