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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스이즈아프리카 Aug 15. 2023

도대체 집이 왜 짓고 싶은 건데

머리로는 도저히 답이 없는 전원주택 신축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본)집짓기는 전문가님께 맡기기로 했다.


이 지극히 당연하고 시시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우리 둘의 지난 9개월은 울그락불그락 평온할 날 없었다. 모든 걸 할 줄 아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내게 스스로 집 짓기는 반드시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농막을 지어보는 건 좋은 선행학습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9개월 후 퀭해진 거죽과 삭은 뼈마디를 움켜 안고 외치게 된다.


'집은 전문가에게!'



도대체 왜 집이 짓고 싶은 건데

처음에는 물론 우리도 지역 건축사무소를 들락거렸다. 설계는 몇 백만 원에도 가능했다. 열다섯 평 창고도 무료로 그려준다는 인심 좋은 서비스까지 덧대어.

 그러나 내가 원하는 집의 모양은 명확했다.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나 볼 법한, 평지붕과 큰 처마가 있는 집. 냉난방 효율 따위 안드로메다로 보낸 큰 처마와 공간이 있는 집을 갖고 싶었다.


 - 사진 출처 : 우리의 핀터레스트. 집 레퍼런스로 건축사에 드린 사진.

 그리고 상담을 했었던 지역의 건축사들은 대부분 반대했다. 양양에서 이런 집 잘못 지으면 겨울에 지붕 무너져요~ 눈을 어떻게 치울라 그래? 추워 죽어~ 난방비 몇 백 나와~~ 등등의 이유로. 마음이 흔들렸다.

 심지어 옆집 아저씨 (옆집이라고 해봤자 400미터 이상 떨어진, 큰 개를 두 마리 키워 동네에서 개집아저씨라고 불리는)는 타운하우스형 하얀 스타코 마감의 목조주택으로 평당 500에 몇 개월 만에 뚝딱 집을 지었다 하셨다. 하지만 나는 수도권의 타운 하우스를 지날 때마다 그 천편일률적인 하얀 스타코 집들이 썩 내키지 않았기에 적극 추천하는 개집아저씨의 말을 귓등으로 흥흥하며 들었었다.

 그러나 어느 추운 겨울날의 이른 아침,  그날도 용접을 하기 위해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개집 아저씨네 앞을 지나가는데 거실 큰 창 앞 따스한 불빛 아래 두 분이 편안한 얼굴로 커피를 드시고 계셨다.

 "아! 나 지금 뭐 하고 있나. "

눈물이 날 만큼 부러웠다. 집은 집이다.


 이쯤에서 집을 왜 짓는지 한 번 돌아봐야 했다. 나는 집을 왜 짓고 싶은가. 그것도 이 시골 구석에. 짓고 나면 감가상각뿐일, 지가 상승이래 봤자 들어갈 건축비로 치면 몇 십 년을 꼬박 살아내야 겨우 건질까 말까 한 시골에 말이다. 이미 코로나로 인해, 원자재는 오르고 있었고 수급이 어려워진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의 집을 사서 좀 고쳐쓸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신축을 하고 싶은가. 그리고 왜 굳이 효율 나쁜 집을 짓고 싶은지. 머리로 생각하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것들 뿐이다.


우리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집에 나를 맞춰왔었다. 내가 원하는 집을 찾았어!라는 의미는 적당한 지하철, 역과의 거리, 안전하고 깨끗한 도로, 평수, 방향 정도를 겨우 고려해서 '선택'을 해왔었다. 마치 마트에서 쇼핑하듯이. 그마저도 시장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선택지도 없이 집도 안 보고 계약금부터 던져야 하는 일도 있었다. 몸테크,라는 기상천외한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에게 집은 자산 형성의 수단 또는 참아내야 하는 것.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 같은 의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집은 집으로 존재해야만 했다. 안온하고 따뜻하고 쉼을 줄 수 있는. '집'

밖에서의 자아와 달리, 집에서의 고요함을 극도로 추구하는 내게는 그 간극을 견디기 힘들 때가 많았다.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자유.' 내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었고, 2천만이 넘는 인구가 모여사는 서울에서는 내가 공간이 없어 보였기에 양양의 구석진 땅을 택했었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은, 내 몸에 꼭 맞는 집에 살아보고 싶다. 내 눈에 꼭 들어맞는 집에 살아보고 싶다. 이게 무어 그리 대단한 욕심이고 손실일까. 중학교 3학년이 되면 다 늙은 거 아니냐고 방방 거리던 중2 때의 내가 봤다면 어처구니없겠지만,  나는 젊다.

 이 정도 옆걸음은 괜찮다.  옆으로 가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나이다.

'이 돈이면 서울에 블라블라블라'는 수없이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솔직히 생각한다. 부동산 재테크의 달인인 내 친구는 지금이라도 당장 양양 땅을 팔고 서울에 뭘 하나라도 더 사는 게 노후를 위해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해주었다. 25년 동안 단 한 번도 틀린 말을 한 적이 없는 친구다. 그리고 남의 일에 절대 입을 안대는 친구인데 나에 대한 큰 애정에서 비롯한 염려를 하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옳은 길로 매 번 갈 수는 없다.

 조금 늦어도 된다. 내가 지금 원하는 하자. 이 집이 내게 어떠한 것을 가져다 줄지 아무도 모른다. 좋아. 각오가 섰다.


“한 사람에게, 또한 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가장 깊숙하고도 영구히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집이다. 집은 하루하루와 매시간 매 순간의 특질을 결정하고, 삶의 색채, 분위기, 속도를 결정한다. 나아가 한 사람이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인간관계의 틀이 된다.”

-레너드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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