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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라쏭짱 Apr 19. 2022

8편 누구나 한가지쯤은 잘하는 것이 있다.

길고양이 '페인트'이야기


     우리 집 마당냥이들 말고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들은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기가 힘들어. 자주 보이지도 않고. 하지만 ‘페인트’는 달랐어. 처음에 왔을 때 우리 집 막내 ‘째리’가 달려 나가 맞이하고, 뽀뽀를 하고, 비벼 대서 째리 엄마가 찾아왔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수컷이었어. 꼭 흰색 페인트 통에 빠트린 것처럼 흰털이 목 아래부터 다리까지 몸통 앞부분을 덮고 있어서 '페인트'라고 부르기 시작했지.    

 

      페인트는 그야말로 순둥이였어. 눈빛과 표정이 선해서 하악질 한번 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다른 고양이들에게 밀쳐지면 밀쳐지는 대로 숨어서 기다리는 모습이 ‘나 착해요!’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꾀쟁이 째리가 ‘요 녀석! 내 부하 삼아야겠다!’하고 접수를 해주었던 것 같아. 째리가 반갑게 맞아주니까 우리 집에 드나들기가 쉬었을 거야. 왜 그런 거 있잖아. 어디 낯선데 갔을 때 그 마을 유지랑 안면 터면 그 다음부터는 작업이 술술 풀리고 잔치 집 높은 자리에 딱 자리 잡고 앉는 것 말이야. 어차피 남아도는 밥자리에 여기저기 쉴 곳 천지인 마당이니 페인트는 째리랑 뒤섞여 놀면서 베프가 되었어.     


     페인트의 가장 큰 특징은 울음소리가 크다는 거였어. 주로 우리 집 옆 산에서 내려오고 그 산으로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다들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야옹, 야옹”거리며 내려왔어. 마치 ‘나 왔어요. 맛있는 것 주세요!’ 하는 듯이 등장했지. “야옹야옹” 줄기차게 울어대는 소리는 이른 아침, 선잠에 빠져, 끄지 못해 울려대는 알람 소리처럼 누군가 나가서 “페인트, 왔어요? 밥 먹을까?”라고 응대할 때까지 끊이질 않았어. 고양이들끼리는 야옹야옹 할 필요가 없대. 야옹소리는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내는 소리라고 하더니 딱 페인트 두고 하는 말이야.     


       페인트는 지극히 단순한 아이였어. 밥집에 찾아와서 밥 내놔라 하는 야옹소리 하나만 확실하면 다 되었으니까. 그래서 페인트가 맘에 들었어. 우리는 다 하나정도는 잘하는 것이 있잖아. (물론 최고로 잘하면 뭔가 되었겠지만 그렇게 특출한 것은 아니더라도 그냥 잘하는 것 하나 정도는 있잖아!) 그게 뭐가 되었던. 별거 아니라고 하지는 말아야 돼. 밥을 잘 먹던. 노는 것을 잘 하던, 잠을 잘 자던, 뭐든지 잘하는 게 있다면 그게 세상살이를 살 만하게 해주는 거야.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잘하는 게 있다면 자꾸 끄집어내어서 ‘잘한다! 잘한다!’해줘야 된다고. 남들이 해주면 좋지만 안 해준다면 나라도 해주지 뭐. ‘잘한다! 예쁘다!’라고 가슴에 손을 얹어 토닥토닥 해주라고! 뭘 그렇게 다 못한다. 안 된다. 하면서 쥐어박지 말고 말이야.     


    페인트는 자주 왔어. 마당에 째리가 있으면 얼른 달려가 맞이하고 한바탕 같이 놀고 낮잠도 늘어지게 자고 절친한 친구 집에 놀러온 한량이 그 집 안방까지 들어와 휘젓듯 했어. 하지만 다른 마당냥이들은 페인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 ‘새애기’는 자기 새끼들 때문에 거슬려 했고, 애꾸눈 ‘짹’은 영역을 지키기 위해 페인트만 보면 낮은 포복으로 대기하다가 단숨에 달려 나가서 쫓아냈어. 그래서 늘 손님만 하고 마당냥이로 정착하기는 힘들었나 봐.

   어쩌다 오고 가는 길에 급식소를 찾아주던 많은 길고양이들은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드문드문 나타나다가 어느 날부터 전혀 오지 않았는데 페인트도 결국은 그렇게 되었으니까.      

사료봉지를 뜯는 째리를 지켜보는 페인트

   페인트의 그 야옹소리는 한여름 밤의 매미소리처럼 끊임없이 온 산에 울려댔는데 그 울음소리를 또 듣고 싶어. 혹시 누군가 앞발이 흰색 페인트 통에 빠진 것처럼 하얀 고양이가 줄기차게 울어대는 소리를 듣는다면 페인트인줄 알아보길 바래. 그 아이는 그것 하나는 정말 잘하는 순동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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