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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스이즈아프리카 Sep 16. 2023

아프리카, 왜 질리지 않지?

좋은 것도 일이 되면 싫어진다면서요?

 아프리카에 첫 발을 디딘 2006년, 그 이후로 나는 아프리카에서 셀 수 없는 밤을 보냈다. 특히 2014년 아프리카 여행사를 창업한 이후로 이 대륙은 내 삶에 온전히 섞여 들었고, 한국의 집이 딱히 필요 없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생텍쥐페리의 연인이자 최초로 대서양을 단독 횡단한 비행사였던 베릴 마크햄은 그녀가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30여 년을 그녀의 자서전 ' 이 밤과 서쪽으로'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아프리카에는 단 하나, 지루하다는 말 빼고 어떠한 형용사라도 붙일 수 있다"  아프리카를 스쳐간 무수한 사람들이 남긴 말들 중 내게 이보다 더 공감 가는 말은 없는 듯하다. 아프리카가 17년 동안 내게 단 한순간이라도 지루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단언컨대, 없었다.


여행에서 꿈꾸는 모든 것이 있는 곳, 아프리카

"아프리카 맨날 가는데 안 지겹나? "

 무뚝뚝한 경상도 여자인 엄마로부터 1년에 한 번은 이 질문을 듣는다. 나 역시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여자로서 만만치 않은 무뚝뚝함으로 '아 뭘 '이라고 매번 쓰윽 대답하고 만다. 매년 행해지던 엄마의 '지겨움 측정검사'에서 벗어날 겸, 엄마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이 챕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이자 54개의 국가로 이루어진 아프리카는 대한민국의 300배 면적과 같은 압도적 크기뿐만 아니라 13가지의 기후와 11가지의 식생이 더해져 지구 최고의 타이틀을 가진 경이롭고 독보적인 여행지를 만들어 낸다. 검은 대륙의 빛나는 만년설 킬리만자로, 세계에서 가장 긴 빅토리아폭포, 삶과 죽음의 대서사시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협곡인 피시리버 캐년, 20만 마리의 코끼리가 사는 초베강, 칼라하리 사막의 보석 세계 최대 삼각주인 오카방고델타, 영국 윌리엄 왕세손의 신혼여행지이자 오바마 대통령, 축구선수 베컴 부부가 휴양을 떠난 곳으로 잘 알려진 세이셀, 모리셔스, 잔지바르등 지상 낙원이라 불릴만한 인도양의 섬들, 지상 최대의 사막인 사하라, 그리고 인류의 기원 루시를 비롯하여 가장 오랫동안 지구를 지키며 살아온 수천 개의 아프리카 부족들의 다채로운 문화와 그들이 이룩한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은 신비로운 문명까지.


  감히 생각하건대, 여행에서 꿈꾸는 모든 것이 있는 곳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여전히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다. 아마 내 평생을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데에 써도 모자랄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대륙이다. 닳도록 드나든 아프리카 관광의 주요 국가들도 매번 갈 때마다 그 변화가 새롭고 놀랍다. 지난달에 갔던 곳인데, 이번 달이 다르다. 인터넷의 보급과 자본의 유입은 아프리카를 변화시키고 있다. 아프리카의 케냐는 우리나라보다도 모바일 송금이 발달해있고 일상적이다. 아주 작은 마이크로머니도 Mpesa를 통해 핸드폰으로 주고 받는다. 실물 화폐가 변하는 것만 봐도 새롭다. 화폐 개혁은 또 뭘 그렇게 많이 하는지. 일부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정권이 바뀌면 화폐 개혁을 하곤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이전 정권이 은닉한 비자금등을 무용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2020년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에티오피아를 2년 정도 가지 못한 그 사이, 화폐 개혁이 있으면서 내가 갖고 있던 비르(에티오피아의 화폐단위)는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쓰레기가 되어있었다. 도시의 암시장이나 아주 시골 구석까지 다니며 사용을 시도해 보았으나 이미 생명을 잃고 너덜대는 종이쪼가리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쓸모없는 한 뭉터기의 돈은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100달러짜리로 담뱃불 붙이는 것을 해보고 싶어 하던 어른이들의 로망을 실현시켜 주었다. 에티오피아 남부에 위치한 커피의 고장 시다모, 하이에나가 어슬렁 거리는 어느 지 테이블에 둘러앉아 고재열 감독님이 한 개비 씩 나눠준 시가에 돌돌 만 비르를 태우며 다들 재밌어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심지어 비르 환율은 반토막 아니 반의 반토막이 났다. 20년에 1달러당 27~29 비르에 환전을 있었다면, 23년은 1달러에 50 비르 정도가 공식 환율이 되었다. 실제로 거리에서 환전을 하면 90에서 100 비르까지도 환전이 가능하다. 거의 가상화폐급의 치솟는 그래프만 봐도 지루할 틈이 없다. 보통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에는 여러 국가를 여행하기 때문에 환전을 여러 번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가급적 환전을 하지 않고 달러나 유로와 같은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환전을 부득이하게 해야 한다면 소액으로 하여 그 나라에서 다 쓰고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 기념품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그 나라를 벗어나서 가치 있는 화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어이없지만 아프리카의 화폐는 재테크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나는 2007년부터 시작된 짐바브웨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시기의 100조 달러를 여러 장 갖고 있다. 지폐에 0이 몇 개야!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은 짐바브웨는 그 당시 100조 달러로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지구 한 편에서는 세기의 혁신 아이폰이 출시되고 있을 때에 또 다른 지구 한 켠에서는 전기세를 내려면 지폐를 수레로 실어 날라야 했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당시 갖게 된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100조 달러는 지금은 희소성이 높아져서 장당 50달러 그 이상으로 아마존에서 팔리고 있다. 물론 그것도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여전히 잠비아와 짐바브웨에 가면 관광객들에게 100조 달러를 파는데, 거의 가짜인 듯하다. 예전엔 사업하는 분들께 부자 되시라고 100조 달러를 선물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어서 많이 드리기도 했었다. 화폐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격변하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함께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사파리를 오래 하면 안 지겨워요?'이다. 이 질문은 아프리카로 여행을 준비하며 일정을 짜는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파리만 계속하면 지루하지 않아요? 코끼리 보고 사자 보고 끝일 것 같은데, "

