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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해 Nov 27. 2023

김화진, 잇티제 작가의
인프피 이해하기

책모임 1회 <나주에 대하여>

지난 달부터 나와 풀잎, 이지, 두부, 찬찬 다섯 명의 대학 친구들이 모여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 추천 목록에 쌓고 다같이 고른 첫 모임 첫 책은 김화진 <나주에 대하여>.

모임 후 리뷰 (조금 긺) & 책 읽으며 재미있었던 구절들 발췌 (역시 긺)




여덟 개 단편 중 제일 먼저 나온 <새 이야기>는 정말 반갑게도 황정은 초중기 작품을 연상시키는, 귀엽고 산뜻하고 기이한 소설이었고 그래서 너무너무 기대됐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특정한 ‘계열’처럼 한 번에 묶어 생각하는 버릇이 최근에 좀 심해졌는데, 황정은, 구병모, 편혜영, 박서련 그리고 이미상과 강화길에 이제는 김화진도 얹어볼 수 있겠다 하고 감히 평가하기도. 근데 다음 단편들이 각기 나름대로 좋은 점은 있지만 <새 이야기>만큼 재미있지는 않아서, 배치를 정말 똑똑하게 했네 약간 속았다 … 하면서 읽었다. 표제작인 <나주에 대하여>조차도 <새 이야기>, 또는 제일 정갈해서 힘이 나는 <근육의 모양>, 또는 제일 잘 알아서 정이 가는 <꿈과 요리>보다는 뒤로 밀린다.

김화진 작가 그 자신이 편집자라는 건 예전에 어렴풋이 읽은 적 있는데 완전히 까먹고 있다가 모임에서 찬찬이 일깨워줘서 기억났다ㅋㅋ 아 맞다 편집에 능숙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심지어 마지막 단편 <침묵의 사자>는 첫 단편 <새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또 한 번 환상의 비인간 친구가 등장해, 이 지나치게 프로 같고 수가 보이는 수미상관은 뭐지… 하고 있던 차였다.



혼자 읽었다면 아마 척출기 - 정체기 - 쉬운 마음 (거의 연작) 구간에서 몸을 한 번씩 부들부들 떨고 뒤쪽이 유독 괴로운 소설로만 기억했을 텐데 친구들과 함께 읽으니까 소설과 소설 사이 잇기가 쉬워지는 게 정말 신기하고 좋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척출기>는 자길 몰아붙이듯 남을 몰아붙이며 살던 영은이 몸이 아파진 후 공교롭게 ‘일과가 없는 사람’인 주현을 만나고 호감을 갖게 되는 이야기이다. 둘 사이엔 팬덤 천 명 정도 살 법한 퀴어들의 인디 출판물을 주로 내는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 희재가 끼어있고 그래서 영은은 자기가 희재나 주현의 세계에서 얼마나 ‘먼’ 사람인지 금방 안다. 영은은 곧 다가올 진주종 수술로 인해 어떤 형태로든 신체적 사회적 결손이 생길 것을 걱정하고 짐작하면서 이 감각을 통해 주현이 고백한 수술도 놀라지 않고 받아들이지만, 결국 각자에게 자기 상처만큼 중한 것은 없고 남의 이야기도 내 프레임을 관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예외 없이 불가피한 오독과 손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둘은 섣불리 무슨 사이가 되는 선택을 반려하고, 영은의 수술 이후에 ‘괜찮아지면’ 만나기로 한다.

이 기약 없는 ‘나중에 보기’ 약속을 어떤 친구가 “각자의 세계/영역을 존중하는 방식으로서의 거리 두기”라고 멋들어지게 표현해줬는데, 곧바로 두부가 <쉬운 마음>에서는 그 경계 자체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이어줬다. <쉬운 마음>에서 화자 송화에 의해 전형적인 부잣집 알파걸처럼 그려지는 현정의 역할은 확실히 묘하다. 깨끗하고 예쁘고 비싼 것들을 몸에 두른, 자기 계급성을 잘 알고 즐기고 써먹는 헤테로 소녀 같지만 알고 보면 송화보다 훨씬 발칙한 레즈비언으로 밝혀지니까.

현정이 퀴어란 사실 자체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기에 무슨 반전을 의도한 것 같진 않았고 그저 계속 너랑 나는 달라, 나는 불행 배틀이 유행이던 시기를 지나온 사람이고 너는 그런 거 몰라, 너는 얄밉게 예쁘고 똑똑한데 그런 너랑 (성애적으로) 가까워지고 싶은 내가 존나 초라한 거 같으니까 밀어낼 거야, 하는 송화의 다가올 당황이 너무 예견되어서 웃겼다. 송화가 계속 현정을 타자화하고 뭘 모르는 사람처럼 치부하고 싶어했던 건 자기 가진 소수자성이 자기만의 것이길, 그리하여 직장 사람들의 물정 모르는 안온함과 자기 자신의 가열찬 고민의 깊이가 조금 구별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도 있었을 거 같다고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니까) 멋대로 해석했다.


<정체기>는 사실 이 단편들 중 김화진이 가장 이르게 발표했고 (거의 등단 직후였다) 그래서인지 내겐 제일 초장부터 직설적이고 재미있지 못했던 소설. 은주와 유진이 가까워지는 일의 벼락같은 즉흥성도 따라갈 수 없었고, 그 키스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한 바닥은 솔직히 좀 많이 별로여서, 못되게 말하자면 ‘서독제나 프라이드영화제에서 잘못 고른 망한 GL 같다’고 내가 그랬는데 … 왜냐믄 자꾸만 합평하듯 읽어버리는 바람에…

그치만 경주에 대한 묘사만큼은 좋았다. 예쁘게 힘주어 쓰인 무덤과 현재성에 대한 구절은 참말로 경주에 가고 싶어지게 만든다. 어쩌면 그 단락이 이 단편보다 선행하고, 그걸 품는 소설을 쓰기 위해 은주와 애인의 잘못 보내진 편지 및 그 모든 주정 씬이 후행으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


그런데 다같이 첫 두 단편인 <나주에 대하여>와 <새 이야기>의 유사성을 다시 생각하다 보니 이 <정체기>의 잘못 보내진 편지 어쩌구도 의도가 이해되는 것이다. 역시 두부가 이걸 두고 “사랑하면 자길 버리는 사람이 있고(천희) 자기가 되는 사람이 있다(진아)”고 해서 아!! 하고 이해된 점.

읽다 보면 사실상 거의 모든 단편에서 거의 흡사한 삼각관계의 구조가 반복되는 것만 같다. 관찰하고 질투하는 화자 - 사랑(인 줄 알았던 것)의 대상 - 사실은 그 사랑 그 자체보다 훨씬 중요한 사랑의 매개, 직접적인 관찰의 대상.  

<새 이야기>에서는 천희보다 천희가 남기고 간 파의 심리가 더 자세하게, 진아와 더 가깝게 그려진다. 진아의 목적은 천희를 다시 만나거나 천희를 더 알고 싶어하는 욕망보다도 그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천희와 자기 관계 바깥의 ‘파’(=인터넷에서 진아의 창작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잘 설명해주는 데에 있다. 진아와 천희의 끝나버린 관계를 헐겁게 이어주기 위한 매개인 줄 알았건만 사실 진짜 ‘대상’ 이었던 파 - 그냥 오리인 천희 - 감정과 욕망의 주체인 진아의 관계가, <나주에 대하여>에서 규희가 ‘완벽한 파트너’라고 서술해서 더 집착하는 줄 알았던 나주 - 죽은 규희 - 나주를 샅샅이 훑으며 마음에 들고 싶어하는 단이의 관계로 정확히 겹쳐진단 점이 너무너무 재밌었고…

규희의 죽음이 어쩐지 너무 틀에 박힌 소설적 도구적 장치적인 설계에 의해 탄생한 것 같다는 얘길 내가 했고 친구들도 약간씩 동의해줬는데, 또 다른 의견은 어차피 그 죽음은 단이에게 또 소설 쓴 사람에게 중요한 상실이 아니라는 거. 결국 중요한 건 그렇게 해서 - 규희의 죽음 이후에 규희의 말을 추적하다가 - 만난 나주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 상실은 <근육의 모양>에 가서는 아예 그 자체로 플러스가 되는 것, ‘해본 것’ 리스트에 추가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정체기>에서는 은주의 애인이, <침묵의 사자>에서는 이혼 후 영국으로 떠난 친구 지은이, <근육의 모양>에서는 은영의 옛 직장 동료 예은이, <쉬운 마음>에서는 송화의 대학시절 친구 세선이 각자 이야기 바깥의 / 이미 지나간 / 화자가 여전히 무시하지 못하고 마음 쓰는 절대적 기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물’이 아니라 일종의 관념체가 되어버린다. 이것도 넓게 보아 ‘그냥 오리’ 천희나 죽어서 나오지 않는 규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꿈과 요리>는 제3자를 끼우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 ‘기준’이 되는 사람들끼리의 지겨운 애증 나누는 얘기. 어떻게 보면 이 단편집 중 가장 현실과 가까우면서도 좀 너무 솔지에게도 수언에게도 잔인한 거 아닐까 싶었다 이야기의 결말보단 거기까지 나아가기 위해 현실의 솔지 수언들이 각자 겪어야 할 공감성 수치 탓에…

그 옛날 윤이형 <붕대 감기>나 이미상 <하긴> 같은, 우리가 같이 지나온 수도권 대학-꿘-범페미니즘 소수자 바닥의 전형성이나 배타적인 커뮤니티를 다루는 소설들이 요즘 유난히 더 인기였는데(최근의 한국 소설가들이 다들 그런 걸 졸업하고/하기 위해서/아직 못해서 글 쓰고 있다는 방증이겠지…ㅎ) 그 ‘판’을 우리가 너무 깊이 알았기에 더 못 견뎌한다는 걸 알기 때문.

