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사를 운영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 "아프리카에서 어디가 가장 좋아요?"인데, 그럴 때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은 기린장원호텔(Giraffe Manor)이다
아프리카에는 수만 가지 멋진 곳이 있지만, 그곳의 풀내음과 나무 그림자와 끝없는 하늘이 만들어내는 바람, 아프리카의 빛이 주는 뭉클함, 숙소가 얼마나 포근하고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단 몇 장의 사진으로 설명해 내기엔 참 어렵다. 그런데 기린장원호텔은 사진을 보는 순간, "와! " 하는 감탄을 자아내므로, 많은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내 대외용 최애는 단연 "기린호텔"이다.
1932년 케냐 나이로비 근교의 사유지에 스코틀랜드 저택 콘셉트로 지어진 기린장원 호텔은 멸종 위기종인 로스차일드 Rothschild 고아 기린을 입양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사파리컬렉션(Safari collection)이라는 케냐의 하이엔드 롯지 그룹으로 편입되고 이완맥그리거 등의 할리우드스타는 물론 전 세계의 유명한 사람들이 기린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사진 등을 SNS에 올리면서, 이 놀라운 경험이 가능한 기린호텔은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호텔이 되었다. 23년 기준 2인 1실은 1박에 $2124이고 패밀리룸은 $5310이다. 현재 환율(1달러당 1300~1350원)로 계산해 보면 1박에 약 300만 원이라는 상당히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숙박할 수 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2년 뒤인 25년까지도 예약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년 6월부터 10월까지는 지금도 예약가능한 룸이 거의 없다.
기린호텔은 총 10개의 2인실과 2개의 패밀리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6개인 Historic Manor는 기린호텔만 단독으로 예약이 가능하고, 6개인 Garden Manor는 사파리 컬렉션 그룹이 기린호텔 이외에 운영하고 있는 다른 케냐의 하이엔드급 4개의 숙소 Sala's camp, Sasaab, solio Lodge, Siruai Exclusive Mobile Camp 중 하나와 연계해야만 예약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솔리오롯지 Solio Lodge 2박에 더해서 기린호텔 1박을 예약할 수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사파리컬렉션의 숙소들 중 기린호텔이 가장 소박하고 저렴하다. 그리고 다른 숙소들은 성수기와 비수기 요금이 따로 있어 성수기 시즌의 Sasaab는 1박당 최소 비용이 $4176까지 치솟는다.
나는 아프리카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기린호텔이 1박에 120만 원이던 시절부터 기린호텔을 허니문 주력 상품으로 판매해 왔다. 직접 가보고 자신 있는 곳만 추천하는 것이 경영의 신조(?)인데, 직접 숙박을 해보니 여행자와 경영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놀라운 콘텐츠였다. 2017년에 진재영 님이 기린호텔에 다녀오시고 나선 너무나 감사하게도 SNS에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주셔서 기린호텔이 국내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여러 인플루언서분들께서 알리고 도와주시면서 우리 여행사도 날개를 달았다. 그렇게 기린호텔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예약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기린과의 눈 맞춤, 입맞춤 그리고 머리맞춤
기린호텔은 140 에이커의 땅에 하루에 최대 29명의 투숙객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숙소에 도착하여 자동차 시동음이 꺼지면, 가벼운 새소리와 품바(아프리카 멧돼지, Warthog)들이 땅을 헤집고 구르는 소리 같은 것들 외에 다른 소음이 거의 없이 고요하다. 체크인은 12시부터 가능한데, 나이로비는 해발 5889피트에 위치해서 적도에 가깝지만 낮에도 무덥지 않다. 따스한 빛이 기린호텔의 베이지빛 벽돌과 건물 안으로 내내 고요하게 들어온다. 기린 호텔의 첫인상은 다정하고 포근했다.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아무것도 서두를 것이 없고, 모든 것은 평화롭고 그저 행복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공간을 이동하듯이 게이트가 열리면서부터는 공기마저 다른 듯. 시간을 잊은 듯. 모든 게 새롭다.
체크인을 할 때 담당 버틀러가 정해진다. 우리 버틀러는 조금 수줍은 듯한 웃음의 "sam"이었다. 아마도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는데, 기린호텔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친구였다. 또박또박 호텔의 룰과 전반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주고 싶어 하는 듯했다. 이 일을 하면서,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했다. 자기는 세계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한국에서 온 사람을 담당하는 것은 처음이라 했고 우리와의 시간이 매우 기대된다는 준비한 흔적이 보이는 아첨도 곁들였다. 밝고 우아한 빛의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웅장한 중앙 계단이 있다. 1930년대 축음기와 망원경, 쉐이드 같은 소품들이 보존되어 있어, 사냥을 즐기는 스코틀랜드 저택의 주인에게 초대받은 느낌이 든다.
