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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어름 Oct 29. 2023

억대 연봉을 주며 해외여행을 시켜주는 직업

프롤로그

5개월 간의 유럽 해외여행. 억대 연봉. 2개월 간의 유급휴가. 휴가동안은 그 어떤 업무도 하지 않고 어떤 연락도 받지 않으며 오로지 나만의 프리타임을 가질 수 있는 직업. 세상에 그런 직업이 있다고? 나의 이런 배경을 말하면 무릇 '부럽다'는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면 '힘들겠다'나 '나는 못할 것 같다'라는 반응도 심심찮게 돌아온다.


 나는 5개월 간의 일을 마치고 휴가기간을 지내며 평소에 살아본 적 없던 곳에 거처를 잡았다. 그리고 느지막이 일어나 천천히 준비를 마친 뒤 주변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 나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보통 의아해한다. 월급쟁이면서 대체 어떻게 2개월이나 휴가를 받을 수 있단 말인지. 그리고 그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그 많은 나라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인지.


 그러니 일반적으로는 궁금해하며 어떤 직종인지 물어보고는 하는데, 그럴 때면 내 반응은 두 가지다. 우선 솔직하게 반응하는 것이 보통이다. 보통은 내 직업을 밝히고 나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대화의 뜨거운 주제가 된다. 세상에 흔치 않은 직업이므로 궁금한 것이 많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복잡한 절차(?)를 몇 번 거치고 나면 같은 설명을 매번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러니 가끔은 그저 '영업직'이라거나 '물류 계통'에 종사한다는 말로 소위 퉁을 치고는 한다. 그러면 '이 사람이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구나' 하며 질문을 멈추니 귀찮은 설명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항해사


 나는 20,000 개 정도의 컨테이너를 싣고 약 5개월 간 부산과 유럽 등지를 넘나들며 항해를 하는 항해사다.


 항해사라고요?


 그렇게 눈이 휘둥그레지며 건네오는 질문은 이렇다.

 " 어선을 타시는 건가요?"

 " 그럼 배를 타는 동안은 완전히 연락이 두절되는 건가요?"

 " 아무래도 해산물을 자주 드시겠네요!"

 " 배를 타면 고기가 제일 그리우시겠어요!"


타고 있는 것과 가장 비슷한 규모의 선박인 HMM NURI 호. 우리가 길에서 가끔 보는 저 트럭에 있는 컨테이너들이 모여 선박 위에 블럭처럼 실린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 글로써 차차 해 보이겠으나, 아무튼 그것이 맞는 말이든 오해든 간에 꽤나 긴 설명을 동반해야만 한다.


 그냥 애매한 대답으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인데, 특히 궁금증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반복적인 업무를 반복하거나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해외여행을 유독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는 듯하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5개월 간의 해외여행은 보통 회사가 어디에 계약되어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나 같은 경우 유럽 등지를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방문한 나라는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정도가 있는데 그렇게 방문하게 되면 하루쯤은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 밖에 나가 짤막한 여행을 즐기곤 한다. 일례로, 영국의 컨테이너 항만이 있는 사우스햄튼에 정박한다면 택시를 빌려 런던으로 이동해서 거기에 있는 유명 여행지를 둘러본다.


 그렇게 5개월 남짓의 운항을 마치고 나면 휴가가 주어지는데, 이 휴가기간 동안에는 월급은 나오되 어떤 다른 업무도 없이 오직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주변 동료들의 경우 길게 해외여행을 다녀온다거나, 살아 보지 않은 독특한 곳에 잠시 거처를 마련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에 시간을 쓰곤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후자에 속한다.



극단적 비관주의자


 이런 매력적인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직업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불만스럽기만 한 때가 있었다. 보람도 느끼지 못하고 불만만 가득한 채 일을 하니 업무 효율도 떨어질뿐더러 무엇보다 휴가기간도 딱히 행복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 짜증으로 일관하고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이 환경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비루한 삶과,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반복적인 업무에 매너리즘만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한 마디로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었다.


 혹자는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게 돈도 부러울 정도로 많이 벌고 정년도 보장되는데, 해외도 나가 여행지도 돌면서 두 달의 휴가기간 동안 돈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직업이 세상에 몇이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행복이었다면 나는 진작에 행복에 있어서는 나름 상위권에 들었을 것이다. 여행을 하는 것이 행복이었다면 나는 복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휴가기간 동안에도 장기 해외여행을 다니며 행복했어야 했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연봉이 더 높다든지 휴가가 더 길다든지 하는 자기 위로 또한 행복에 전혀 눈곱만큼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더 불행해진다.)


 나는 그런 좋은 조건을 갖췄음에도 행복하지 못했다. 조건이 좋은 것과 행복은 관련성이 없었다. 나는 성과급을 받고 돈을 쌓아 올려 '0'이 셀 수 없이 찍힌 통장을 보아도 행복하지 않았다. 휴가 동안 길게 해외로 여행을 가 있는 상태에서도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은 돈이 많아서 해결될 문제도, 여유 시간이 많아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행복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불행은 행복을 위한 준비


 내가 어떤 면에서 운이 좋았던 점은, 나는 그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강했다는 점이다. 그 열망을 바탕으로, 나는 나만의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세상에 검사란 검사는 다 해보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이메일로 연락해 찾아가 질문 폭탄을 던졌다. 3개월에 걸쳐 쉴 때, 운동할 때, 침대에 누웠을 때를 불문하고 100권가량의 책을 읽으며 꾸준히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고 그렇게 읽은 책들을 바탕으로 내 삶의 은인인 한 형님과 끊임없이 삶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했다. 목적을 위한 운동, 적절한 식이요법을 통해 30일 만에 10kg을 감량하고,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 철저하게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지금도 실천하는 과정에 있다.


 지금의 나는 예전과 환경에 있어서는 다른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에게 누군가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행복하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억지로 자기 최면을 걸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환경은 환경대로 적응하며 현실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긍정하되, 아쉬운 점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개선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발전하는 삶은 만족이나 체념 같은 정적인 것과는 결이 다르다. 애써 안 좋은 환경에서 자기 위로를 통해 '이만하면 됐지' 하며 삶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그저 현실을 도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될 수 있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와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노력만 한다면 행복이라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점이다. 대체 환경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비관의 끝에서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일까?


 만약 당신이 지금 미치도록 불행하다면, 주변이 캄캄하고 막막하기만 하다면 이 말만은 명심했으면 한다. 당신은 이미 그 비관주의를 통해 행복을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는 점이다. 나는 삶에서 단 한 번이라도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극단적인 비관주의에 빠진 사람은 그 누구보다 삶을 행복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긍정적인 삶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을 소상히 공유해보고자 한다.


 만약 당신이 한 번이라도 이런 극복의 경험을 거친다면, 혹여나 나중에 비슷한 늪에 빠지더라도 자신에 대한 신뢰와 발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언제든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행복을 향한 여정, 나와 함께 해 보지 않겠는가?


 만약 이 여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향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하나의 사실만 더 기억했으면 한다. 삶에서의 변화는 한편으론 매우 지루하고 느리게 보일지언정, 방향만 맞다면 그 변화에는 분명 희망찬 끝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신은 행복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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