<쉬운 마음>이나 <침묵의 사자>에서는 이 사람이 그 ‘판’이라는 경계 자체가 허구적인 거라고, 해체하고 싶다고 말하려던 걸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꿈과 요리>만 읽으면 아닌 것 같다. 뭣보다 분명히 ‘일반’의 커뮤니티와 구별되는 이 '판'의 특수성을 너무 잘 꼬집어서 웃기게 써놨어… 나는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가능해서 웃겨하며 보긴 했는데 만약에 내가 바로 그 상태였던 시기에 읽었다면 와 진짜 죽고 싶도록 수치스럽지 않았을까 싶은 대목도 여러 군데 있었다ㅋㅋㅋㅋ 그래서 집와서 김화진 작가 mbti 극t라는 얘기 다시 곰곰 생각해봤음


만약에 누가 넌 수언과 솔지 중 누구를 더 닮았냐? 하고 딱 잘라 대답하라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솔지가 수언을 두고 ‘고여 있는’ 사람으로 평한 거나 수언이 솔지를 ‘설익은’ 허세가 있는 사람으로 평한 건 좀... 현실적이지 않고 그럴리가 싶고 작가 상상에 가까워보이지만(둘은 계급차가 자아내는 취향이나 미감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것만 뺀다면 지금은 솔지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자기보다 상대적으로 더 솔지인 사람이 있어서 수언의 주눅듦을 모두 경험해봤을 거란 점이 정말 메타 코미디 같고 부끄러워지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자기 삶을 ‘일반적인’ 세상에 잘 먹히게 자기계발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는 대신, 좀 못생겨도 알차게 단단하게 채우고 싶으면서도, 이 반사회적 못생김이 계속 신경쓰이는 마음. 이것도 좀 엘리트주의적인 발언일 수 있지만 이런 거울치료 잘 시켜주는 작가들이 제일 재치 있다고 느끼고 만다.



앞으로 누가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면 (친해지고 싶은 사람의 경우에) 꼭 묻고 싶다. 여기서 누가 제일 자기와 닮았다고 생각하시나요?! 하고..

모든 인물에 김화진이란 사람이 100등분된 호크룩스처럼 들어가있는 것 같고 그와 나와 나의 친구들의 비슷한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훨씬 많고 커서 조금 소름이 끼칠 정도야. 모두가 다른 (비)대학 다른 커뮤니티 다른 20대를 보낸 줄 알았는데 대체 우리는 얼마나 동질한, 소위 소수자적인 경험을 한 걸까 싶고 그걸 친구들하고 웃으면서 조금 스스로 놀리면서 부끄러워하면서도 재미있어 할 수 있는 건 다행이지만ㅋㅋㅋ






새 이야기


천희와 함께 있던 순간은 대체로 잊을 수 없다. 너무 각별하기도 하고, 너무 짧아서이기도 했다.

육 개월간 우리는 많은 얘기를 했다. 천희는 호수가 넓은 걸로 유명한 대학교 근처에서 태어났고(천희가 그 얘기를 했을 때 나는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어, 나 그 학교 다녔는데!) 잠깐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옷 만드는 일을 배웠다고 했다.

처음엔 동대문, 그러다가 함께 일했던 선배가 독립해 성수동에 사무실을 낼 때 따라 옮겨왔다고. 처음 일을 배울 때 동대문에서 천희의 별명은 '천천희'였다고 했다. 걷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일 배우는 것도 너무 천천히 해서…… 거기랑 안 어울린다고 했어.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나는 그런 천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 아주 조금 궁금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짜릿함에 떨고 있었다. 더 얘기해줘! 어릴 때 얘기 듣고 싶어! 하고 소리지를 수 없어서 볼 안쪽 살을 꼭 깨물어야 했다. 대학교 때 여자친구 있었어? 하고 간신히 물어본 게 전부였다. 천희는 씁쓸하게 웃으며 아니… 했고 나는 친구들의 반응을 상상했다. 말이 되냐? 양아치 아님 게이라니까. 알아서 친구들의 목소리를 재생하고 알아서 그 목소리들을 애써 털어버렸다.


파를 선물받은 날은 천희가 떠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진아야, 선물이야.

부루퉁하게 앉아 있는 내게 천희가 건넨 것은 대파가 심긴 화분이었다. 분명 파였지만 화분에 담긴 모양새가 영 낯설어서 굳이 물었다. 이게 뭐야? 천희는 짧고 나직하게 대답했다. 파야. 끝을 조금씩 잘라 먹어. 계속 자란대.

왜 하필 파야, 하고 퉁명스럽게 굴지도 못했다. 그냥 천희가 그렇지 뭐 하고 파 화분을 받아들었다. 아주 별로였다. 초록 줄기가 제법 자란 파 화분을 안고 있자니 <레옹> 같고, 그 영화는 어딘지 께름칙하고, 이것은 천희의 이별 선물이었다. 안 좋은 것은 늘 그렇게 겹친다. 천희야 우리 오늘이 마지막이네.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천희도 슬픈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이별이 같은 건 아니지. 천희의 이별은 내 것보다는 덜 맵고 덜 찐득거렸을 것이다. 나는 파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코가 매웠고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꾹 참았다. 울면 진짜 이상한 거야. 나중에 떠올리면 너무 억울할 거야. 천희는 별생각도 없는데 혼자 운다는 건 진짜 자존심 상하는 일이야. 그렇게 랩 하듯이 되뇌다가 천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다이소에 들러 대파 화분용 물뿌리개를 샀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야 다시 생각했다. 천희는 안 그랬을 거야. 내가 울어도 우스워하거나…… 뻐기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그저 천희가 떠난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천희가 떠나서 나는 슬프다. 그 문장만을 생각하며 단순하게 슬퍼할 수 있었다. 단순하게 슬퍼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후련한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

대파가 입을 연 건 천희와 마지막으로 본 지 엿새쯤 되었을 때였다.


파는 천희 같았다. 싱싱하게 해맑은 표정으로 이상한 말을 하는 파를 볼 때면 여지없이 웃음이 났다. 아니다. 아무 의미 없는 웃기지도 않은 말을 해도 웃겼다. 파는 내가 머리를 자를 때면 시원해했다. 가위로 초록색 끝부분을 자르면 아사삭 소리가 났고 나는 파가 괜찮다는데도 매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파가 스물두번째로 괜찮아! 시원해! 라고 말했을 때 내가 어떻게 그래? 하고 묻자 파는 동글동글한 목소리로 몰라! 하고 말했다. 파의 표정이 보인 것 같았다. 멀뚱하고 무구하고 무딘 표정. 나는 웃고 말았다. 파는 별로 매운맛이 아니네. 무딘 맛이야. 라면이 보글보글 끓었고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파는 신이 난 목소리로 무딘 맛! 하고 후창했다. 주방 장갑을 끼고 다 끓인 라면 냄비를 책상으로 가져가며 왜 그렇게 신이 났어? 하고 물으니 재밌잖아 무딘 맛! 하고 재잘거렸다. 파 화분을 마주하고 앉아 라면 한 젓가락을 집어 입에 넣었는데 돌연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방치하며 나는 속으로 지겹다 지겨워 누수처럼 우는 일...... 하고 푸념했다. 파가 왜 울어? 했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재밌다고 한 말에 눈물이 터졌다고 어떻게 말하나. 늘 재미없다는 소리만 들었는데. 사람이 싱겁고 재미없다고.



힌트에 가까웠던 것들도 있다. 가끔 처음 만난 사람답지 않게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곤 했던 시선과 너를 보러 여기에 왔어, 같은 말들. 고방오리와 흰뺨검둥오리를 구분하고 서울의 지리를 천 중심으로 알고 있는 것. 내가 만화를 그렸다는 걸 말하고 난 뒤 천희가 다음엔 뭐 그려? 하고 물었을 때 당황한 내가 아 지금은 좀 쉬며 새 이야기를 구상 중이야 하고 대답하자 환해지던 얼굴.

파는 믿을 수 없는 말을 했지만 그러고 보면 나는 처음부터 파의 말을 믿은 채로, 파의 말에 기대어 천희를 떠올렸다. 단지 내 평생 그런 지속적인 관심과 오랜 외사랑은 받아본 적이 없어서 조금 안 믿기는 얼굴로 되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돼? 누군가가 보고 싶어서 몸을 바꾸고 살던 곳을 떠나는 일이?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서 짓는 표정을 나만 못 보곤 한다는 것, 이 세상의 비밀은 어쩌면 그런 게 전부가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동물들은 단순해. 새는 그리움이 큰 동물이잖아. 파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서 나는 오, 하는 단음만 낼 수 있었다.



불광천을 제일 좋아했거든.

불광천이라니. 월드컵경기장이라니. 그곳은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혼자 살 집을 구한 동네였다. 천희, 잘 찾아왔구나. 정말이지 동물적인 감각이구나.



너는 그걸 다 어떻게 알아? 너는 누구야?

파는 으쓱하더니 대답했다. 나는 천희가 남긴 마음이야. 너랑 같이 있고 싶은 마음. 사람들은 그걸 미련이라고 부르지.

미련과 파가 무슨 상관이지? 그건 속으로 한 말이었는데 파는 언제나처럼 내 속엣말을 다 들었고, 가모가 네기오 숏테 구루, 노래하듯 외었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는지. 투덜대는 내 마음을 또 듣고 파는 혀를 찼다. 오리가 파를 들고 온다. 몰라? 안성맞춤이라는 뜻이야. 안성맞춤이라고? 그래. 아아주 옛날부터. 옛날 어디? 옛날 일본. 아아…… 천희가 일본에서 살았다더니.


나에게 진실을, 비밀을 쏟아낸 파는 안도의 한숨을 폭 쉬었다.

