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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라쏭짱 Apr 19. 2022

15편. 사라진 아깽이들

번자, 만자, 애자는 어디로 갔을까?

어느 날 아침에 나와 보니  번·만·애자가 보이지 않았어. 이름을 부르며 집 앞뒤를 돌아다녔는데 다행히 이모네 뒤쪽 부엌문 앞에서 놀고 있었어. 이제 행동반경을 넓혀서 거기까지 갔나 싶었는데 아니었어. 그 아이들은 은신처로, 잠자리로 삼던 파레트 구멍에서 쫓겨난 거였어. 그 자리의 새 주인은  짹투였어. 기억할꺼야. 새애기의 두번째 아기들. 짹투와 번개투. 번개투는 수컷이었는데 TNR후에 집을 나가버렸고, 짹투는 새애기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해서 TNR도 못했었잖아. 그 짹투가 어디선가 새끼를 낳고 키우다가 새애기가 죽은 다음에 그 구멍을 차지하고 자기 새끼들을 데리고 들어앉은 거야. 그리고 동생인 번·만·애자를 쫓아낸 거야.  

    

이제 웬만큼 컸으니 그 작은 구멍에 들어앉아 있을 필요도 없고 거기서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어. 부엌문 앞의 나무 데크에서 베이비시터였던 번번이까지 바쁘게 놀고 있더라고. 밥그릇도 물그릇도 자리를 옮겨주고 여기서 잘 지내라 했는데 그 다음 날에는 바깥쪽 창고 나무자재들 쌓아놓은 쪽으로 또 옮겨갔더라고. 번번이도 함께. 물론 여기도 나쁘지 않았어. 도로에서는 가장 먼 산 아래쪽이니까 안전하기도 하고 나무자재들이 쌓여져 있어서 놀이터로도 은신처로도 아늑했거든.     

짹짹이, 번번이와 새애기엄마와 즐거웠던 나무타기놀이중인 번,만,애자


짹투의 새끼들은 모두 세 마리였어. 아마도 번·만·애자 보다는 한 달 정도는 더 어린 것 같았어. 짹투는 욕심이 많은 암컷이었어. 처음으로 낳아 키우는 자기 새끼들에 대한 애착이 무척 컸고. 어디에서 어떻게 키워야 될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안전한 곳을 찾았고 해가 될 만한 것들은 치워버려야 된다고 결정 했을거야.     

그래서 엄마 잃은 동생들을 파레트 구멍에서 쫓아내고 그다음에 30미터 떨어진 부엌 문쪽 데크에서도 못 미더워서 더 나가라 했고 결국은 60미터 떨어진 창고 나무자재에서 사는 것도 끝내 못마땅했나봐.      


번·만·애자가 없어진 것은 마지막 은신처에서 산지 며칠도 되지 않아서야. 번번이까지 없어졌더라고. 짹투의 얌체같은 처사가 밉기도 했어.  그냥 좀 놔두지 이 넓은 마당에 그걸 가만히 둘 수가 없었던 거야? 아니면 짹투하고는 상관없이 말리는 누구도 없으니까 천방지축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없어진 걸까?     

 

다행이 이틀 만에 돌아왔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창고 나무자재에서 놀고 있더라구. CCTV를 찾아보니까 째리가 집 떠났던 그 밭두렁으로 세 마리가 신나게 올라오고 있더라고. 천둥벌거숭이들 같은 세 아깽이들. 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야. 조심성 많던 새애기 엄마가 이 사실을 안다면 너희들은 아마 꾸지람에 얼차례를 각오해야 했을 거야. 그래도  다행이다. 돌아왔으니 됐다. 다시는 어디 갈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잘 지내는 거야. 

지금 생각해봐도 그건 참 나만의 생각이었어. 가지 말라면 가지 말고, 여기서 살라면 여기서 사는 게 아니잖아.      

 번·만·애자는 하루만에 다시 사라졌어. 갑자기 그렇게 행동반경을 넓히는 걸까? 아직도 아깽이인 세 마리가 어쩌려고 그리 멀리 나들이를 다니는 건지. 단지 나들이만 좋은데, 아주 먼 길을 떠난 건지 알 수가 없었지. 우리집을 떠난 길냥이들 중 가장 어렸고 또 무리지어 집단 가출을 한 것도 처음이었어.

어떡하지, 어떡하지, 짹투를 볼 때마다 너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책임추궁을 했지만 저간의 사정을 어찌 알겠어. 번번이는 돌아왔어. 뭔 베이비시터가 이리 무책임한지.      


모험의 길을 떠날 때  번·만·애자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그 아이들이 원했던 건 그저 자유였을까? 사료 한 톨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은 생각이나 했을까? 신선한 물 한 방울도 당연히 사발에 담겨져 그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너무 빠르잖아! 아직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잖아!   

   

불안은 인간만이 가지는 정서라고 하잖아. 다가올 앞날에 대한 염려가 불안이라고 하잖아. 그래서 동물에게는 불안이 없다고. 번·만·애자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 앞날을 미리 생각할 이유는 없었겠지. 하지만 날이 저물고 어디에도 몸 누일 편안한 곳은 없고 다시 돌아올 길은 찾을 수 없고 그때는 어땠을까? 한치 앞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당장 지금 생존의 문제가 닥쳤을 때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디고 있을까? 그 아이들이 떠난 밭고랑사이를 시야가 흐려질 만큼 뚫어지게 쳐다보면 안타까움이 희미한 안개처럼 번져나갔어  제발 돌아오렴! 우연히 걷다보니 집 앞이면 얼마나 좋을까?     


일주일이 그냥 지나갔어. 아침마다 혹시 들어왔을까 싶었는데 여전히 빈 자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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