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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해 Apr 30. 2024

<경주>, 무책임한 메일 게이즈  미화하기

예술인 척 해서 더 최악인 메일 게이즈. <경주>가 홍상수 영화와 비슷하다는 말은 홍상수에게 모욕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의 도처에 죽음이 거리낌 없이 산재해 있다고, 그래서 멋있는 영화라고 했지만 이 영화에 진짜로 산재한 건 죽음이 아니라 여자들이다. 죽은 형의 젊은 부인, 역시 남편과 사별한 찻집 주인, 알고보니 내 애를 뱄었다는 결혼한 후배, 자살한 모녀, 안내소 직원, 찻집 주인의 푼수떼기 친구, 중국에 두고 온 정실(이란 단어를 반드시 명기해주고 싶어지는;;) 부인.


오로지 주인공 최현의 흥미를 위해 소품처럼 배치된 여자들. 최현이 없으면, 최현이 바라봐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는 여자들. 최현과 남자들이 그 여자들을 거리낌없이 쳐다보고 불러내고 성애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뜯어먹고 상처받는 척하면서 상처 주고 모른 척하고 재단하는 것만 2시간 반 내내 지겹도록 전시한다. 한국/중국 이중 국적인 장률 감독의 경계인적 사유가 묻어나는 장면들에만 집중하고 싶지만 그보다도 장률 그 자신에게 더 중했던 게 분명한 '남자됨'이 돌출되기 때문에 실망스럽다. 그 시절 남자들은 얼마나 눈치도 안 보고 여자에게 찝쩍댔는지, 여자를 굴복시켜 별것도 없는 자기 서사의 양념 삼고 싶어 안달나 있었는지, 얼마나 자연스럽게 여자를 주변화하고 목소리를 뺏어갔는지만 상기돼서 진심으로 불쾌해진다.

최현의 진심(에 가까운 것)을 받는 유일한 상대인 공윤희조차 죽은 남편을 생각하며 최현의 귀를 만지기 위해 존재하는 신비로운 여자가 되는 판국에 다른 여자들의 비서사화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찍히는 존재'인 여정의 취급이 문제적인데, 시놉시스에는 여정이 최현의 과거 '연인'이었다고 명기되었지만 나는 절대 최현의 '연인'은 아니었다고 믿는다. 선후배 사이인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은 최소 성적 이용, 최대 성폭력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거라고도 믿는다.

여정과의 일을 함부로 망각하고 그때도 지금도 좋은 관계였으리라 착각하며 경주까지 내려오라고 요구한 최현의 권력은 얼마나 무심하고 이기적인가. 그런 최현에게 여정이 결국 '나를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마지막 문자를 보내게 만드는 감독 장률의 선택은 또 얼마나 처참하게 착취적인가. 여정의 문자는 로맨스적 관계 앞에 최후의 노예가 되어야만 했던 여성들이 굴욕적인 저자세를 취해야만 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해 괴롭다.


그러니 이 영화엔 의미 있는 은유나 고찰 따위가 없다. 일단 뭔가 무게를 잡고 싶으니 친한 형을 죽여놓고 시작하는 것뿐이다. 어디에나 무덤이 있는 도시를 로케이션 삼은 만큼 음울하고 진지한 '공기'를 지키고는 싶은데, 사실 진짜 관심은 성애적 대상이 되는 '여자' 쪽에 있단 것도 모른 체 하고 싶으니 자꾸 죽는/죽을 생각을 했던 여자들을 등장시키는 것뿐이다.


홍상수 영화에서 남자들이 대놓고 놀림거리로 전락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최현이란 인물의 고고한 품위를 어떻게든 상찬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도리어 저열해보인다. 홍상수 영화가 바보 같은 남자들에 대한 자학적 유머, 메타적인 해학의 경지에 도달했다면, 장률 영화는 그저 주제도 모르는 자기연민과 아련몽롱체의 착취뿐.