사파리는 비용이 상당히 높은 액티비티에 속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다채로운 여행을 완성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사파리는 세렝게티나 마사이마라와 같은 사바나 초원 지역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열대 우림 지대에서도, 사막에서도 가능하다. 모두 완전히 다른 풍광을 갖고 다른 종의 동물이 보여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다. 손님들과 함께 아프리카를 일로써 오지만, 휴가도 아프리카로 가는 덕후인 나는 늘 여행에서 사파리 기간을 일정에서 잡을 수 있는 한 최대로 잡는다. 지금까지 한 사파리 횟수를 세어본 적도 없지만, BBC 다큐멘터리 팀 마냥 한 달 내내 직접 차를 몰고 국립공원에서 사파리를 한 적도 있다.

 사파리는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고 모든 순간이 경이로워 믿을 수 없는, 아프리카의 마법이라 할 만하다. 지난 휴가에서 만난 제인이라는 할머니는 16년째 매년 남아공의 은갈라 보호지구를 방문하여 1주일씩 사파리를 한다고 했다. 남아공 북부에 위치한 은갈라 보호지구(Ngala private game reserve)는 하이엔드 롯지 그룹인 앤드비욘드(Andbeyond)가 관리하는 프라이빗 동물 보호지역이다. 아프리카의 하이엔드 롯지들은 수만 헥타르의 땅에 1박에 몇 백만 원짜리 롯지를 짓고 관광을 유치하며, 그 수익으로 영역 내의 동물을 밀렵꾼과 농경지를 확장하고자 하는 인간으로부터 보호한다. 이 은갈라 보호지구는 버밍엄 Birmingham이라는 사자의 무리 때문에 상당히 유명한데, 전 세계적으로 야생에서 확인된 몇 마리 안 되는(약 3마리) 흰 사자 중 두 마리가 이 지역에서 태어나 큰 주목을 받았다. 야생에서 흰 사자가 태어나는 일은 유전적으로 매우 희귀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의 탄생을 온 나라가 축복하고 기뻐했다. 그러나 새로운 수사자가 무리에 우두머리로 등장하고, 그들의 관례대로 이전에 태어난 새끼들을 모두 죽이면서 흰 아기 사자들 또한 죽임을 당했고 이를 알게 된 모두가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새로운 우두머리와 암사자 사이에서 놀랍게도 다시 흰 사자가 태어났고 모두가 기쁨 속에서 이 흰 사자의 이름을 뭐로 지을지 고민하고 벅차했다. 물론 이 사자들은 이 주변 지역을 이동하기 때문에 늘 이들과 마주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이 사자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알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한다. 제인 할머니처럼 매년 찾아와서  '걔 눈 위가 찢어졌더라. 누구랑 싸웠나 봐. 어쩜 좋니'라고 걱정을 하기도 하고 이 버밍엄 사자들의 아들 딸을, 손주를 바라보고 축복하는 일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나 역시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사비샌즈 보호지역 Sabisands game reserve의 표범인 코코벨라가 작년에 낳은 새끼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실제로 방문해서 코코벨라의 새끼가 고물고물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한다. 그들의 끝없는 이야기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고 변화하는 일들이 계속 궁금하고 보고 싶을 뿐이다.

 여행 상품 중에 아프리카 동남부의 8개국(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 보츠와나, 나미비아, 남아공)을 30일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여행하는 상품이 있는데, 이 일정을 연달아 두 번 진행하게 되기도 한다. 같은 곳을 쉼 없이 한 달 간격으로 방문하게 될 때 드는 가장 큰 감정은 지겨움이 아니라 '안도감'이다. 집으로 돌아와 안부를 묻는 마음이 든다. 현지 숙소의 매니저나 직원들도 다시 만나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 Welcome, home!"

싱긋 화사한 웃음에 마음이 녹는다.


변화무쌍하나 멈춰있는 땅,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내게 안식이고 풍랑이다. 지평선처럼 끝없이 펼쳐진 완만한 구릉은 나를 보드랍게 감싸는 요람이기도,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기도 했다. 나는 낮의 열기와 새벽의 냉기가 뒤엉킨 나미비아 사막에 가만히 엎드려 고요한 위안을 얻기도 하고, 2006년에 남아공에서 처음 강도를 당했을 때에는 갓 태어난 것처럼 엉엉 울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정신이 고갈되고 마음이 앙상해짐을 느낄 때 내가 언제나 달려가 안긴 곳은 아프리카였다.

 급증하는 인구와 기회를 찾아 몰려드는 자본으로 격변하는 아프리카 대륙이지만, 아프리카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멈추어 나를 감싸고 달래고 다독인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나의 사랑하는 경상도 토박이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일이 되어봐라. 그게 좋은가." 

 

글쎄. 10년이 지난 지금도

좋다. 여전히.


내가 애정하는 사비샌즈의 코코벨라

푸른 눈의 코코벨라 주니어 2세, 건강하게 자라다오!




*아프리카 여행의 꽃, 야생의 평원에서 자유로이 뛰노는 동물들을 볼 수 있는 Safari는 동부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라는 뜻이고, 아프리카 현지에서는 'Game drive'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우리에겐 사파리가 더 익숙하기에, 여기에서는 게임드라이브를 사파리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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