아… 나는 너도 죽는 줄 알고.

내가 왜 죽어.

그럼 뭐야?

그냥 매운 걸 너무 많이 먹어서 쓰러진 거야.

그건 반쪽짜리 대답이었다. 나는 천희가 너무 보고 싶기도 했고, 그래서 좋아해 마지않는 짝사랑 얘기를 하느라 매운 걸 너무 많이 먹기도 했지만, 그래서만은 아니었다.

근데 있잖아. 내가 천희를 보고 싶어하면 나도 새가 될 수 있는 거야?

피는 골똘히 생각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파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는 너무나 사람이구나.

*

천희가 동대문에서 나에게로 오는 일에 몰두한 시기에 나는 다른 것에 몰두해 있었다.


천희에 대한 부끄러움은 이런 것이다. 천희를 만날 즈음에는 천희 덕분에 두근거렸지만 온전히 천희 때문은 아니었다. 천희를 그리거나 천희로부터 비롯된 어떤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나는 그때, 천희가 떠나간다고 했을 때, 슬픔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생각. 상대방이 떠나갔으므로 이제 나 혼자서 맘껏 이 마음을 부숴보고 분류해보고 들여다볼 수 있다는 설렘. 이상하게 그랬다. 저 훤칠하고 해맑은 남자와 어차피 잘 안 될 것 같고 그럴 거라면 내 그림의 재료가 돼라 하는 마음. 천희를 만나고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다시 뭔가를 하는 이야기. 이왕이면 내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하는 이야기. 나는 만화를 그리면서, 내가 본 숱한 작품들에 등장한 어떤 로맨스도 작가가 무심하게 이유 없이 연결시킨 것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는 사람이 지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이어지고 싶은 마음이 형체를 지니게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랬는데,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게 한 사람에게인지 여러 사람에게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양쪽 다인 것 같았다. 천희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천희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나, 천희에게 느낀 내 감정을 그린 이야기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나. 혹은 그 둘을 전부 원하나. 바보 같은 생각이래도 늘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둘은 같은 장르가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걸 한데 놓고 내 마음을 달아보았다. 파가 맞았다. 천희가 나를 얼마나 그리워해서 사람이 되었든 천희가 새든 사람이든 내 마음은 그 정도가 아니다. 내 안에는 천희만을 바라보는 화살표 같은 건 없었다.


파와 함께 있을 때는 비교적 확실했다. 정답을 맞혔다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파를 웃기고 싶었고, 파가 웃는 정확한 포인트들을 발견했다. 파는 내가 하는 천희 이야기,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고 결론내린 천희에 대해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늘 조금씩 자라는 자신의 머리 꼭대기를 잘라 내가 먹는 음식에 넣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 둘뿐이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정확한 성취는 처음이야. 이 정도로 내가 뿌듯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러다가 쓰러진 것이다. 파가 좋아하는 일을, 매일 새벽 맥주 몇 모금에 취해서 천희 이야기를 재구성해 늘어놓고 매운 것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일을 매일매일 하다가. 멈추지 않고 하다가 위장에 탈이 나서 쓰러졌지.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나주에 대하여


나는 너의 모든 행동이 부드럽고 나긋하다고 느끼지만 그 안까지 부드럽지만은 않다고 여긴다. 의외로 뾰족한 구석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바깥을 향하는 게 아니라 너의 안쪽을 향한다. 너는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다. 거래처 강부장은 새로 들어온 네가 인사를 하자 시집 좋은 데로 가게 생겼네, 라고 말했다. 강부장은 자신이 그런 말을 하면 듣는 아가씨가 아니에요, 랄지 감사합니다, 랄지 인사를 하며 수줍게 웃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하고 싶었을 테지만 너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대신 입술을 한번 오므린 뒤 천천히 말했다. 그런 건 외모 지적이 아닐까요. 하고 조용히. 너는 그 말을 끝내고 다시 입을 오므린다. 외모 지적이 아니라 성희롱, 이라고 말하려다가 내뱉는 찰나에 바꾼 것 같다. 나는 네가 솟아오른 광대뼈와 낮은 코에 콤플렉스가 있다는 걸 안다. 너는 고민하거나 생각에 잠길 때면 자신도 모르게 두 손바닥으로 뺨을 가리는 척하면서 광대뼈를 누른다. 완벽히 가리고 싶다는 듯 지그시, 오래.


걘...... 재미없어요. 섹스도 안 좋아하고. 애인이 벗어도 하고 싶어하지도 않고. 그런 액션이 없으니까 진짜 심심하더라고요.

선배 너무 재밌어요. 저는 그렇게 말 못하는데.

너는 정말 재밌는지 입을 크게 만들고서 웃는다. 그리고 덧붙인다.

음, 이런 말 주제넘을 수도 있긴 한데 남자친구분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해요. 사실 저도 별로 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거든요.

안다. 나는 너를 너무 많이 안다. 규회와 너는 그런 사람들이지. 너희들은 신앙이 깊은 연인이었고 성애나 성욕은 학문적 관심사에 불과할 뿐이었다. 섹스는 필수 요소가 아니었다. 손을 맞잡거나 가볍게, 장난스럽게, 진하게, 신중하게, 무드 있게 입을 맞추면 됐다. 너희 사이에 스킨십은 그거면 완벽했다. 너와 규희는 모두 '끝까지 간다'는 표현을 혐오했다. 성기 결합이 섹스의 전부인 줄 아는 덜떨어진 애들이나 그런 말을 쓴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스럽고 거친 말로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그건 그런 생각이다.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 너의 모습에서 가장 자주 느끼는 그 태도는 규희가 추구하는 태도였다. 너는 규희가 추구하는 여자였다. 그런데 규희는 왜 나에게로 왔나. 나는 규회와 만나는 내내 그게 궁금하고 불쾌했다. 신선했겠지. 아니면 내 어떤 면을 높이 살만하다고 평가했거나. 그거면 됐다고 판단했던 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규희는 내내 착각하고 있었다. 말투가 조심스럽다고 파괴력을 지니지 않은 건 아니다. 너만큼 모든 걸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하필 자신의 애인을 향해 약간, 이해가 안 돼. 라고 말한다는 건...... 그리고 내가 그 말뜻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 나에 대한 기만이다. 너를 사랑하고 너를 관찰해온 나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기만.  

*

나는 네가 운영하는 모든 채널을 안다. 네가 분리해서 보이는 전시욕과 표출욕을 모두, 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알고 있다. 나는 아마도 너의 가장 열렬한 추종자다. 너는 모든 SNS를 그 포맷에 맞게 사용할 줄 안다. 인스타그램에는 긴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한두 문장 정도를 남긴다. 사진은 주 2회 정도 올라오는데 평일에는 거의 올라오지 않고 주로 주말 이틀 동안 보거나 읽거나 먹거나 갔던 것에 대한 사진이 올라오는 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너의 자아는 산뜻하고 질척이지 않는다. 담백하면서도 진지하다. 특히 좋아하는 책이나 작가에 대해 남긴 글을 보면 그 한두 문장뿐인 짧은 글도 얼마나 고심하고 고쳤는지 알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너는 좀더 사적이다.



너의 리스트는 이랬다. <델러웨이 부인>, <삶의 한가운데>, <모래의 여자>,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나는 네가 뒤라스의 <연인>은 리스트에 넣고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넣지 않아서 너를 좋아했다. 나는 너의 취향을 대부분 신뢰했다. 종종 너무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만으로 일상을 구성하고 편집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스스로의 약한 면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상처받는 일에 익숙해지지 않는 스스로를 전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네가 가진 다른 부분에서 느낀 호감이 그 작은 부분들을 상쇄시켰다.



나는 네가 왜 좋았을까. 그저 규희의 전 애인이라서? 규희가 너를 자기가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 완벽한 파트너라고 평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남기고 규희가 죽어버려서? 규희는 죽고, 규희를 공유했던 너만 남아 있어서?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소개하며 절대 먼저 뭔가를 제안하지 않는 사람들. 같이 저녁 먹을래요? 시간 되면 볼래요? 하는 말을 주로 듣는 쪽인 사람들.

나는 생애 전반에 걸쳐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원망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성향을 가진, 내향 인간들을 항상 좋아하면서도 서운했다. 나는 매번 제안하는 쪽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천천히 알아가고 조심스럽게 가까워지고 싶다는 사람들의 팔을 붙들고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흔드는 쪽은 백이면 백 나였다. 그런 나도 좀 병적인가. 어느 모임에서나 그런 유의 사람들을 좋아해 서촌으로 커피 마시러 갈래요? 광화문으로 생선구이 먹으러 갈래요? 하고 물으면 그들은 언제나 사려 깊은 표정으로 아, 네, 좋아요. 언제든 단이씨 편하신 시간에…… 라고 대답해왔다. 거절이 아닌 것만으로 마음이 놓였지만 한편으로는 늘 속이 꼬였다. 너희들은 좋겠다. 우아하게 컨펌할 수 있어서 좋겠어. 누군가가 물어보면 음…... 하고 고민하고 마침내 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서 좋겠다. 나도 그런 역할 좀 맡아보고 싶네.

규희도 그랬다. 나는 규희가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슬펐다. 조심스럽고 조용한 성정. 나로서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그런 성격으로 사는 일은 어떤 걸까 늘 상상하곤 했다.


나주씨 장녀예요?

너는 고개를 젓는다.

대부분 그렇게들 많이 말하는데, 아니에요. 둘째 딸이고 막내예요.