어쩌면 장률은 이창동의 내용물로 홍상수의 껍데기를 쓰려 한 것도 같지만 (실제로 그는 영화업에 발 들이기 전 글쟁이였을 때, 같은 글쟁이였던 이창동과 교류하며 한국을 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두 쪽 다 대차게 실패다. 최현이 다른 남자들 - 품위 없고 무례하고 여자만 아는 남자들 -과 얼마나 다르고 그래서 얼마나 고귀한지가 이 영화의 유일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찌질하지만 무해하고, 조용하지만 박력 있고, 소박하지만 권위 있고, 상냥하지만 깊이 있는. 즉 최현은 무기력하고 회피적인 성향을 무해함으로 포장해 여자에게 다가갈 무기로 적극 활용하는 찐따남들의 이데아나 다름없다. 이 ‘초식남’의 망상적 이미지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얼마나 잘 먹히는 표상이었는지, 지금은 왜 여자들이 그조차 비웃게 되었는지 한국 남성 포장 실패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우습기만 할 따름.


물론 이 영화의 홍상수적, 혹은 박완서적 (="남자답다"라는 빈약하고 허구적인 어구를, 현실의 허접하고 심약한 남자들을 죽어라 조롱하는) 표현의 여지를 착즙해볼 수도 있다. 최현이 무력화되는 순간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최현이 쉽게 불러낸 여정의 사진을 동의 없이 찍는 장면에서 부아가 치밀지만, 얼마 못 가 그 역시 일본인 중년 여성 손님들에게 배우로 오해받고 그들의 욕망에 따라 카메라 뒤의 주체가 아닌 렌즈 속 대상이 되는 장면은 조금이나마 통쾌함을 준다. ‘잘생겼으니까’ 최현에게 잘해준다는 경주의 여자들은 그 자체로 쉰내 물씬 나는 남성 로망의 결집체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사이에서 최현은 어쩔 줄 몰라하는 척 회피하며 표류하다가 흔들림 없는 외부의 가이드를 찾게 된다. 바로 찻집 주인 공윤희다.

윤희를 발견한 이후의 최현은 윤희처럼 무덤 위에 누워 망자를 부르는 듯한 장난을 치고, 윤희처럼 수전 위에 올라가며 이상하게 걷는다. 윤희의 독특함을 모방하는 최현은 얼핏 제 주변 남자들이 갖지 못한 생동감이나 인간미를 외부의 여자에게서 찾으려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서발턴에게도 개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말 갑자기 깨달아 흥미가 돋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너그러이 해석해주고 싶어도 결국 장률 감독에게 남성 감독의 무력화란 ‘여성화’와 동일한 의미기에, 그 여성화가 전통적인 멸시, 타자화, 주체의 자리로부터의 탈각과 상통하기에 결국 실망만 안긴다. 급조된 계모임 술자리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강사장(류승완)이 다른 마초 지향적 남성들(백현진, 김태훈)과 비교해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보라. 그는 다소 ‘여성스럽게’ 묘사되고 또 희한하게도 퀴어를 연상케 하는데 그 방식이 과히 튀고 우스꽝스럽다. 결국 장률의 젠더 감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이 괴로운 계모임 시퀀스에서 즉각 알게 되고 마는 것이다.


정점은 엔딩씬에서 끼어드는 7년 전 경주의 플래시백. 7년 전 형님들과 함께 경주를 방문해 들렀던 바로 그 찻집의 춘화가 있는 자리에서 최현은 (현실에선 2년 전 찻집을 인수한) 윤희를 다시 마주친다. 꿈인지 현실인지 사후세계인지 알 수 없는 이 요상한 조우에서, ‘형님’들은 최현이 춘화 속 남자를 닮았다고 했다가 “아냐. 현이는 여자를 닮았어”라고 번복한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이라고 죽은 형이 못박는다.

