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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쁘삐 Dec 03. 2024

스물아홉, 겨울(1)

2024년의 기록

주인이 따로 있는 옷을 뺏어 입은 듯, 어떤 날에는 하릴없이 허망했고 어떤 날에는 꽉 낀 듯 숨이 막혀왔다. 수없이 꽂히는 눈빛들에 그저 탄탄대로를 걷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한 순간, 노력은 반드시 기대보다 앞서야 했다. 스스로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를 잘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마저 숱한 의문점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료들에게 꽤나 무례하고 오만한 사람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야?"

"이제 이곳에서 네 편은 나밖에 안 남았어"라는 걱정 섞인 선배의 말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왜 여기서 이토록 엉망진창이 되었을까.


마음이 한 번 철렁할 때마다, 뜨거운 물을 끼얹은 것처럼 심장이 쓰렸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말이 나오지 않기도 했다. 나를 믿고 선택해 준 선배를 위해서라도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자고 다짐하며 견뎌왔지만, 의지와 다르게 나는 수없이 무너져갔다.


익숙한 공간에 낯선 존재였던 나는 짧은 시간 안에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본적으로 지쳐있던 나의 표정과 말들은 내가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모질게 재생산됐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스트레스를 견디며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내 앞에서 나에 대한 아쉬움을 직접적으로 토로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지만, 그럼에도 선배를 통해 듣게 된 나에 대한 이야기들은 상상이상으로 내 마음을 베어갔다. 일주일 중 5일이나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표정과 행동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순간순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겸손함이 아닌 두려움이 가득해진 순간, 나는 그렇게 겁에 질린 아이가 됐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볼품없게 살이 빠졌다. 소화할 엄두가 나지 않아 몇 끼니를 연달아 거르는 날도 있었다. 그저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서 쉬고 싶었지만, 마음 편히 쉴 곳도 마땅치 않은 이 직장이 너무 싫었다. 운전을 해서 출근한 날에는 점심시간을 틈타 차 안에 들어가 울며 기도하는 날이 많았다. 왜 나는 순탄한 직장생활을 할 수 없는지, 이 지독한 시간들의 의미를 묻기도 하고, 내 욕심에 대한 대가라면 그 또한 너무 괴로워 절망하기도 했다.


일주일 전쯤, 함께 다독이며 버텨왔던 같은 팀 동료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 빈자리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선배로서 나는 무엇을 했나 싶어 미안하기도 했고 괜스레 서글퍼지기도 했다.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남은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자기 몫 그 이상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나만이 여전히 한 명치의 일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의 다음으로 이곳에서 떠나야 할 차례는, 나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가득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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