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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물고기의 자리

브런치가 내게 호수인 이유

by 모리박

나는 바다를 무서워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와 그 속의 깊은 수심 속에 자리 잡은 어둠에 짓눌리지 않는 이들이 내겐 신기하게 느껴진다. 대신 나는 호수를 좋아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기본적으로 호수를 빙 둘러싸고 있기도 하고, 호수를 돌며 주로 조깅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끝없는 바다와 달리, 호수는 그 전체를 한 바퀴 도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호수를 좋아한다.


2023년, 반려동물 웹툰을 막 시작했을 때 브런치는 내게 호수와 같았다. 처음엔 대형 웹툰 사이트인 네이바나 카타오웹툰 같은 곳을 노려보기도 했지만, 그곳은 내가 그토록 어려워하는 바다와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다에 내가 정성껏 만든 물고기를 풀어놓으면 그것은 몇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어느 순간 깊은 바다 저편으로 둥실둥실 밀려나곤 했다. 어느 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또 하릴없이 바다 지평선 끝으로 밀려나는 물고기를 보며 다짐했다. '어쩌면 내 물고기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 바다가 아닐지도 몰라. 호수로 가자.'


당시 이미 나는 브런치라는 호수에서 반려동물 작가로 오랜 기간 글을 써오고 있던 차였고, 브런치에는 이미지를 올릴 수 있었기에 충분히 웹툰을 연재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엔 웹툰을 브런치에 올리는 작가들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엉뚱한 발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망망대해로 떠밀려 가는 대신 내가 풀어준 자리를 잘 배회하며 독자들을 찾아갔던 나의 물고기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한 출판사의 팀장님에게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출판사로부터 나와 나의 반려견 포레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을 책으로 출간해 볼 생각이 있냐는 제안이 왔다. 그렇게 나는 20대 초반부터 꿈꿔왔던 출간작가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대형작가도 아닌 내가, 유명웹툰도 아닌 나의 작품이 어떻게 출간제안을 받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나의 뇌리를 스쳐간 건 출간을 하고서도 한참이 지난 이후였다. 돌이켜보면, 그건 내가 브런치에서 오랜 기간 반려동물 크리에이터로 활동해 왔던 기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고, 내가 모르는 망망대해가 아닌 내가 익히 잘 알고 좋아하는 호수에 나의 물고기를 풀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요즘도 나는 호수를 돌며 조깅을 한다. 매일 나가야지 하는 다짐이 그저 다짐으로만 끝나는 날도 많고, 새로 만든 물고기들이 독자들을 잘 찾아가지 못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내가 계속 달리는 한 호수에 존재하는 나의 물고기들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기회들이 찾아오겠지.


달리는 사람들도, 물고기들도, 모두 이들을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호수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멋진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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