결국 여기서 이 2시간 반짜리 영화가 ‘형님’에 대한 최현의 애도를 가리키고 있었단 게 분명해진다. 수묵화를 닮은 흑백 톤의 옷을 입은 윤희는 이 형님을 너무나 끈적하게 애도하는 걸 지켜보는 그림 속 학에 지나지 않는다. 남자는 궁극적으로 남자만 사랑하고, 여자와의 성애를 전시하거나, 심지어 거기 미칠 수는 있어도, 여자 자체가 생각과 취향과 고통을 가진 존재라는 건 1초도 생각하지 못한단 사실 역시 선명해진다. 그러고 나니 그럼 여기 등장한 그 많은 여자들은 무엇을 위해 최현 눈앞에서 흘러 지나갔는가? 하고 의문만 남는 것이다.




뭐 영화의 빛깔과 형태만은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 그런데 겨우 그런 미감만 가지고 아무 생각 없는 내용물을 포장만 잘 하는 남감독 영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싫다. 이 영화를 좋게 봤다는 모든 이들에게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흐린다"는 모호하고 틀에 박히고 어디에서나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어구가 정말로 무슨 의미인지 설명할 수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이제는 이렇게 어떤 범주의 인간을 애달파하고 예찬하고 사랑하다 못해 나머지 인간을 죄다 따돌리는 영화를 보면 입맛이 딱 떨어진다. 어쨌든 여자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등장해서 남성의 정서적 자위를 위해 무슨 삼천궁녀마냥 투신하는 걸 보고 아름다운 낙화라고 즐거워하는 남감독을 잘 쳐줄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경주 여행 가서 큰맘먹고 미뤄뒀던 <경주>를 틀었는데 너무 별로라 화가 났다. 이 글을 쓰고 난 후에 장률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의 2006년 씨네21 대담을 읽게 됐는데.  장률 감독만의 무언가가 드러나길 간절히 바라며 기대를 걸며 영화를 본 것처럼 대담도 그랬고, 어느 정도는 흥미 있는 부분도 있긴 했는데, 역시나 그시절 중년 남성들의 저들만 웃겨하는 감수성이 자꾸 거슬린다.


발췌한 기사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장률 vs 정성일 대담 | 씨네21 2006/03/30



1989년부터 베이징에서 글을 썼다. 십몇년을 집에 있으려니 마누라에게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어서, 글을 쓰는 척했다. (웃음) 십몇년간 마누라 월급으로 애 키우고 장 보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 시기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되지 않는다. 사람이 바쁘게 살다보면 1주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고 싶은 시기가 있지 않나. 순 그런 심정으로 쉬었는데, 10년이 지나간 것이다. 항상 마누라한테 감사하는 마음이면서 한편으로는 마누라는 왜 이렇게 놈팡이 같은 남편과 사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분석을 해보니, 권력과 연결되더라. 어느 가정이든 누군가 돈을 벌면 권력을 가진다. 어차피 돈을 못 버는 사람이 눈치를 보게 되고. 권력자는 항상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그것도 낙이다. 아내도 이 남자, 말 잘 듣는구나, 이러면서 살았을 거다. 그런 걸 보면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자가 왜 여자한테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 찍는 게 행복하냐고 묻는데, 난 하나도 행복할 게 없다고 말한다. 이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게 결국 권력 때문이고, 영화를 찍는 건 그 반대에 서자는 것이지만 영화의 제작과정은 또 힘으로 진행된다. 그게 제일 싫다. 스탭들이 모두 함께 고생하고 좋은 생각도 많이 하는데, 결국 감독 혼자 잘났다고 결정하고, 나중에 좋은 결과도 다 감독의 몫이 된다. 하지만 영화를 찍다보면 그렇게 밀고 나가야 하니까 너무 힘들다.