호텔은 전반적으로 옐로 레드 브라운이 아주 멋지게 조화를 이룬. 그리고 모든 곳에 기린이 있다. 기린 그림, 기린 냅킨, 기린 타월, 벽에도 기린 천장에도 기린 바닥에도 기린, 기린기린기린. 그러나 꽤 적절하게 배치하여 거북하지 않고 숨은 그림 찾기처럼 여기저기에서 기린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뭔가 배 나온 목수 아저씨가 '기린기린기린~' 노래를 부르며 기린 장식을 여기저기 달고 다녔을 것 같은 느낌의 인테리어다. 코로나를 지나며, 기린호텔은 새 단장을 했는데 꽤 신경을 많이 썼다. 수영장도 만들고 헬스장, 스파, 카페테리아까지! 이제는 수영을 하다 잠깐 쉬며 기린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해졌다. 방 내부 인테리어도 예전에 비해 많이 세련되게 바뀌었다. 물론 예전의 인테리어도 클래식한 멋이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역시 욕실이다. 개인적으로 생활공간에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곳이 욕실인데, 이곳의 욕실은 자연광이 내리쬐는 욕조 옆 벽면에 타일로 기린을 예쁘게 장식해서 낮에도 밤에도 영롱한 빛으로 장식된 공간을 만날 수 있어 특별했다. 사실 어쩌면 기린호텔의 방 내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기린호텔에 와서 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체크인을 하고 짐을 내려놓으면 바로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데, 식사는 건강하고 담백하고 우아한 느낌으로 나온다. 요즘 아프리카의 모든 하이엔드 숙소들의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모든 식단에서 글루텐프리, 알레르기유발 음식, 오일의 사용등을 섬세하게 살피고 있다. 일주일을 이곳에 있어도 살 안 찌고 예쁜 모습으로 기린호텔을 걸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그러나 나 같은 헤비드렁커에겐 무제한 주류 제공으로 술살 쪄서 나오기 딱 좋다. 기린호텔의 정원에는 기린뿐만 아니라, 고양이나 멧돼지들이 자유롭게 다닌다. 동아프리카에서 품바라고 불리는 이 아프리카 멧돼지는 라이온킹에서 묘사하는 성격 그대로이다. 단순하고 무식하며 용맹하다. 2006년 나미비아를 자전거로 여행할 때 어느 농장주의 집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이 멧돼지를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었다. 어찌나 애교가 많고 주인을 좋아하는지, 내가 농장주와 와인잔이라도 부딪힐라치면 질투를 심하게 해서 뿔처럼 생긴 이를 드러내고 췩췩 소리를 내며 돌격해 왔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테이블 위로 피신했고, 농장주의 가족들은 껄껄 웃으며 멧돼지를 막대로 막고 난리였었다. 그런 지랄 맞은 성격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멧돼지를 정말 좋아하는데, 사바나 초원에서 멧돼지 가족들이 안테나처럼 꼬리를 바짝 세우고 총총총 걸어가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특히 품바들은 새끼를 지키기 위해 초월적 용맹함을 보이는데, 상대가 사자나 표범이어도 아랑곳하지 않아 감동적이다. 그리고 이 친구들은 우락부락한 생김새와는 달리 땅 속에 묻힌 열매나 씨앗등을 파서 주워 먹는데 먹이를 먹을 때 바닥에 무릎을 꿇고 토실한 엉덩이를 치켜든 채 뇸뇸뇸 집중하며 먹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사람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기린호텔의 정원에 다니는 품바들은 이미 평화에 너무나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느긋해서 겁낼 필요가 없다.
나이로비의 날씨는 산뜻하다. 따스한 햇살과 향긋한 와인에 배를 통통 두드리며 행복해하고 있을 즈음
어느새 주인공이 살랑하고 나타난다
'기린이다!'