너의 얼굴에 떠오른 익숙하다는 표정을 조금 오래 바라본다. 나는 네가 장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묻는다. 그런 물음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냥 그렇게 묻는다. 그런 오해에 대해 설명하고 싶고 자신이 지닌 그런 분위기를 조금은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 건 왠지 SNS를 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다. 막내인 사람에게 장녀인 줄 알았어, 하는 말이 좋게든 나쁘게든 그 사람의 어떤 점을 건드리는지. 그 점에 대해서 얼마나 말하고 싶어하는지도.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네가 말하지 않고 못 견디는 대화 주제를 꺼내게 된다. 왜 이렇게까지, 자꾸 네 마음에 들고 싶을까.





꿈과 요리



언젠가 수언이 학교 앞 카페에 앉아 토스트를 먹고 있었을 때 솔지 무리가 들어왔다. 항상 같이 다니는 세 명이었다. 그들은 들어와서 다음 상영회 때 틀 영화를 골랐다. 그리고 그 주의 사회과학서 읽기 모임에 대한 감상을 농담 섞어 얘기했다.

솔지가 만든 모임이었기 때문에 솔지가 가장 많이 얘기하고 즐거워했다. 너희들과 이 모든 걸 하기로 한 게 너무 다행이야, 하며 진심어린 인사도 주고받았다. 그뿐이었는데 수언은 그 행위들이 과시적이라고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솔지를 향해 이기죽거렸다.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믿으면 좋은가, 닭살 돋는 말을 참 잘하네. 그게 다였다. 수연은 그 이후로 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솔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므로. 특히 자기가 못 가진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므로 말이다. 수언은 그렇게라도, 자기의 기준에서라면 너무 대놓고 의미를 좇고 학구열이나 성취욕 같은 걸 드러내고 친구들끼리 무언가를 도모하며 함께 도모한 친구들끼리 서로 의미 있다고 추켜세우고 쓰다듬어주고 기뻐해주는 게 너무 간지럽고 의미 없게 느껴졌지만, 그렇게라도 의미를 찾는 삶이 자신의 삶보다는 낫지 않은가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하기도 한 게 아니라 오래 생각하다보면 늘 그쪽으로 생각이 매듭지어졌다. 그래도 쟤가 나보다 낫다, 그래도 뭘 하잖아, 그런 식으로.

그때 수언은 허무하고 허무했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진짜로 가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낭비하며 가끔 도서관에 들러 빌려오곤 하는 책들은 대부분 읽지도 않고 반납했다.


수업은 나중에 솔지와 친해졌을 때 자신이 솔지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종종 떠올렸고 미안해했으나 크게 죄책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후에 알게 된 솔지는 실제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었고 그와 별개로 수언은 자신이 모르는 타인을 평가하거나 관찰할 때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떻든 간에 대체로 그 사람을 우습다고 판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수언 자신이 그때보다 좀더 다정하거나 좋은 사람이 되었든 반대로 솔지가 의미 부여를 덜 하는 사람이 되었든 그때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솔지에 대한 판단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수언은 원래 그런 말을 먼저 건네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성격이 아니었으나 솔지에게 수언은 과에서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는 내성적이고 유령 같던 동기였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수언은 실제로는 조용하지 않았지만 학과에서는 말이 없는 편이었다. 이상하게 무슨 얘길 해야 할지 몰랐고 동기들이 하는 얘기 중 어떤 것도 재밌게 들리지 않았다. 수언이 입을 다문 것은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수언이 알게 모르게 속으로 솔지를 조금 고까워한 것과 엇비슷하게 솔지는 수언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저렇게 돌멩이처럼 살까? 가만하고 고요하게. 지루하지 않나, 쟤는? 자기 발전이라거나 도전이라거나 변화라거나 이런 낱말을 떠올리면 설레지 않나? 앞으로 좀 나아가고 싶지 않나? 솔지에게 수언은 그저 고여 있는 것 같았다.


모두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하기 전이었고 솔지의 독립영화 상영회에서는 자신들이 사랑해온 모임의 유의미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 했다. 그 욕망은 누구보다 솔지에게 강하게 있었다. 독립영화 상영회에서 써낸 글과, 함께하던 사회과학서 읽기 모임에서 쓴 글까지 모아 잡지를 내자는 의견을 냈다. 우린 영화비평도 썼고 서평도 썼잖아. 잘되면 계속 내게 될걸? 왜, 크라우드펀딩도 할 수 있고 북페어도 나가고! 모임원들도 품이 많이 들지만 좋은 일이라고 한마디씩 동의를 표했다. 그들은 자신이 써낸 글들이 어설프지만 진심어린 글이라고 생각했다. 이 활동을 토대로 기자나 작가 같은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있었다.

소풍도 전날이 더 설레듯, 할래? 할까? 하는 순간은 언제나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얘기하는 것만으로 이미 다 된 것만 같은. 그러나 진짜로 일을 하려고 하면 달랐다. 회의는 신이 났지만, 방학 동안 한 권의 책을 내기에는 인원과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수언을 다시 만났을 때, 무엇보다 솔지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제 솔지와는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영화나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친구들이 없었다. 솔지는 아주 조심스레, 그러나 어떤 확신을 가지고 암구호를 대듯 계속 쓰니? 하고 물었고 수언이 대단히 방어적인 표정이긴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써, 라고 대답했을 때 저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기묘한 감정이 있었다. 그건 오랜 시간을 건너온 감정 같기도 했다. 수언의 대답을 들은 뒤로 솔지는 관련한 주제를 끈질기게 물었다. 자신이 구독하는 평론가의 영화 리뷰를 보내기도 했다. 너도 이거 봤어? 어떻게 봤어? 항상 수언의 생각이 궁금했다. 수언과 함께 서울독립영화제나 여성영화제에 가기도 했다. 각기 다른 영화를 보기도 했고 나란히 앉아 같은 영화를 보기도 했다. 대학 때 함께하지 못한 일을 지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솔지는 좀 벅차기까지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솔지가 영화와 책에 대해 SNS나 블로그에 꾸준히 감상평을 남기는 반면 수언은 그런 걸 드러내는 데 인색했다. 쓰는 건 뭐야? 시나리오? 비평? 솔지는 계속 물었다. 수언은 언제나 이 초 정도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비평.



시루떡 같지 않니? 등은 거뭇거뭇하고 배는 하얗잖아. 솔지의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만큼은 수언의 머릿속이 밝아졌다.

수언은 늘 솔지의 목소리가 복잡하다고 느꼈다. 고민을 털어놓고 이런저런 의견이나 감상을 말할 때의 목소리에 레이어가 있다고. 겹이 있었다. 수언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솔지를 풍부해 보이도록 하는 매력적인 겹이 아니라 쓸데없는 겹이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스스로 처세를 잘한다고 믿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의식하는, (그렇지만 자신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믿는) 자의식이 도드라지는 사람의 겹이었다.

수언의 시선에 비친 솔지는 걱정하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고 고민을 이야기하는 데 너무 많은 말을 할애했다. 진짜 고민이라기보다 고민을 말하는 게 더 중요해 보였다.


수언은 어느 쪽 편을 들어줘야 할지 모르는 심판처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솔지의 얘기를 들었지만, 딴 생각을 하는 때가 많았다. 언제나 그랬듯 솔지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직도 진로 고민을 열심히 하는 데에 시간을 쓰고 있다니. 조용히 혼자서 결정하고 결정한 것을 살아가지 않고 아직도 흔들린다는 말을 저렇게 푹 빠져서 하다니. 이제 스물네 살이 아닌데.

우리는 곧 서른이고 어른인데.

취업 전 솔지는 수언에게 은행에 취직하라는 엄마와 다투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슬픈 눈으로, 영화 보고 책 읽고 그 주변에서 살고 싶은데 엄마는 상상도 못해. 절대 안 된대. 그리고 나도…… 그렇게 적은 돈으로는 못 살 것 같아. 솔지는 항상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근데 그건 내가 바라는 거고, 꿈이랑 현실은 다르잖아. 현실적으론 어렵잖아.

그런 말을 들으면 수언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건 수언의 삶이자 현실이었다.


수언이 솔지를 만난 그 카페는 말하자면 수연의 작업실이었다. 수언은 거기에서 영화비평서와 이론서와 영화감독들의 인터뷰집과 그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문학작품들을 허겁지겁 삼키듯이 읽었다. 그러면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첫 월급으로 입금되었던 백십만원이라는 숫자를. 몇해가 지나서야 이백만원을 겨우 넘긴 월급을. 대학에 다니는 동안 특별히 존경해본 적도 미워해본 적도 없는 교수라는 직업을 촘촘하고 꼼꼼하게 미워하게 되는 자신의 직업을.

수언은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영화평론가라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그 직업이 갖고 싶었다. 다만 핑계 대지 말자고 생각했다. 수언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되고 싶다고 해서 반드시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일은 아무에게도 없으며 자신 역시 똑같다고 잘하면 되겠지만 잘해도 안 될 수도 있는 거라고. 될 때까지 하겠지만 결국 안 되었을 때 누구의 탓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비장한 게 우습다고 할지 몰라도 그래야 했다.

자신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한 것까지만 후회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 이후는 생각하지 말자. 미래는 잘 모르니까. 안 되어도 누구를 탓하며, 그걸 가지고 핑계를 대거나 알리바이를 궁리하며 꿈을 포기했네 어쩌네 하고 연극적으로 과장되게 굴기는 싫었다.