마누라 운운하던 2006년


장률: 영화는 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그림을 보고 똑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소설은 각각의 사람마다 보는 게 다 다른데, 영화는 모두가 같은 걸 본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것, 관객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어색하긴 하지만 관객이 뭘 물어보면 내 생각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소리를 들었으니까 같이 얘기할 수 있다. 소설은 작가가 책을 쓴 다음에 이 세상에서 물러나는 것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중국에 전종서라고, 노신 이후 최고의 대가가 있다. 소설도 몇편 안 썼지만 아주 잘 썼다. 그러다가 그만두고 최고의 학자가 됐다. 그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찾아서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전화로 한다는 말이, “달걀을 사서 먹었으면 그걸로 끝이지, 알을 낳은 닭은 아무 의미없다”고. 난 문학과 영화가 그렇게 다르다고 본다. 문학을 하다가 영화를 하는 사람은 그 두 장르를 철저히 차단시켜야 한다. 그래서 소설 얘기는 하기 싫어한다.


이런 건 또 좋다가도.


정성일: 몇몇 기사에서, 소설과 이혼하고 감독이 됐다고 말한 것을 읽었다. 일종의 결단처럼 들렸다. 감독이 되겠다는 결정을 서른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내릴 때, 그것이 세속적인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영화의 특별한 힘을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문학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을 영화로 하겠다는 결정 때문이었을 텐데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장률: 그건 전주영화제에서 <당시>가 상영될 때, 관객과의 대화에서 누군가로부터 문학과 영화에 대해서 질문을 받고, 문학과 이혼하고, 영화와 결혼했는데, 지금 여자를 두고 옛날 여자를 이야기하면 이상하다고 농담을 한 거였다. 감독이 된 계기는, 아까 말한 게 있긴 하지만, 모든 일의 원인이 하나는 아니잖나.


ㅎㅎ제발... 여자 비유 없이는 문학도 영화도 얘기하지 못하는 수준이여


정성일: 지금의 중국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것은 세 가지 흐름을 포함한 질문이다. 하나는 장이모나 첸카이거처럼 제5세대라고 불렸던 감독들에 대한 것 그리고 지아장커와 그의 지하전영 친구들, 왕샤오솨이, 유릭와이 등의 감독들 혹은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서방세계에서는 지하전영으로 분류되는 왕차오, 왕빙 감독들, 마지막으로 이쪽에도 저쪽에도 포함되지 않는 <귀신이 온다>의 장원 감독과 같은 흐름. 이 세 가지 흐름을 바라보는 당신의 생각은 무엇이며 당신은 이 흐름 중 어디에 자리하고 있나.

장률: 사실 이건 질문을 받으니까 이제야 생각하는 거다. 장이모, 첸카이거가 지금과 같은 길을 간다고 많은 사람들이 욕한다. 지금 그 사람들 영화 중 좋아하는 것도 없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잘못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허우샤오시엔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 그와 같은 대만 감독과 중국 5세대 감독을 비교할 때, 대만 감독들이 오히려 훨씬 더 중국적이라고. 중국 5세대는 세계로 나가버렸고. 그 뿌리가 대만보다 훨씬 얕은 것 같다. 그러자 허우샤오시엔이 자기 분석으로는, 대만이 중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항상 전통은 변방에서 지키는 것이지, 중심에서는 오히려 다 사라진다. 5세대는 어느 시대에 비유를 맞추고 그것을 따랐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건 대만 감독들이다. 그들의 작품에는 일관성이 있다. 파동은 있지만 그 질이 떨어지지 않고 그 수준에서 계속 나아간다. 6세대 감독 중 제일 중요한 감독이 지아장커라고 본다. 그의 초기작 두 작품 <소무>와 <플랫폼>을 아주 좋아한다.


정성일: 특별히 영화 교육을 학교에서 받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영화를 통해 영화를 배운 셈이다. 특히 마음에 남거나 영향을 받은 영화와 영화감독이 있다면.

