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가 된 은퇴 CEO : 인생 에세이(5)
나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였다. 사물의 작동 원리와 반응 성질을 찾아내어 물건 생산의 기술로 연결 시키는 공부이다. 그런 내가 인간의 본성과 사유 방식에 관심을 가진 것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가에 오래전부터 꽂혀있는 책들을 가끔 뒤져보면 마지막 장에 그 책을 산 시기와 도장이 찍혀 있다. "초인의 철리" "세계 명곡 해설 전집 교향곡편" 등에 적혀 있는 년도가 내 나이 17살 때이다. 아마도 이 시기에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 같다.
그 뒤 오랜 세월 계속 되어온 인문학에 대한 공부가 나의 사회 생활에 사유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인문학은 분명 그런 역할을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 인문학 돌풍이 불어 극점에 달한 상황을 본다. 사마천 사기, 카잔차키스, 보티첼리, 구겐하임, 네숨 도르마, 앙리 브레송, 잭슨 폴락, 무똥 로췰드 등등 누가 더 많이 아는가 경쟁이 불 붙었다. 더 많이 듣고 읽고 알면 더 나은 사람이라는 평가의 분위기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 주제가 뭣이던 간에 금방 누가 더 잘 났나 경쟁으로 접어 든다.
그 통에 이런 수요가 좋은 사업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인문학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이 열풍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는데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가?
인문학 열풍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아는가가 핵심이 아니라 어떻게 사유하는 것이 인문학적 사유인가를 깨닫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이런 얘기를 하는 분이 있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정년을 한참 앞두고 퇴임하여 우리 사회의 사유의 수준을 높이고자 대중 교육 활동을 시작한 최진석 교수는 그의 첫 대중 철학서인 '인간이 그리는 무늬' 서문에서 "봄이 왔다고 말하는 대신에 새싹이 움을 틔우는 순간을 직접 경험하려고 문을 열자"라고 주창한다.
또 그는 외국에 철학 공부하러 유학 다녀온 학자들 중 많은 숫자가 자신이 연구한 철학가 한 사람에 매달려 그 철학가가 그 당시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철학 사상을 만들어 내었고 그 사상이 역사가 흘러 인류의 사회적 정치적 과학적 변화에 따라 어떻게 도전 받아 왔는지를 살펴 보지 못 한다고 비판한다.
자신이 어느 철학가를 연구하였고 그 철학가에 대해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가르치기에만 갇혀 있는 것이다. 이런 학자들에 의해 이끌려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 대중들도 누가누가 얼마나 더 아는지, 역사적 장소에 다녀 왔는지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는 자유인의 상징적 인물이 되어있다. 우리는 그가 대변하는 한 인간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깨달아 나는 어떤 자유를 찾아 나설 것인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조르바 얘기가 나오자 마자 그 책을 쓴 작가의 이름은 카잔차키스이고 그리스 여행에서 카잔차키스의 묘를 갔었고 그의 묘비에 뭐라고 쓰여 있더라는 자랑을 늘어 놓으면서 죄중을 압도하려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인문학 공부는 지식이 아니라 인문학적 사유를 체득하여 내 인생에서 만나는 숱한 문제들을 소화하는 지혜를 얻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문학 공부라 하면 쉽게 떠올리는 각종 예술에 대한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하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일반인들은 특정 철학자의 이해하기도 힘든 저서와 씨름할 필요도 없다. 역사적 철학자들은 대개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책을 쓰려고 평생 씨름하는 사람들이다.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철학 공부가 우리의 사유의 수준을 높이기 위함이라면 개개 철학자의 사상이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나왔는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철학자들의 사상이 어떻게 변해 왔는 지를 개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코칭을 해 오면서 더욱 절실히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이런 철학적 사유를 익히는 것이다.
물론 코칭에 대한 훈련으로 코칭 철학, 공감, 경청, 열린 질문 등을 갈고 닦아야 함은 필수적이다. 그 위에 코칭 대상자가 그의 소중한 인생을 진실된 마음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게 하는 데는 우선 코치가 자신의 사유 수준을 높이는 자기 수련이 필요하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사유의 수련에 관련된 책들과 그런 것에서 출발한 사색에 있다. 아마도 내가 니체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불교의 철학을 더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