수언이 보기에 그것은 아직 못 가진 것까지 가졌다고 생각하는 태도였다. 이를테면 솔지의 요리가 그랬다. 솔지는 그럴듯한 요리를 잘했는데 수언은 솔지의 메뉴 선택에서 항상 그런 태도를 느꼈다. 카나페나 뇨끼나 뱅쇼 같은 것. 진짜 좋아하는 건 아니고 멋진 걸 좋아하고 싶어서 먹는 듯한 것. 입에도 설은 맛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맛이 없지는 않았다. 수언은 그런 건 너나 나에게 안 어울린다고 그만 됐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막상 솔지가 차려주면 잘 먹었다. 그럴듯하게 살고 싶구나. 막 걸쳐서 몸에 설은 것이 솔지 그 자체인 것 같았다.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향하지만 익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허세로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솔지를 생각할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았는데 그때마다 수언은 조금 당황했다. 나도 어쩐지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잘 모르겠고 오로지 지키고 싶다는 태도만이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의 굴레에 빠질 때 그랬다. 자신을 돌아보면 그저 망하지 않는 것, 망하지 않음을 위해 전력을 다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다시 만나게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과거의 이미지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은 수언 주변에 솔지가 유일했다. 그래서 더 아무런 고민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솔지가 부러워하는 말없고 고고한 친구 역할이 좋기도 했다. 선택을 후회한다거나 하는 얘기를 부러 하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지금 하는 일이 만들고 싶은 책의 기획권도 없이 그저 들어오는 논문을 편집해 내면 되는 일이라고. 교수가 떠넘기는 치다꺼리를 전부 해내는 게 일을 잘한다는 평을 받는 길이고 그 와중에 그 해맑고 짜증나는 족속들에게 혐오를 품게 되는 일이라고. 사실 그 비평 공모에 당선되어 여기 아닌 좀더 나은 삶(거창한 게 아니라 같은 월급이라면 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쪽으로)을 상상하며 꿈에 부풀었다는 것도. 그런 얘기를 하면 어쩐지 솔지가 더이상 자신에 대한 호감을 품지 않을 것 같았고, 그러면 수언은 자신의 열심이 훼손되었다고 느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솔지는 서로의 밑바닥을 봐야만 진정한 사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스스로의 밑바닥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적인 인간들이나 그런 말을 한다고 여겼다. 밑바닥은 그렇게 보여주자고 마음먹는다고 보여지는 게 아니라 둑처럼 터지는 것이었다. 차오를 대로 차오른 물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둑이 터지고 마는 것이라고. 그날 터뜨린 것은 뭐였을까. 솔지는 생각했다. 민망하고 후회되면서도 이상하게 후련해서, 자신의 마음을 단일하게 정리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래서 수언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은가? 이대로 끝인가? 끝일 수도 있지. 장수언이 뭐라고. 그렇게 단박에 정리를 했지만 자꾸만 혀끝이 썼다.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얼굴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며 소매가 젖을 정도로 울던 수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술지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 혹은 하지 못한 일에 변명을 만들어내는 데 능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가르쳐준 것은 수언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었으면 했겠지. 솔지가 몇 번이고 진로를 고민하고 포기한 것에 대해 한탄과 아쉬움을 늘어놓았을 때. 늘 말이 없던 수언이 언젠가 냉정하고 박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학교 생활이랑 학점 관리는 내가 더, 내가 아는 애들이 더 치열하게 열심히 했는데 교수님이 알아본 애는 너뿐인 것 같아서. 치사하게 그랬어. 그때도. 네가 하는 건 다 부러웠어. 네가 들고 다니면 에코백도 좋아 보이고 셔츠에 청바지 차림도 있어 보였다고.

너는 나를 너무 좋게 봐. 나 그때 월급 백십만원 받았어. 그런 얘기를 너한테 할 수가 없었어. 네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데를 다니냐고 하면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았어. 카페 직원으로 살아도 백오십만원은 벌었을 텐데, 글 쓰는 곳 언저리에 있어야 좋아하는 일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아서 동아줄처럼 잡고 있었어. 그건 나한테 부적 같은 거였어. 네가 물정도 모르냐고 멍청하다고 한다고 해도. 나는 셈도 더럽게 못하는 주제에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소리는 또 못 들어. 자존심도 더럽게 세거든.


솔지는 억울한 듯 말했지만, 실은 스스로도 수언의 짐작이 맞았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어조는 공격적이지 않았다. 자신이 언제나 수언에게 파악당할까봐 노심초사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부끄러움과 함께 이상하게 희열이 느껴진 것은 수언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친구인 건 나밖에 없다니. 수언에게도 그랬구나. 수언에게 존재감이 있었구나, 내가. 영문 모를 기쁨 같은 게 스물스물 올라왔다. 솔지는 그런 자신이 너무 시녀 같았고, 수언 같은 애를 내가 왜 이렇게 미워하면서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수언의 마음에 들고 싶었다. 수언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걸 오 년이나 지나서야 말하고 있었다. 수언도 고백 같은 말을 해놓고 묘하게 부끄러워져, 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솔지가 주방에서 썰어놓은 연어 몇 점을 더 가져와 수언의 그릇에 얹어주었다.

연어 더 먹어.

... 고맙다.

그래도 오늘 내가 먼저 연락했지. 넌 그런 거 못하잖아. 너도 네가 너무 소중해서.


수연은 항상 솔지의 설익은 상태를 목격해왔으나 영영 설익은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늘 가고 싶은 쪽으로 가 있었다. 오 년 동안 솔지의 요리는 솔지의 경제력과 더불어 무궁히 발전했다. 솔지의 요리는 이제 수언에게 항상 맛있었다. 여느 식당 못지않았다. 싸우던 날의 크림파스타도, 싸우지 않던 언젠가의 에그인헬도. 오늘의 연어덮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솔지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맞아. 영화 안 중요해. 그땐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지금은 내가 포기한 게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어. 그리고 그냥 너랑 그런 얘기 계속하는 게 좋았어. 누구 영화가 좋고, 어떤 비평이 있고. 그런 말을 여전히 하는 세계에 발 걸치고 있다는 느낌. 나는 그렇게 써먹고 있는 걸 네가 진짜로 이뤘다고 해서 놀랐어.

축하해.

솔지야.

우리가 왜 오 년 동안이나 친구인지 알겠다.

솥지는 노래하듯 말했다. 내내, 수언이 과장되었고 연출되었다고 여겨오던 목소리와 말투였다.





근육의 모양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반쯤은 관상쟁이가 된다는 말을 은영은 믿지 않았다. 그것까지 너무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라고 믿는 편이었다. 얼굴에 삶의 시간이 드러나는 건 극히 일부라고. 일부를 가지고 아는 척을 하는 건 은영으로서는 좀 부끄러운 일이었다. 내가 그 사람 그럴 줄 알았잖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런 느낌이 좀 왔잖아, 하는 식의 화법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말을 자신만만하게 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조용히 손가락으로 반대 손등을 꼬집으며 버텼다. 그렇다고 얼굴에 드러난 일부를 보는 일에 아예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은영은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의 얼굴에 깃든 표정을 살펴보는 일을 좋아했다. 그 표정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거나 판단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1회 체험 수업을 마친 후 곧바로 등록하겠다고 말하는 재인의 얼굴에서 은영이 읽은 것은 기분이나 감정이 흐르지 않게 단단히 걸어두려는 의지였다. 낯선 곳에 발을 디디면 당연히 들 법한 어색함, 긴장 같은 걸 최대한 덜 표출하기 위해 애쓰는 표정.


그러고 보니 그것도 겨울이었네. 하고 재인은 조금 재미있어했다. 겨울이면 해가 바뀔 무렵이었고 해가 바꾸다는 자연의 사이클에 맞춰 몸도 바꾸고 싶은지, 재인에게는 유독 겨울에 일어나는 일들이 많았다. 만나던 애인들과 꼭 겨울에 헤어졌고, 헤어지고 나면 몸무게가 이삼 킬로그램씩 줄어 있었다. 이별 때문에 특별히 힘들지 않았는데도 매번 그랬다. 내 몸에 붙어 있던 그들이 떨어져나간 자리겠지, 재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믿는 쪽이 좋았다. 나도 애도할 줄 아는 사람이야. 몸으로 애도하는 사람. 스스로를 그런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이번 이별도 마찬가지였다. 전 남자친구가 된 남자친구를 카페에 남겨놓은 채 나와 걸으며 이별의 순간을 꼼꼼히 느껴보았다. 뒤통수가 당기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는 마음으로. 드라마에서는 이럴 때 꼭 뒤에서 누군가 쫓아와 붙들지만, 그 오랜 학습 때문에 한 번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다는 걸 잘 아는 마음으로. 단단히 팔짱을 끼고 옷깃을 여미고 바람이 사나운 겨울의 골목을 걸었다. 등이 굽지 않도록 허리를 계속 곧추세우며. 이제 더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 가는 마음. 원래도 없었고 정말로 없다고 인정하고 앞을 보고 걷는 마음. 그건 슬픔에 잠겼다가 빠져나오는 일이기도 했고 그런 감정에 취해 있으면 으레 조금 행복하기도 했다.


입을 뗄 수조차 없게 된 날이었다. 손가락 까딱할 힘이 없고 눈꺼풀을 들어올릴 힘이 없어도 그 사람을 욕할 땐 이상한 기운이 생긴다고 동기들끼리 자주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고 실제로 은영도 그 말을 끝까지 믿었는데, 어느 날 분노의 에너지도 고갈된 상태가 찾아왔다. 여기에 계속 있다보면, 저런 사람과 마주하며 살다보면 나도 어느새 저런 모양이 되어 있겠지. 그 생각에 몸서리를 쳤던 순간을 기억했다.

은영이 상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모두가 만류했다. 어딜 가도 똑같아. 월급 많이 주는데 더러워도 그냥 좀 참아, 욕하면서 다니는 재미도 있잖아. 앞에선 무시하고 뒤에서 욕하면서 다녀. 그 말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내 그 조언에 따르면서도 은영은 매번 가슴속이 기분 나쁘게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조언에 대해서라면 할말이 많았다.

나는 무시할 수가 없어. 편한 대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아. 그 사람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자기 모양을 바꿀 때마다 내 마음의 모양도 바뀌어, 따라서 싫었다 좋았다 하게 돼. 그게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이 내 모양을 바꾸는 걸 더 보고 있을 힘이 이제 나에게는 없어.

