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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라쏭짱 Oct 19. 2019

1편 사랑하는 법, 기억하는 법

길 고양이 애꾸눈 짹을 사랑하고 기억하는 이야기

짹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몰라. 우리 가족과 이모네가 금남면 도남리 산기슭에 집 두 채를 나란히 짓고 이사 들어간 날, 짹은 집 앞 현무암 데크에서 온 몸을 쫙 뻗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어. 아니 오히려 짹이 ‘저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 얘기할지도 모르지. 집 지을 때에, 인부아저씨들이 한쪽 눈이 없는 흰 고양이 한 마리가 여기에 산다고 했으니까. 아저씨들이 시켜 먹고 남은 짜장면이나 볶음밥을 먹기도 하고, 쌓아 놓은 나무자재위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그러면서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구경하고 있었으니까.     


서로 알아가는 첫 번째 순서는 이름을 부르는 거야. "짹, 짹~” 이라고 부를 때마다 저금통에 동전을 채워 넣듯 정이 쌓여갔어. 짹의 ‘야옹’소리는 매번 다르고 오묘해서 어떤 글자로도 표현할 수가 없어. 아주 가늘면서 상쾌한 ‘솔’의 음계쯤 될까? 가벼운 떨림과 부드러움까지 묻어났어. 잘 익혀진 삼겹살의 지글지글한 냄새가 언덕을 타고 넘어가면 영역순찰 중이다가도 어느새 다가와 "짹, 냄새 맡고 왔구나! "하면 "야옹", 나무 밑동에 발톱을 열심히 갈다가도 “바쁘네! 짹, 어디 사냥가려고 그리 준비를 하시나”하면 “야옹”, 잘 훈련된 요가 코치 같은 자세로 둥글게 몸을 말고 핥다가도 “짹, 어쩜 이리도 유연성이 좋으셔”하면 “야옹”하고 대답을 잊지 않았지.    


궁금한 것이 많이 생기는 것이 그 다음 순서일 거야. 암컷인지, 수컷인지. 어쩌다가 길고양이가 되었는지. 몇 살쯤 되었을지. 몸에는 왜 저렇게 상처가 많은지. 짹이 대답해 주지는 않았지만 우리가족은 모이기만 하면 짹에 대해 추리해 보았어.


관계는 상호작용이야. 나만 일방적이었다면 사료만 챙겨주는 사이가 되었겠지만 짹은 열심히 자기를 알려주었어. 꼬리로 어떻게 기분을 표현하는지, 먹잇감을 노릴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어디서 자는 것을 좋아하는지. 무엇보다 슬쩍 옆으로 다가와 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스치면 아무리 지저분해도 등짝이며 목덜미며 도저히 긁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지. 스킨십은 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인 순서잖아. 새애기(짹의 이성 친구)와의 로맨스도 생겼어. 길건너 폐가가 된 방앗간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어. 짹은 이제 나의 일상이 되었어.        


사이가 깊어지면 걱정거리도 느는 거야. 어쩌다 집으로 오가는 운전 중에 논두렁에 앉아 있는 짹을 발견하면 “짹! 빨리 집으로 돌아가. 도대체 어젯밤에는 어디서 잔거야?”하며 놀러 다니는 아들 야단치듯 말을 건넸지. 짹은 한쪽 눈이 없으니까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했거든. 그럼에도 절대로 물러나는 법이 없었어. 목 부분에 흰털이 죄다 뽑혀서 오기도 하고, 꼬리 끝에 피를 묻혀오기도 하고, 잘 걷지도 못할 정도로 다리가 부어서 들어오기도 했지만 항상 얼굴은 의기양양했어. 나는 항생제도 먹이고 연고도 발라주면서 걱정을 했어. “싸움 좀 그만하고 다녀! 무슨 일 생기면 새애기 혼자 1,2,3번을 책임지라고 할 거야?”


무슨 일은 거짓말처럼 일어났어. 짹이 세상을 떠난 건 영역관할의 싸움도, 새애기를 지키려는 순정도 아닌,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인 거였어. 식구들은 많이 울었어. ‘엉엉’ 가슴에서 울리는 소리를 내면서 짹을 묻어주었어. 복받쳐 올라오는 슬픔은 이제 어디에도 짹이 없다는 거야. 진작 집 안으로 들일걸 하는 아무 소용없는 후회도 가슴을 후벼 팠지. 고작 했던 것은 카카오톡의 프로필을 짹의 사진으로 바꾸고 추모 글을 상태메시지에 올리는 거였어.    


''짹! 언제나 기억할게. 이 지역에서 가장 용맹하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야옹소리를 내던 길고양이.     

나에게 와줘서 고마웠어!''


슬픔은 하루에 1밀리미터씩 줄어들어. ‘짹’이라고 불러보면 가슴이 아리고 시큰거렸는데 이제는 찬바람이 ‘훅’하고 불었다가 지나갈 정도로 옅어졌어. 한 번도 짹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날도 생겼어.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 어디엔가는 짹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되는 거잖아!          

    

’‘짹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몰라. 첫 줄을 쓰기 시작하자 납덩이처럼 무겁고 산란했던 마음이 잠잠해지기 시작했어. “야옹”그 예쁜 짹의 소리가 다시 들렸어.         

    

    

(벌써 3년이 지나가네요. 이 글은 짹을 만난후부터 짹의 아이들과 옆동네 길고양이들의 매일의 삶에 대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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