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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라쏭짱 Aug 31. 2021

14편 엄마 없는하늘 아래

세상으로 나온 번자, 만자, 애자

   

아기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온 것은 그리로부터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이 지나서였어. 아깽이들을 기다리면서 쥐포를 먹고 있다가 구멍 앞에 던져 보았는데 뜻밖에 한 애가 고개를 삐죽 내밀었어. 쥐포 냄새를 맡아보더니 먹지는 않았어. 그 대신 옆에 놓여 있던 사료와 참치 캔을 조금씩 먹더니 내가 지켜보는 걸 눈치채자마자 다시 구멍 속으로 쑥 돌아갔어. 그래도 그게 어디야! ‘이제 애도기간이 끝났나 봐!’하고 우수개소리가 나올 만큼 안심이 되었어.


생전 나오지 않고 저대로 죽어버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정말 한숨 놓았지 뭐야!. 내일은 천막에 방수포를 전부 걷어내고 파렛트 사이를 샅샅이 뒤져서 얘들을 구조하기로 했었거든. 사실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을까봐 걱정이었어. 쏟살 같이 어디론가 도망쳐 버리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하면서 이런저런 궁리들만 하고 있던 참이었거든. 한 마리가 나와 봤으니 분명히 동기들을 데리고 나올 거야. 아직은 경계심이 너무 심해서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분명히 엄마 없는 세상 밖으로 용감하게 발을 내디딘 거야.   

  

정말 다행인 것은 새애기가 이번에는 일찍 새끼들을 집으로 데려온 거야. 첫 번째 짹만이, 짹꼬리, 짹목이 때도 그렇고 두 번째 짹투, 번개투 때도 그렇고 세 번째 짹짹이, 번번이 때도 그렇고 전부 2개월 이상 크고 젖을 거의 뗄 때쯤이야 우리 집으로 건너와 사료를 먹였어. 그때는 간혹 길 건너 방앗간 지붕 위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깽이들을 볼 때마다 가보지도 못하고 ‘새끼들이다!’하며 망원경까지 동원해서 보곤 했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어. 네 번째 아깽이들은 아기일 때부터 우리 집에 데려와 아예 팔레트 밑에 머물렀어. “새애기가 육아에 지쳤어!, 겨우 눈 뜨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아깽이들을 여기로 데리고 온 것을 보면. 우리 보고 같이 키우자 이런 뜻이지”하며 웃으며 좋아했는데 어쩌면 새애기는 자기 죽음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폐가 방앗간에 아깽이들을 놓고 새애기가 죽었다면 우리 식구들은 절대 아깽이들을 찾을 수 없었을 거야. 한 여름 방앗간은 넝쿨 잡풀이 지붕까지 올라가 덮어 버리고 나무 기둥이 전부 썩어서 거의 무너져 내리기 일보직전의 위태로운 모습이거든.간혹 아깽이들이 지붕 위에서 보이던 안채는 들어가는 곳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반 무너져 있었고 그나마도 넝쿨이 첩첩이 둘러싸고 있어서 입구도 전혀 알 수 없는 구조였어. 그 미로 같은 잡풀과 넝쿨과 반 무너져 내린 목재들 사이에서 어떻게 아깽이들을 찾을 수 있겠어? 더군다나 거기서 어디 구멍에라도 들어가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면 말이야.   

  

한여름 폐가 방앗간 상태

아깽이들의 이름은 새애기를 닮은 ‘애자’, 번번이처럼 등 쪽에 갈색무늬가 있는 ‘번자’ 그리고 떠나가버린 짹만이를 닮은 ‘만자’이렇게 정했어. 나는 애자, 번자, 만자를 잘 키우기로 결심했어. 먼저 고양이 배변용 모래를 천막 안에 놓아주었어. 아깽이들은 어미가 배변을 먹고 항문을 핣아 준다고 하는데 그걸 해줄 수 없으니 배변용 모래가 꼭 있어야 할 것 같았어. ‘세상에’ 세 마리가 거기에 똥을 싸고 묻기 시작하니 가서 볼 때마다 똥 산을 이루고 있었어. 번번이나 짹짹이는 구경만 할 뿐 절대로 모래에 배변하지 않았어. 이미 여기저기 맨 땅에 배변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랬겠지. 하긴 큰 녀석들까지 여기에 싼다면 감당할 수가 없으니 다행한 일이야.      


새애기에게는 양육 규칙이 있었어. 사람을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거야. 짹이나 째리 말고 새애기 새끼들은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어. 이제 새애기 엄마가 떠나고 그 규칙은 깨졌어.   

먼저 경계심이 풀어진 건 ‘번자’였어.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활발한 녀석이라 밥 먹는 동안 슬쩍 등도 만지고 쓰다듬어 줘도 아는지 모르는지 도망가지 않았어. 나중에 생쥐 놀잇감을 가지고 낚시놀이를 시작했는데 정말 좋아했어. 펄쩍펄쩍 뛰어놀면서 손으로 치고 이빨로 물면서 한참을 놀다가 너무 피곤해지면 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어. ‘만자’도 가끔 합류하기도 했지만 먹는 것을 더 좋아했고 ‘애자’는 멀리서 보다가 아무도 없을 때 와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놀잇감을 손으로 툭툭 쳐보는 정도였어. 이 정도면 아주 성공적이지. 드디어 짹과 째리 이후에 만질 수 있는 고양이가 생긴 거야. 조금 더 크고 친해지면 짹이나 째리처럼 먼저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았어.  

  

다행히 번번이가 아깽이 세 마리와 늘 함께 해주었어. 새애기 엄마 대신 형님이 보모 역할을 나선 거지. 번번이는 옆에서 같이 잠들기도 하고, 아깽이들이 낚시놀이를 할 땐 수줍게 ‘저도요’하면서 경계심을 풀지는 못한 채 한 두 번 툭툭 쳐보기도 했어.   

번번이와 아기 번자
번번이와 아기 만자, 애자

번자, 만자, 애자는 새애기 엄마를 잊어버렸어. 어쩌면 생존 프로그램 상에 당연한 과정일 거야.  세마리가 미친듯이  달리고 구르고 쫒아 다니고  주구장창 먹어대고 놀다 지쳐 나가 떨어져 잠들고 이 세상은  신나는 놀이동산이 되었어. 젖을 떼는 딱 그 시기까지만 엄마가 필요한 거야. 그 이후는 세상 속에서 내가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거지. 하지만 내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냥 놀면 되. 우리도 아기 고양이들 처럼 단순하게 살수는 없을까? 먹을 것과 잠들 곳만 있다면 그냥 노는거지. 세마리 아깽이들은 완전 스트레스 제로 상태였어. 독립의 기쁨을 만끽했지. 아마도 인간이 가장 늦게까지 엄마에게 의지하는 종족이 아닐까?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번·만·애자와 터고 지낼 수 있게 되었어. 짹과 새애기의 마지막 아깽이들이라 귀하고 예뻤어. 잘 키워서 하늘나라에서 지켜볼 짹과 새애기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었어. 이대로만 이대로만 쑥쑥 크거라 했는데 야생의 약육강식 법칙은 매정하게도 이 세 꼬마들을 그대로 놔두질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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