초원이나 동물원으로 배경이 한정되어 있던 기린이 창문 틈 사이로 보이다니! 창밖에서 무심하게 돌아다니는 기린은 약간의 인지부조화를 일으켰다.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기린을 '어 왔어?'라는 식으로 대하는 사람들까지. 어떤 다른 세상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카메라를 들고 달려 나가는데, 모두가 칵테일을 마시며 느긋하게 앉아있는 거다. 알고 보니 우리만 오늘 기린호텔에서 첫 1박을 하는 투숙객이었다. 다른 투숙객들은 이곳에서 2~3박을 기본으로 해서인지 느긋하게 여유가 있었다. 다들 애프터눈 티와 핑거푸드가 차려진 테이블 주변에 앉아 햇볕 아래 책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신나 하는 우리를 귀엽게 쳐다봐주었다. '우리도 어제 그랬어' 이런 표정으로. 기린장원 예약이 왜 그토록 치열했는지 왜 극소수만을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시간. 나는 이 여유와 평화 속에서 기린을 독대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시간을 산거다.
기린이 놀라지 않게 최대한 여유로운 척하며 다가갔다. 사파리 차량에서 수없이 봐온 기린이지만, 이렇게 거대할 줄이야. 기린의 옆에 서서 기린과 눈을 마주친 그 순간. 나는 신을 생각했다. 아름다운 생명체 그 이상을 넘어, 태초의 피조물. 아니 신의 모습이 있다면, 이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샷을 찍을 거야!!라고 바쁘게 뛰쳐나갔지만, 기린과 눈을 마주친 그 순간. 세상이 멈춘 느낌을 받았다. 정지된 공기의 흐름 속 한없이 고요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이 아름다운 생명체라니. 마법에 홀린 듯 멍하니 한참을 기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린도 나를 한참 응시했다. 그 긴 속눈썹과 순한 맑은 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나의 감상을 기린은 뜨겁고 거친 혀로 깨부수어 주었다.
No food No friendship
가시로 가득한 아카시아 나무를 야생에서 주식으로 먹는 기린답게 기린의 혀는 매우 거칠다. 가죽처럼 코팅이 되어 있어, 날카로운 아카시아 나무를 날름 먹어도 다치지 않는다. 기린호텔의 기린과의 관계에서는 법칙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No food, No friendship"이다. 음식 없이는 우정도 없다는 거다. 기린은 내게 눈을 맞춤으로써 우정을 가늠할 맛보기 시간을 주었고, 이내 혀로 내 손을 체크하며 그에 응당한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작은 펠릿모양의 기린 먹이를 애프터눈 시간과 아침 식사시간에 투숙객들에게 제공하고 우리는 이 먹이를 기린에게 바치며 우정을 쌓아야 한다. 처음에는 기린의 뜨거운 혀의 감촉과 거의 어린아이만 한 크기의 기린 머리가 쑥 돌진해 오는 것에 놀라 제대로 된 먹이의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면 기린도 '아, 이 녀석 초짜군'하고 다른 손놀림이 능숙한 사람에게 가버릴 수 있다. 그럴 때 버틀러의 도움이 필요하다.
버틀러 Sam의 역할은 이곳에서 매우 중요했다. 여기저기 자유로이 노니는 기린을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데려와주는 영업 사원의 역할, 그리고 순간을 놓치지 않는 훌륭한 포토그래퍼의 역할까지 담당해 주었다. Sam은 우리에게 기린과 함께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안전한 포즈를 알려주었고, 원활하지 못한 먹이의 공급에 실망하여 떠나려는 기린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우리를 좀 더 만나보라며 설득해주기도 했다.
기린호텔에서 인생샷을 남겨보겠다고 내가 살면서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우아한 표정을 열심히 지었지만, '손은 빠르게 입은 우아하게'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몇 장의 사진을 간신히 건졌는데, 그 이면에는 먹이를 빠른 손놀림으로 공급해 주던 숨겨진 왼손이 있었다. 애프터눈 티 시간에 열심히 연습한 덕에 다음날 아침에는 좀 더 능숙하게 기린과 함께할 수 있었다. 기린이 먹이를 먹는 속도는 매우 빨라서, 기린을 만족시키려면 매우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내 옆에서 먹이를 두 손에 부족하지 않게 쥐어주는 버틀러와의 찰떡 호흡이 중요한 이유이다. 버틀러와의 관계도 기린과 같다. "No tip, No friendship"이라 할 수 있다. 팁문화라는 건 서비스에 대한 감사 또는 요구 둘 다 해당될 텐데 좀 더 신경 써주길 부탁하는 의미의 팁을 먼저 건네면 확실히 기린호텔 내에서 순한 기린들을 선점(?)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기린 호텔에서 가장 순한 기린을 꼽으라면 'Eddie'이다. '에디-에디' 하고 부르니 그 긴 목을 천천히 구부려 내 얼굴 앞까지 와서 눈을 마주쳐주었는데, 그 순간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에디는 기린호텔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수컷 기린이고 관대한 품성을 갖고 있다. 사춘기의 기린들은 때로 흉폭(?)하므로 가까이 갈 때 조심해야 한다. 기린은 넥킹 Necking이라는 방식으로 싸우는데, 긴 목을 휘익 바깥방향으로 크게 휘둘러서 상대의 목을 치면서 공격한다. 기린이 싸우는 모습을 본 고재열 여행감독님은 '우아한 개새끼'처럼 싸운다는 표현을 쓰셨다. 한 번 휘둘러 치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가 안되네'라고 또 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공격과 공격 사이에 텀이 아주 길기 때문에, 자칫 기린에게 잘못 다가갔다가는 곰곰이 열받는 중인 기린을 마주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린과 함께할 때에는 기린의 옆으로 서지 않아야 한다. 기린의 옆으로 설 경우엔 기린의 목에 맞을 수도 있다.
