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극히 당연하고 시시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우리 둘의 지난 9개월은 울그락불그락 평온할 날 없었다. 모든 걸 할 줄 아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내게 스스로 집 짓기는 반드시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농막을 지어보는 건 좋은 선행학습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9개월 후 퀭해진 거죽과 삭은 뼈마디를 움켜 안고 외치게 된다.
'집은 전문가에게!'
도대체 왜 집이 짓고 싶은 건데
처음에는 물론 우리도 지역 건축사무소를 들락거렸다. 설계는 몇 백만 원에도 가능했다. 열다섯 평 창고도 무료로 그려준다는 인심 좋은 서비스까지 덧대어.
그러나 내가 원하는 집의 모양은 명확했다.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나 볼 법한, 평지붕과 큰 처마가 있는 집. 냉난방 효율 따위 안드로메다로 보낸 큰 처마와 공간이 있는 집을 갖고 싶었다.
- 사진 출처 : 우리의 핀터레스트. 집 레퍼런스로 건축사에 드린 사진.
그리고 상담을 했었던 지역의 건축사들은 대부분 반대했다. 양양에서 이런 집 잘못 지으면 겨울에 지붕 무너져요~ 눈을 어떻게 치울라 그래? 추워 죽어~ 난방비 몇 백 나와~~ 등등의 이유로. 마음이 흔들렸다.
심지어 옆집 아저씨 (옆집이라고 해봤자 400미터 이상 떨어진, 큰 개를 두 마리 키워 동네에서 개집아저씨라고 불리는)는 타운하우스형 하얀 스타코 마감의 목조주택으로 평당 500에 몇 개월 만에 뚝딱 집을 지었다 하셨다. 하지만 나는 수도권의 타운 하우스를 지날 때마다 그 천편일률적인 하얀 스타코 집들이 썩 내키지 않았기에 적극 추천하는 개집아저씨의 말을 귓등으로 흥흥하며 들었었다.
그러나 어느 추운 겨울날의 이른 아침, 그날도 용접을 하기 위해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개집 아저씨네 앞을 지나가는데 거실 큰 창 앞 따스한 불빛 아래 두 분이 편안한 얼굴로 커피를 드시고 계셨다.
"아! 나 지금 뭐 하고 있나. "
눈물이 날 만큼 부러웠다. 집은 집이다.
이쯤에서 집을 왜 짓는지 한 번 돌아봐야 했다. 나는 집을 왜 짓고 싶은가. 그것도 이 시골 구석에. 짓고 나면 감가상각뿐일, 지가 상승이래 봤자 들어갈 건축비로 치면 몇 십 년을 꼬박 살아내야 겨우 건질까 말까 한 시골에 말이다. 이미 코로나로 인해, 원자재는 오르고 있었고 수급이 어려워진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의 집을 사서 좀 고쳐쓸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신축을 하고 싶은가. 그리고 왜 굳이 효율 나쁜 집을 짓고 싶은지. 머리로 생각하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것들 뿐이다.
우리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집에 늘 나를 맞춰왔었다. 내가 원하는 집을 찾았어!라는의미는 적당한 지하철, 역과의 거리, 안전하고 깨끗한 도로, 평수, 방향 정도를 겨우 고려해서 '선택'을 해왔었다. 마치 마트에서 쇼핑하듯이. 그마저도 시장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선택지도 없이 집도 안 보고 계약금부터 던져야 하는 일도 있었다. 몸테크,라는기상천외한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에게 집은 자산 형성의 수단 또는 참아내야 하는 것.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것. 같은 의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집은 집으로 존재해야만 했다. 안온하고 따뜻하고 쉼을 줄 수 있는. '집'
밖에서의 자아와 달리, 집에서의 고요함을 극도로 추구하는 내게는 그 간극을 견디기 힘들 때가 많았다.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자유.' 내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었고, 2천만이 넘는 인구가 모여사는 서울에서는 내가 쉴 공간이 없어 보였기에 양양의 구석진 땅을 택했었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은, 내 몸에 꼭 맞는 집에 살아보고 싶다. 내 눈에 꼭 들어맞는 집에 살아보고 싶다. 이게 무어 그리 대단한 욕심이고 손실일까. 중학교 3학년이 되면 다 늙은 거 아니냐고 방방 거리던 중2 때의 내가 봤다면 어처구니없겠지만, 나는 젊다.
이 정도 옆걸음은 괜찮다. 옆으로 가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나이다.
'이 돈이면 서울에 블라블라블라'는 수없이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솔직히 생각한다. 부동산 재테크의 달인인 내 친구는 지금이라도 당장 양양 땅을 팔고 서울에 뭘 하나라도 더 사는 게 노후를 위해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해주었다. 25년 동안 단 한 번도 틀린 말을 한 적이 없는 친구다. 그리고 남의 일에 절대 입을 안대는 친구인데 나에 대한 큰 애정에서 비롯한 염려를 하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옳은 길로 매 번 갈 수는 없다.
조금 늦어도 된다. 내가 지금 원하는 걸 하자. 이 집이 내게 어떠한 것을 가져다 줄지 아무도 모른다. 좋아. 각오가 섰다.
“한 사람에게, 또한 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가장 깊숙하고도 영구히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집이다. 집은 하루하루와 매시간 매 순간의 특질을 결정하고, 삶의 색채, 분위기, 속도를 결정한다. 나아가 한 사람이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인간관계의 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