어떤 공간에, 집단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공간을 벗어나서도 계속 그 사람이 만들어낸 압력에 눌려 있었다. 퇴근을 하고도 계속 상사의 표정과 말투와 화법을 반복 재생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그만 생각하자는 생각을 수백 번 읊조려도 그만둘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뒤부터 은영은 물리적으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마음을 너무 붙이네요, 은영씨는. 그런 얘기를 한 건 동기 예은이었다. 예은에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상사에게 받았던 모멸감과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꼈는데 동시에 느껴지는 수치심은 비슷했다. 왜인지 부끄러웠고, 자신을 그렇게 부끄럽게 만드는 예은이 미웠다. 당신이 뭔데 그런 소릴 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나에 대해 뭘 그렇게 많이 아느냐고. 그러나 어쩐지 은영은 예은에게 기분 나쁜 내색을 할 수도, 따져 물을 수도, 예은을 미워할 수도 없었다. 예은의 말은 고요히 은영의 마음에 남았다. 따뜻한 물에 찻잎이 가라앉는 것처럼 마음 가장 밑부분에 내려앉아 사라지지 않았다.

대충 다녀요, 은영씨. 너무 마음에 들려고 하지 말고. 힘들이지 말고.


긴장했던 몸이 이완되는 느낌. 예은은 은영이 아는 사람 중 가장 서브텍스트가 없는 사람이었다. 있는 그대로 말했고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예은과 함께 있으면 은영은 몸에 힘을 주지 않을 수 있었다. 다른 동기들에게 꺼낸 적 없는 이야기를, 예은에게는 자꾸만 털어놓게 되었다. 예은은 행간을 읽어내는 데 지쳐 있던 은영에게 유일한 숨 쉴 곳이었다.



은영은 키가 백칠십 센티미터쯤 되었고, 몸이 근육으로 단단했으며 팔다리가 길었다. 언젠가 매트에 앉아서 해야하는 동작 중, 재인이 허리에 힘을 주어 온몸을 곧게 펴는 것을 힘들어하자 은영은 재인의 허리에 자신의 다리를 부목처럼 대주었다. 제 다리에 등을 붙여보세요. 힘 빼고 기대어보세요. 그 말에 재인이 등을 기대자 놀랄 만큼 단단하고 곧은 은영의 다리가 느껴졌다. 재인은 그 편안함을 기억했다.

무려 전 남자친구의 아버지와 누나가, 일방적으로 두 시간 전에 약속을 통보해 재인에게 한 시간 반 전에 예정되어 있던 필라테스 수업을 취소하게 만들었지만, 재인은 생각보다 놀라지 않았다. 어쩌면 예정된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전 남자친구와는 꽤 구체적으로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일반적으로 어떤 순서로 결혼을 진행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재인의 경우에는 먼저 함께 살고 있었다. 그가 프러포즈를 한 이유는 결혼을 목적으로 집을 구하는 일이 잘되었기 때문이었다. 재인은 프러포즈에 응했고, 곧 자신의 ’해본 것‘ 목록에 결혼도 올릴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꽤 설렜다. 재인은 생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이라면 대체로 하는 쪽이길 스스로에게 바랐다. 그는 다정하고 순종적인 편이었으므로 오래 함께 살 파트너로서도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재인의 취소 문자를 받고 은영은 어쩐지 마음이 허전했다. 하지만 이런 거절에 하나하나 마음을 쓰면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적응되지 않았는데, 곧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몇 차례 반복되는 번복과 취소 문자에 하나하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직업을 바꾼 것이 무색해지니까. 은영의 동료들은 은영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반응해? 그냥 일정이 변경된 것뿐이잖아. 그들의 말도 맞았다. 연락도 없이 오지 않은 뒤 불쑥 전화를 하거나 찾아와서 다음 스케줄을 잡아달라고 하는, 더 피곤하고 곤란한 경우도 있었다.

이 모든 게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않을까, 그저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마음을 놓아버릴 수가 없을까. 이러면 회사를 다닐 때와 똑같은 게 아닌가. 그럼 그건 어느 직장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아닌가. 강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은영은 그런 고민을 했다. 나는 그러니까 어디에 있건 존중을 받고 싶었던 것이라고, 직업을 바꾼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이 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그건 직업을 바꾼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걸 받아들이는 데 삼 년이 걸렸다. 은영은 자신이 언제나 느린 편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은 훌쩍훌쩍 넘어가는 시기에 혼자 찐득하게 머물러 있다고. 불량 액체괴물 같다고. 손에 묻지 않고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게 액체괴물의 특징인데, 나는 자꾸 손에 묻는 거지. 모양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오늘 은영은 오전 열한시, 필라테스 교습소에 가장 빛이 잘 드는 시간에 그 빛이 드는 풍경을 찍어 예은에게 보냈다. 그 시간에 보낸 카톡에 대한 답장이 저녁 여섯시에 온 것이었다. 예은에게서 온 짧은 메시지를 은영은 여러 번 읽었다. 어쩐지 낯선 느낌이 들어 체한 듯 가슴을 쓸어보았다. 그러나 그 문자들 어디에도 힌트는 없었다. 그저 짧은 말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 좋겠네요 (오후 6:22)

- 너무 부럽다 (오후 6:23)

내가 예민한가. 이렇게 순식간에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이렇게 느껴질 때면 당황스러웠다. 정말로 먼 거리감이었다. 이제 너와 나는 다른 곳에 있다는, 오전 열한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한 번도 휴대폰을 볼 수 없던 때가 은영에게도 있었다. 여유가 없어 누구에게도 관심을 줄 수 없을 때가. 먼 곳에서 예은은 하루 반나절 동안 아주 힘든 일을 겪고 담담하게 울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걸 이제는 알 수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은영은 마음이 조금 내려앉는 걸 느꼈다. 예은씨, 혹시 많이 힘든가요. 그 말을 하려다가 하지 못했다. 사실을 되물어봤자 사실일 뿐이라는 생각에 손가락이 자꾸만 멈췄다. (…) 은영은 속에 담긴 말을 고르다가 결국 가장 건져올리기 싫었던 문장에 머무르게 되었다. 바쁜 게 아닐지도 몰라. 힘든 게 아니라…… 힘들어도 이제 나랑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겠지.


힘을 주면 새로 나타난 근육이 조금 더 도드라져 보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찾아낸 것, 여러 번 써서 알아낸 것. 그렇게 생각하며 근육의 모양대로 배를 천천히 쓸어보았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어쩐지 자꾸만 손이 느려졌다. 옷을 다 갈아입고, 메고 온 목도리까지 다시 잘 두르고서 재인은 데스크에 몸을 가까이 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재등록하려고요.

고개를 숙여 데스크에 놓인 작은 피규어 장식에 시선을 둔 채 말했지만 재인은 자신보다 키가 훨씬 큰, 그래서 고개를 높이 들지 않는 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은영의 표정을 알 것 같았다. 큼직한 입매로 시원하게 웃고 있겠지. 활짝 열린 문 같은 표정을 짓고 있겠지. 재인은 그 환대의 감각에 민감했다. 과거의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했었지. 내 기준이 뭐든 간에 나를 좋아해주는 태도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와락 좋아하고.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그게 너무나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받는 게 중요해서 상대방의 표정만 살피고 자신의 표정도 비슷하게 지어 보려고 있는 힘껏 노력했던 시기가.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지금과는 정반대의 생활방식이 재인에게도 있었다.





척출기


왜 이 병에 걸렸을까? 그러다보면 너무 자연스럽게 지난해에 출근하던 학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길게 말하자면 길게도 말할 수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역겨웠다. 악질이고 저질이었다. 시선으로, 음성으로, 눈빛으로, 표정으로, 높낮이로, 욕설로…… 한 사람을 있으나 마나 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 장난감처럼 다루는 것, 킬킬대고 수군대는 것, 핥는 것처럼 훑는 것, 핥는 흉내를 내는 것, 손가락으로 모양을 만드는 것, 걸걸하고 탁한 남자 고등학생의 목소리로, 볼품없이 비쩍 마르거나 위협적으로 커다란 남자 고등학생의 몸으로….

정확하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진주종이 생긴 건 그걸 모두 견디고 전체적으로 더 순하고 선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마음 고생을 덜 할 수 있는 학교로 옮긴 뒤였다. 살 만했는데, 할 만했는데 어째서. 영은은 그저 그런 것이 아쉬웠다. 차라리 조금 일찍 아프지. 그 지옥 같은 곳에 울면서 출근할 때 아팠더라면 더 속시원했을 걸. 마음껏 저주하고 마음껏 미워하도록. 하지만 바라는 것과 도착하는 것의 시간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났다. 오래 있고 싶은 곳에서 오래 있지 못했다.


아직 완전히 청력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청력을 잃게 되는 것은 양쪽 모두가 아니라 오른쪽뿐이었지만 벌써부터 막막했다. 못 듣는 소리가 늘었다. 스스로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새어나가는 많은 소리 때문에 영은은 몸도 마음도 내내 긴장 상태였다. 아픈 귀에서는 다른 음이 들렸다.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보다 한 키 정도 높은 음역대의 목소리가 뒤따라 웅웅 울렸다. 노래를 들으면 노래의 화음이 들렸다. 영은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울리는 귀를 부여잡고 웃었다. 영은은 심각한 상대음감이었다. 절대음을 잘 찾지 못했다. 노래는 곧잘 부르는 편이었지만 그건 원곡을 잘 흉내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화음이라니. 이 신기한 일을 혼자서만 알고 있는 게 아쉬웠지만 설명하기에는 역시, 피곤했다.


