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라라쏭짱 Apr 19. 2022

연단에 섰을 때

강연 잘하는 법(믿거나 말거나)

이곳저곳 강의를 하고 다니다가 은퇴를 하고 난 이후에 지난 시간들을 불현 듯 떠올릴 때가 있다. 만약 당신이 앞에 나가서 여러 사람 앞에서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 다음의 공식을 염두에 두고 얼개를 짜서 넣는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루한 강연과 그 강연을 들어야만 하는 불쌍한 수강자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첫째, 이야기의 서두는 항상 예시로 시작을 해야 한다. 나에게 일어났던 어떤 일화들, 물론 주제와 관련되거나 관련이 없다면 최소한 웃기거나 슬퍼서 사람들의 관심을 초반에 확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절대 자기 자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에 서서 강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뭐든 잘하니까 나온 것일 것이다. 그건 앞에 앉은 사람들은 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굳이 잘난 척 하지 않아도 잘 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못난, 부끄러운 솔직한 얘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연민까지 가면 더 좋겠지만 주의만 끌어도 충분하다.  정 일화가 없다면 주위 사람들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도 괜찮고 짜집기나 창작도 좋다. 다만 출처를 꼭 밝혀야 나중에 고소를 당하거나 욕을 먹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캐고 또 캐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뒤를 조심해야 한다.     


둘째, 본론으로 들어가자. 여기서부터 자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딴 세상을 기웃거리기는 청중들이 생겨나게 된다. 첫째 부분에서 강한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면 이미 여러 분들이 딴 세상을 들락거리고 있고 심지어 나가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스스로에게 강한 멘탈이 필요한 시점이다. 딴 짓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쳐다보면서 그들을 탓하기 보다는 나에게 눈을 맞춰주는 단 한사람을 위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생각하자. 아무리 무심한 중이라도 착한 사람 한 둘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선한 눈빛에 호소하며 이야기를 끌어가자. 여기에 알맹이를 담아야 한다. 서두에 언급된 예시가 본론을 끌어내고 그 정당성과 구조에 단단한 기둥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여기서는 대놓고 주장을 하는 시간이다. 본론은 일반적인 논조이겠지만 중은 개별적인 암시를 받고 싶어 한다. 따라서 너에게 이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에서 시작된 예시라면 여기서는 나뿐만이 아니라 너도 사랑하신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목소리가 크다고 먹히는 게 아니다. 콘텐츠가 제대로 들어 있어야 먹음직하다. 고기 건더기 없는 곰국이 되어서는 안된다.  

   

셋째, 결론은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드라마라면 새드엔딩이나 열린 결말로 끝나도 되지만 강연은 그렇지 않다. 화장실가서 뒤처리 제대로 하지 않고 나온 것처럼 엉덩이가 뭐 묻은 느낌이라면 완전히 잘못된 강연이 될 것이다. 시원하고 통쾌하게 속을 비어줘야 한다. 그래서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밝은 세상으로 희망을 갖고 시작할 거리를 안겨주어야 한다. 한바탕 웃었거나 울컥 했다면 형식에 있어서 거의 성공이다. 울다 웃으면 더 좋다. *구멍에 뿔이 나도 상관없다.  웃음과 눈물은 마음을 찡하게 하는 오늘도 살아봄직하게 만드는 인간사의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수미상관법이 여기서 동원된다. 서두의 예시가 본론을 거치면서 어떻게 행복하게 되었는지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너도 나처럼 해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반전도 괜찮다.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역시 잘난 척은 안 된다. 처음에 관중들이 보냈던 동정이 괜한 짓이었다는 후회를 줘서는 안된다. 고난을 뚫고 이겨낸 스토리라고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겸손해야 한다. 내 덕분이 아니고 모두의 덕분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걸 꼭 밝혀야 한다.      


마지막, 제일 중요한 이것- 다 관두고 짧아야 한다. 아니 적어도 시간 내에는 꼭 맞춰야 한다.

강연할 때 중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고 물어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빨리 끝내 달라고. 물론 재미있게, 유익하게 등등의 소수의 대답도 있었지만 모두가 원하는 것은 빨리 끝내달라는 것이었다. 줄 게 없다면 온 사람들이 적어도 시간만큼이라도 남겨서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구나 그 덥거나 추운 운동장에서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을 듣던 기억을 갖고 있다. 끔찍하고 지루한 그 기억은 이런 장면에서 어김없이 되살아나서 사람들의 표정을 점령한다. 길었다는 말은 지루했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마치 내가 명사였던 것 같고 누군가는 코웃음을 칠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연단에 서서 나는 인정의 욕구를 충족시키곤 했다. 은퇴한 지금 스스로 채우지 못하는 인정의 욕구가 나이 들어가는 서글픔을 더 깊게 만든다. 눈 맞춰주던, 웃어주던, 글썽거려주던 소수였어도 그분들의 옅은 미소를 참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쓰고 나서 보니 이 글은 나를 위한 글이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어주는 당신도 참 고마운 사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용실 이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