인생에 딱 한 번, 마법 같은 아침. 기린과의 아침 식사
기린호텔의 일부 룸은 룸의 테라스나 창문으로 기린이 접근할 수 있다. 모든 룸이 가능한 건 아니어서, 보통 기린이 접근가능한 룸부터 매진되곤 한다. 이 룸의 장점은 방에서 기린과 함께 좀 더 편안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욕실 가운을 입고 기린과 함께 찍은 사진이 SNS에서 꽤 인기를 끌었는데, 이제는 애석하게도 기린호텔에서 가운을 지급하지 않는다. 실외에서 가운을 입고 기린과 사진을 찍는 등 위생면이나 풍속적인 면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준비해서 간다면, 지급여부에 상관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물론 방이 아닌 공용공간에서 목욕 가운을 입고 다니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푸르스름한 새벽, 기린들의 발소리는 새벽 5시부터 다각다각 들려온다. 일찍 일어나는 기린이 밥 많이 먹는 건 이 생태계에서도 진리이므로 먹성 좋은 기린들이 일찍이 몰려온다. 사실 설레어서 잠을 잘 못 잤다. 어스름 밝아오는 푸른빛에 이불을 떨치고 일어나려는 찰나,
"톡, 톡, 톡"
하는 소리가 창 밖에서 들려온다. 동화에도 이런 장면은 없었다. 2층 창밖에서 조심스레 톡톡 창문을 치며 깨우는 기린이라니! 전날 밤 Sam이 한주먹 쥐어준 밥이 이런 의미였구나! 좀 더 일찍 일어나 곱게 단장하고 기린님을 맞이하지 못해 송구할 따름이었다. 어스름 동이 터오는 하늘빛 아래 기린들의 실루엣이 느긋하고 우아하게 오가는 기린 장원의 아침. 이틀쨰 되니 기린 앞에서 평온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기린의 눈은 신비롭다. 눈이 너무 예쁘고 고요해서 기린이들의 식탐 따위 눈 맞춤 한 번에 모두 잊고, 오로지 아름다 기억으로 남았다. 아침엔 기린호텔의 어느 곳을 가든 온통 기린들로 가득하다. 걷는 걸음걸음 기린들과 마주칠 수 있다 즉, 밥을 항상 손에 쥐고 다녀야 한다. 명심하자 No Food, No Friendship
아침이 곱게 차려져 있지만, 사진에 정신이 팔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기린호텔의 직원들도 한바탕 포토타임이 끝나고 나서야 핫디쉬 주문을 받으러 온다. 평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기린호텔에서는 작정하고 사진을 찍었다. 요즘은 사진작가를 대동하고 오는 투숙객들도 많은 편이다. 우당탕탕 어수선함이 가시고 자리에 앉아 진짜 아침을 먹으려는데, 기린 한 마리가 아쉬움이 약간 남는 듯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예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압박감이나 성급함 없이 기린을 편안하게 바라봐서인지 기린도 차분하게 한 참을 옆에 있어주었다. 생애 잊을 수 없는 가장 특별한 아침이었다.
기린과 고요하게 눈을 맞추고, 온기를 느끼는 일. 기린 장원 호텔을 나오는 길은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기린 장원 호텔의 게이트가 닫히는 순간, 내가 머물렀던 기린 장원 호텔이 거짓말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인생에 딱 한 번, 세상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아프리카만의 마법을 찾는다면 주저 않고 권해주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