최근에는 천 명 정도가 알 법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에세이나 게이 사진작가의 작품집도 계약했으며 계속해서 관심 분야의 전시회에 다닌다고도 설명해주었다. 그런 일도 있다는 것, 그런 삶도 있다는 것을 영은은 희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천 명 정도가 아는 영화감독의 삶은 영영 모르겠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수업을 들었던 친구가 점점 혼자만의 독특한 모양을 드러내는 것. 안정적이고 복지가 꽤 좋은 중견기업을 그만두는 삶도 있다는 것. 희재가 속한 어떤 집단에는 당연히 고기를 먹는 사람들보다 당연히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아직도 고기를 좋아하는 희재가 문득문득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 영은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고민을 희재는 거의 매일 한다는 것.


서로 아픈 부분을 보여줘야만 친구가 된다는 것? 내가 너무 건강한 사람처럼 보일 때는 오히려 나를 조금 배척한다는 것? 아픈 사람들이 자기 말고 다른 사람들은 아파본 적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을 때?

영은은 그 말에 좀 얼떨떨해졌다. 그래? 친구면 아프고 힘든 걸 털어놓게 되지 않나? 오늘만 해도 내가 너한테 가르치는 학생들 욕이랑 같이 일하는 기간제 교사 욕을 얼마나 했는데...... 그렇게 말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영은에게 희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친구한테 아픈 얘기를 털어놓는 거랑 아픈 얘기를 털어놔야 친구가 된다고 믿는 건 다르지. 근데 내가 말을 좀 그렇게 했나. 그러고는 한 손으로 자신의 몸통 주위에 작은 원을 그려 보였다. 딱 이만큼만 그래.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그냥 사람이라 그래. 사람은 사람을 지치게 하잖아. 뭐가 어때서라기보다 사람을 대하는 건 언제나, 가끔 지치는 일이잖아.

영은은 그런 희재를 두고 저렇게 자기 말을 자기가 반박하고 의심하고 수정하는 것도 희재의 세계에선 흔한 일일까. 하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그마한 자기의 세계 안에서 살고 서로 다른 분위기와 풍습과 규칙을 지녔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친구를 표본 삼아 그런 문장으로 정리한 것이 사회문화 과목 선생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어서 재밌었다.



자기 처지에만 코를 박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의정부에 있는 고등학교와 노량진의 독서실을 오가는 삶에서 지닐 수 있는 여유는 딱 그 정도였다. 자신을 몰아붙이는 정도로 남을 몰아붙이는 것.

그러나 주현은 그림 일을 꾸준히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일회성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는 것 같았고, 도대체가 어떻게 삶을 굴리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일과표가 잘 그려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음껏 좋아할 수가 없었다.

온통 주현을 생각하며 가늠해보다가도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 밑엔 내가 뭔데,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뭔데 저 사람을 걱정하나. 저 사람의 미래를, 저 사람과의 미래를 뭘 어떻게 그려보려고? 당장 수술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수술이 잘되어도 잘되지 않아도 먹고살 걱정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데? 이 나이에 시험공부 말고는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모르는데?

이전까지의 영은에게 미래는 중요했다. 자신의 미래가 좋았고 미래가 그려지는 사람이 좋았다. 함께 미래를 그릴 수 있으려면 지금의 하루 일과가 선명한 사람을 만나는 게 나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누군가가 자신의 연약한 면을 고백해주는 일은 생각보다 기쁘고, 흥미롭고, 짜릿했다. 나는 이제 너에게 그런 사람이구나… 그건 황홀감에 가깝기도 했다. 기쁨에 찬 감정들은 순식간에 고조되고, 차례로 떨어졌다. 그런 말을 들어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우리 사이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그 말을 잘 몰라요. 그 말 아래의 실체를. 심지어 정말로..... 잘 듣지를 못해요. 당신이 당신의 아픔을 말해도 나는 내 아픔에만 놀라요. 안 들려요?라고 잘못 들었을 때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던 느낌이 선명했다.

수술하고 어땠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그러지 않을게요.

그냥 아프고 불편하고, 다시 천천히 나랑 사귀는 느낌이죠. 어떤 사람은 변화하는 몸을 다 찍어서 남긴대요. 과정이니까. 그걸로 사진집을 출간했다더라고요.

나도 그러고 싶을 것 같기도 하고. 주현씨는 안 그랬어요?

네, 전 그냥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과거를 남기지 않은 채로.

잘 안 되죠?

안 되죠. 저는 그냥 저더라고요.





정체기


자리가 불편하거나 조금이라도 무리해서 식사를 한 경우에는 어김없이 토했으므로 식도는 힘없고 약해졌고 그 때문에 목소리는 작아졌다. 그런 사소한 것들에 한 인간의 성격이 얼마나 좌우되는지, 아니면 작은 일 하나하나를 문제 삼는 성격 탓에 그런 사소한 것들이 전부 문제로 다가오는지 가늠하는 시간이 내 하루의 절반이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는 동안 우연히 우리가 골몰하는 주제에 대해 사람을 모으고 글을 써서 소셜 펀딩을 통해 책을 내는 작업에 몇 번 참여하게 되었다. 개인 프로필은 각자 만들었는데 주로 자신이 지닌 소수자성이 드러나는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매번 ‘의지가 많이 약한 여성’. 그 외엔 나를 소개할 만한 말로 떠오르는 표현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장애인도 아니고 퀴어도 아니었다. 그들과 어울리는 일은 나에게 살아온 동안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던, 다른 종류의 소외감을 주었다.



은주는 저도요, 하고 살풋 웃으며 며칠 전에야 애인과 경주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렇군요, 경주 좋나요? 하고 묻자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보다는 확실히 정확하고 큰 동작이었다.

뭐가 좋나요? 하고 다시 문자 조금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아주아주 오래되었다는 점이요.

그 말에 나는 약간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오래된 게 좋나요? 하고 되물었는데 의외로 그 말에 은주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그러게요. 할 뿐이었다. 그 순간 은주와 나 사이에 존재하던 거리감이 단번에 삼십 미터에서 삼 미터 정도로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안도하는 표정. 나는 늘 상대방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찾으면 마음이 놓이곤 했다.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었다는 성취감은 내 안의 유능감을 고취시키고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를 상승시켰다. 상대가 내 맘에 들든 맘에 들지 않든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상대의 마음에 드는 일. 그게 중요했다. 은주에게 나는 좋은 인상으로 남겠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 부근에서 전신으로 따뜻한 물질이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명백해. 그런 면으로는 혜인이가 압도적으로 우위지. 은주는 상식적이고, 건강하고, 자신의 소수자적 위치를 크게 생각하지 않아. 거기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라 좋아하게 된 거기도 하지.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러니까...... 혜인이와 헤어지고 은주를 만나겠다고 한 건 내 선택이고, 이 선택을 해버린 이상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은주와 후회 없을 관계를 위해 노력하겠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이 선택은 하지 않을 것 같아. 혜인이와 나, 그리고 우리를 축복하던 오랜 친구들, 그 세계를 죽이고 나 홀로 다른 세계로 건너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내가 살해자 내지는 파괴자로 느껴져. 계속 혜인이를 만났더라면 살 수 있었을 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시시각각 사무쳐. 마음이 맞는 그 느낌은 다시 느낄 수 없겠지. 그 사실이 이렇게 참담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어

애인의 긴 답장. 그건 마치 잘못 보내진 편지 같다고 은주는 생각했다. 이걸 봐야 할 사람이 있다면 자신도 애인의 친구도 아니고, 애인의 전 여자친구인 혜인인 것 같다고.



눈을 동그랗게 만든 나에게 은주는 덧붙였다.

천마총이요. 들어가면 잠깐 경이로운데.... 돌아나오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과거를 아껴두려는 현재의 손길이 덕지덕지, 결국 현재만 남아 있어서. 저는 그게 참 위로가 되더라고요. 결국 지금이라는 것이. 그 얄팍한 게.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저도 할 거예요. 후회하지 않을 관계를 위한 그 노력을. 헤어질 마음은 없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요. 더 이상 물건을 사들이지 않게 됐어요. 저는 집을 꾸미는 걸 좋아하거든요. 영지는 그런 데 전혀 관심이 없어요. 러그나 좌식 테이블, 테이블보, 스탠드, 원목 협탁, 이불과 이불 커버, 쿠션, 그릇과 커피잔 세트, 인형과 피규어…… 그런 걸 너무 많이 사서 영지에게 매일 혼났어요. 혼낸 뒤에 영지는 항상 한숨을 쉬며 그래, 예쁘긴 하네, 하고 체념했고요. 그런데 그날 밤 이후 아직까지 아무것도 사지 않았어요. 죄다 무덤에 넣을 보물들인 것 같아서요.





쉬운 마음



그들은 감히 현정에게 다가가지도 못했다. 말도 못 붙이며 어려워했다는 것은 아니고, 모두 함께일 때는 찧고 까불고 현정에게 별의별 장난을 다 치다가도 막상 인간 대 인간으로는 한 발짝도 못 다가서는 눈치였다. 그애가 너무 완벽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하는 비굴한 태도가 남자애들 전반에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남자애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을 비웃었지만 비웃다보면 속이 쓰려지는 것을 느꼈다.