장률: 영화를 하기 전에는 예술영화는 한편도 못 봤다. 그러니 영향을 전혀 못 받은 거다. <11세> 전에는 할리우드영화밖에 몰랐다. <11세>를 찍고 나서, 차차 예술영화들을 찾아봤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내가 무슨 영화를 봤는데 너무 좋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다 웃었다. 그게 언제 적 영화인데, 그걸 이제 봤냐고. 요즘은 영화를 보면 식은땀이 난다. 내가 이 사람들 영화를 진작 봤더라면, 영화를 시작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헝가리 감독 중 미클로시 얀초라는 감독이 있다. 그런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다가 처음 영화를 봤는데 정말 놀랐다. 지난해 말에 또 다른 헝가리 감독인 벨라타르의 영화를 봤다. 고래를 잡아서 차에 싣고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이것도 놀라웠다. 그들은 큰 영화제에서 상도 못 탄 감독들인데, 상을 받은 영화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영화였다


정성일: 영화를 하다보면 힘든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이 감독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떠올리는 그런 사람이 있나.

장률: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11세>를 찍을 때 조감독이 영화학교 졸업생으로 젊고 박식한 친구였다. 현장에서 내가 촬영감독에게 이렇게 찍자고 말을 할 때면, 나를 도와준다는 게, 이 장면은 타르코프스키라면 이렇게 찍었을 거라고 살짝 말을 하는 거다. 근데 난 당시 타르코프스키가 누군지도 몰랐고, 그게 너무 싫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걷어치우라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얘기하지 말고, 내가 말한 대로 찍으라고. (웃음) 그래서 유명 감독의 이름만 들으면 나한테 불리한 것 같고, 짜증이 났던 경험이 있다. 그렇게 영화를 다 찍은 다음에 그 친구를 찾아가서 물어봤다. 그때 말했던 감독들이 누구였냐고. 그래서 다시 찾아봤더니 진짜 위대한 감독들이더라.


이런 부분은 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아 이해도 된다. 모두 그를 홍상수 키즈라고 진지한 조롱 반쯤 섞어 놀려대지만, 어쨌든 평생 부잣집 도련님인 홍상수와는 다른 디아스포라 노동자의 고집 같은 게 있는 셈이다.



장률: 당시를 원래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이태백. 그의 시는 정말, 사람 냄새가 난다. 어떻게 보면 중국 역사에서 가장 휘황찬란했던 시기가 바로 당시대다. 근데 그 휘황찬란했던 시기의 시가 제일 엄격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모든 중국 사람들이 슬프거나 기쁠 때 술이 취해서 한마디 떠올리는 시가 있다면 대부분 이태백의 시다. 엄격한 형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암송이 가능한 것 같다. 당나라 시는 할아버지부터 아이들까지 한수 두수는 꼭 외우고 있다.
모순으로 여겨지는 건, 엄격한 틀이 예술의 적이 아니던가. 예술은 자유분방해야 하는데, 이태백은 왜 그 틀 속에 들어갔을까. 어떻게 보면 예술과 예술가들이 자유보다 오히려 어떤 틀 속에 있을 때, 그 자유가 더 힘이 나는 것 같다. 일관성있고, 흐트러지지 않고. <당시>의 주인공은 방과 복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갇혀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복잡하다. 이태백이 그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듯, 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당시를 제목으로 선택했고, 중간중간에도 당시를 자막으로 넣었다.
중국 사람이나 한국 사람은, 중간중간 등장하는 당시가 그 단락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냐고 꼭 물어온다. 그 단락별 이야기에 맞는 시를 찾는 건 아주 쉽지만 고의적으로 그런 관계를 없애려 했다. 중국 사람 누구나 일상적으로 외우는 시를 쓴다는 원칙만 있었다. 옛날로 치자면 중국의 그림에 항상 들어가는 시와 같다. 서예가가 휘갈겨 쓴 그 글을 중국인들도 잘 못 알아본다. 그림을 볼 때 글 역시 그림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다. 나도 그런 뜻으로 당시를 넣었다. 영화가 워낙 답답한데, 중간중간 누구나 다 아는 시가 한번씩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유럽 관객이 시와 내용의 연결을 안 물어본다. 시를 그림처럼 받아들이더라. 하지만 내가 당시를 내용과 관계없이 썼다는 것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다. 형식주의자라고. 실제 그건 아닌데, 좀 억울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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