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또 하나가 늘었다

글 하나가

by 항해사 어름


엄청난 글감이 솟아오른다. 영감의 마그마. 분출구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래 이거다! 허겁지겁 최신 장난감으로 달려가는 아이처럼, 쏜살같이 태블릿을 쥐고는 글을 써 내려간다. 그래, 그래, 이거라고! 흐흐, 난 천잰가 봐. 화려한 예시. 유려한 표현. 기가 막힌 응집성! 프로 작가나 다름이 없다. 이러다 나, 등단하는 거 아니야?


오케이, 다 썼다!
한 번 다시 읽어볼까?
나의 이 걸작을.


응? 이걸 내가 썼다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랬다 저랬다, 벽돌깨기 구슬처럼 핑핑퐁퐁 이리저리 튀어 오른다. 글이란 게 언제부터 이렇게도 덕지덕지 엉킨 실뭉치가 되었는가. 화려한 예시? 유려한 표현? 기가 막힌 응집성? 다 어디 간 거야. 프로 작가라고? 아마추어의 반은 되려나. 추어. 그래 난 추어다.


아냐, 고치면 돼.
조금씩 수정하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음.. 이 부분부터 수정해 볼까? 아니야, 여긴 괜찮은 거 같은데. 오히려 저기가 문제야. 아아, 아니야 여기도 막상 보니 괜찮은데? 띵. 머리가 하얘진다. 어디부터 고쳐야 할지를 모르겠네. 이 실뭉치는 더 이상 구제불능인가? 조금 고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거 같다. 아니야! 좌절하지 마. 이건 오늘 내가 잠을 적게 자서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거야. 일단 놔뒀다가 정신이 말짱해지면 그때 다시 손봐야겠다. 일단 세이브.


그렇게, 저장 글 또 하나가 늘었다.



이미 가득 찬 저장 글 보따리. 꾸역꾸역 하나 더 집어넣었다.


모차르트는 전체 곡의 1/4이 미완성인 작품이라던데. 난 반대로 3/4은 미완성이다. 내가 모차르트의 세 배니까 내가 이긴 거다. 잠재력이 더 많은 거니까.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이긴 거랬다. 무슨 개소리냐고? 아무튼 내가 이긴 거다. 그냥 그런 거다.


<사진출처 : MBC 예능 무한도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