현정은 태도와 감각이 좋았고 거기에서 잘사는 티가 났다. 가방이나 재킷을 눈여겨보면 그것들은 반드시 명품 브랜드나 고가의 디자이너 제품이었고 손가락에 여러 개 끼운 실반지, 늘 걸고 다니는 목걸이도 비싼 제품인 걸 알 수 있었다. 현정이 가진 모든 아이템은 그가 그것들을 고심해 골랐으며 공들여 관리해 오래 쓴다는 느낌을 줬다. 보여지는 부분이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돈되지 않은 데가 없었다. 손톱에는 거스러미가 없었고 눈썹 주변에는 정리 안 된 잔털이 없었다. 피붓결은 언제 봐도 깔끔했으며 질 높은 관리를 받는 티가 났다. 그런 건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그런 위생관념이나 미용관념, 자기관리가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집단에서 자라온 태, 그런 게 흘렸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회사 복도에서, 휴게실에서 마주치는 우리 서로의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다 알면서도 결국 그 속엣것은 알 수 없었다. 우연히 마주치거나 점심을 같이 먹을 때 현정은 주로 가족 얘기를 했다. 가족 이야기를 그렇게 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 회사에 다니면서 알았다. 모두 사이가 좋고, 엄마와 쇼핑을 다니고 아빠와 드라이브를 다니는. 일 년에 한두 번은 가족여행을 가고 주말에 가족끼리 외식을 가기도 하는, 그게 보통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대학에 다닐 때까지는 가까워진 아이들끼리 주로 불행 배틀을 했던 것 같은데, 누가 더 불행한가를 겨루려는 게 아니어도 조금만 가까워지면, 조금만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라치면 우리는 가족 카드를 꺼냈다. 가능하면 불행한 쪽으로. 과잉되었던 면도 취해있던 면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이 IMF 때 망해서, 이런 인트로는 흔했다. 아빠 씨발놈이 술만 처마시면 패서, 하고 시작하는 이야기도 간혹 있었다. 사실 우리 엄마 아빠 별거중이거든, 하고 조심스럽게 내미는 카드도 있었다. 밝고 단순하고 귀엽던 수영도 우리 부모님 이혼했거든, 난 엄마랑 살고, 하는 얘기를 할 때면 항상 조금씩 긴장하는 얼굴이 되곤 했다. 그때의 나는, 우리는 그게 중요했다. 자신이 지닌 불행들, 억울하고 슬프고 답답한 일들이. 이제 그런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그런 곳에 있다.



그 일이 어떻게 현정의 귀에 들어가게 된 건지는 몰라도, 덕분에 나는 현정의 호감을 사게 된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젠가부터, 모두에게 동일한 양의 관심과 애정을 공평하게 나눠주던 현정이 나에게는 몇 초 더 오래 눈길을 둔다거나 회사 메신저로 내 퇴근 시간을 물어 같이 나가자고 하는 등의 관심 표현이 늘었다.

그런 사소한 차이에 대해 세선에게 털어놓고 싶어서 있잖아, 하고 시작하는 메시지를 몇 번이고 쓰다가 지웠다. 있잖아 나 회사에 후배가 있는데……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끝내는 참담한 마음으로 지우게 되었다. 현정의 이름 때문일 거야, 라고 생각했다. 페기나 딜리가 아니라 수영에 가까우니까. 그리고 어떤지 더이상 세선이 이런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한 번도 세선이의 마음을 알았던 적이 없었다.



나는 흔이 난 학생처럼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말에 화를 내고 싶은지 그애를 무시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할까? 무슨 말이 듣고 싶니? 내가 아는 건 보이는 네가 전부야. 나는 손톱도 예쁘고, 옷도 예쁘고, 가방도 예쁘고, 하지만 나는 너를 모르겠고…… 재욱이가 네 욕하고 다니더라. 알고 있니? 알고 있겠지. 새로운 연애는 하고 있느냐는 뻔한 질문은 하기 싫은데, 그 질문을 떠올리면 왜 화가 날까. 침묵의 시간이 길어졌다. 입을 다문 나를 따라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던 현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배, 저는요.... 사실 사람들이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한다는 게 좋아요. 이런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 너무 촌스럽고 의존적이고 속이 빈 것 같다는 결 알면서도, 그래서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가끔 이렇게 털어놓고 싶어져요. 저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가 저를 좋아하는 일이, 몹시 중요해요. 한없이 그쪽으로 몰두하면 좋지 않을 걸 알아서 계속 경계하고 그 외의 것들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도… 제가 하는 그 모든 일의 밑바닥에는 끈질기게 그 생각이 들러붙어 있어요. 본령처럼요.

나는 어떤 것보다 자신을 중요하게 여길 거라고 믿었던 현정이 그런 말을 했다는 데에 놀랐다. 그 고백에서 세선이 떠오른 것도.


혼자 잘 서 있고 싶어. 송화야. 아무에게도 영향받기 싫은데, 자꾸 끌려가기 싫은데 그게 잘 안 돼. 나는 그 사람 생각을 하는데 그 사람은 내 생각을 하지 않아서 서러운 마음, 그런 것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 송화야. 그게 언제였을까.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던 스물네 살의 봄이었나, 좁디좁던 세선의 자취집에서 또 취해 신세한탄과 푸념을 멈출 줄 모르던 스물다섯 살의 겨울이었나. 그 후로 세선과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없네.


그런 상념에 빠져들다가도 동시에 부루퉁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현정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속으로 빈정거렸다. 아 예, 사람을 좋아하시는구나. 그러시겠죠. 다들 널 좋아하는데 네가 모두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너처럼 매끈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애가 나에 대해 뭘 알겠어. 뭘 자꾸 알려달라는 거야? 그리고는 다시 놀랐다.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유치하게 구는 거야? 급격하게 취한 느낌이 들었다.

언니.

응? (얘가 지금 날 언니라고 부른 거야?)

저 언니 진짜 좋아해요.


언니 비밀 들었으니까 덤으로,

……

저도 하나 더 알려드릴까요?

(또 언니라고 한 거 맞지?) 그래.

현정은 거의 속삭이고 있었다. 즉석식품이지만 꽤 생생한 옥수수 알갱이를 이로 풍개며 나는 대답했다. 나는 현정이 준 거라면 편의점 콘 수프도 금덩이처럼 받는구나. 도대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묵묵히 수프를 떠먹었다.

저 레즈비언이에요.

어?

뭘 그렇게 놀라요?

아니 나는……

현정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샤넬 든 레즈비언은 처음 봐서.

망했다.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 말 한마디로 현정이 나에게 지니고 있던 손톱만큼의 호감, 어쩌면 동료의식, 어쩌면 호기심,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 따위는 한 줌 재가 되었겠지……





침묵의 사자


약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는 다면성 인성 검사라는 걸 했고 결과지에는 삐죽삐죽한 빙산 같은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높이 치솟아 있는 것은 불안, 강박, 우울이고 아래로 처박히듯 내려간 것은 거짓말의 척도라고 했다. 약을 먹지 않는 남은 하나의 척도가 재밌었다. 거짓말의 척도라니. 선생님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남이 보기에 단번에 알아채는 거짓말, 남을 충분히 속일 수 있는 거짓말을 하는 능력이 둘 다 최저라고 했다.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거의 없다고. 나는 내가 많이 감추고 숨기고 과장하고 거짓말하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직해서 내게 거짓말 같은 걸 할 리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런데 누군가 나를 속일 수도 있구나. 나에게 하는 말들이 거짓말일 수도 있구나. 그런 것을 거기에서 확인받자 왠지 좀 안심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은이 이혼하고 영국에 가겠다고 있을 때 뭐 이혼 가지고 그러느냐고, 그게 뭐라고 나에게서 떠나 멀리 가느냐고, 이혼을 했고 자시고 간에 너는 그걸 뛰어넘어 훨씬 멋진 사람인데 왜 그깟 일 때문에 내가 너를 자주 못 보게 만드느냐고 화를 냈다. 그것도 모자라 질투 좀 하는 게 뭐? 하고 재차 묻기도 했다. 네가 멋져서 질투하는 건데 왜? 그리고 그게 꼭 질투라고 할 수 있어? 그걸 알 수 있어? 지은은 묵묵했다.

……지영아, 자기가 하는 짓, 떠벌리는 말, 그게 다 질투라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어.

지은은 끝까지 나에게 뭔가를 알려줬고 나는 그게 싫어서 생떼를 부렸다. 나한테 친구는 너밖에 없는 걸 모르느냐고. 내 말에도 지은은 묵묵했고 나는 지은이 묵묵한 게 싫어서 더 지랄맞게 징글징글하게 지은을 몰아붙였는데, 결국 지은은 나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다. 울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야 너 정말 너무한다. 열네 살엔 벌써 다 큰 애늙은이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넌 성장이 그때 멈췄구나. 어쩜 그렇게 너밖에 모 로니? 니 슬픔밖에 모르니? 너랑 내가 몇 년이나 친군데…… 내 생각을 하긴 하니? 정말 하나도 안 하니? 넌 뭐가 문제야?

그러고는 울었다. 참지 못하고 너무너무 슬픈 얼굴을 하고서. 다른 것이 슬픈 게 아니라 정말로 내가 그런 인간이라.


- 이제야 미안하냐 꼴통아

- 용서해줘

- 용서한다. 사자처럼 넓은 마음으로

지은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용서한다. 그때도 그랬다. 지은은 이미 오래전에 나를 용서했다. 싸운 뒤 거의 즉시. 그것도 먼저. 유치하고 꼬여 있어서 지은을 슬프게 만든 건 나였는데 말이다.

- 무슨 일 있어?

지은이 다시 물었다. 없어, 보고 싶어서, 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결국 사실대로 말하고 말았다. 그런 내가 싫었다. 무슨 일이 있어야만, 나에게 무슨 일이 있어야만 지은에게 연락하는 못 말리도록 자기중심적인 내가. 먼 곳에 있는 지은이 물어봐줘서, 나는 처음으로 그 말을 꺼내보았다.

- 악플 받았거든

지은은 ㅎㅎㅎ 하고 웃었다. 지은의 낮고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웃음소리와 다르게 지은은 언제나 호방했다. 웃음 다음에 오는 말도 역시나.

- 속상해하지 마. 원래 있는 거야. 그런 사람들

그리고 덧붙였다.

- 등 쓸어줘야 하는데, 누구 없어? 등 쓸어달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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