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생각 했을까?
9월 막바지가 되었다. 바빴다는 핑계로 브런치를 등한시한 지도 오래되어버렸다. 원래의 계획은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처음 교습소를 오픈할 때, 3월 새 학기 이벤트 겸 새로운 원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새 학기 이벤트를 했더랬다. 3개월, 6개월을 결제하면 각각 5%, 10% 할인을 해 주는 이벤트였는데,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기간임에도 쉽게 6개월을 결제 한 사람이 꽤나 있었다. 그 사이에 몇몇 아이들이 들어왔다 빠져나갔지만 아직은 유입보다 유출이 적다는 점에 나름 선방한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리고 9월은 3월에 있었던 6개월 이벤트가 끝나는 날이다. 몇몇 아이들이 그만둔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유는 가지각색. 갑작스러웠던 아이도 있었고 충분히 예상했던 아이도 있었다. 나는 마지막 수업시간을 마치고 가방 안에 한 달간 수업했던 교재와 숙제들, [도전! 100권 읽기]라고 쓰여 있는 독서활동 기록지까지 다 챙겨주고 못내 섭섭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는지 모르는지, 들고 휭 뛰쳐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꼼꼼하게 살폈다.
S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통통한 볼이 귀여운 친구였다. 방학 동안 있었던 특강에 참여했던 아이였는데 처음 보는 나에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넉살 좋은 아이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S는 마지막 수업시간에 동생과 함께 왔다. 동생은 형을 기다리며 책을 읽고, S는 나와 둘이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해 가며 수업을 마쳤다.
신발을 신고 교재들과 기록지를 다 챙겨준 후에야 S는 실감이 난 모양이었다. 살짝 당황한 듯한 얼굴이 내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나의 말에 S는 네, 하는 짧은 대답을 남기고선 꾸벅 인사를 했다. 잘 가라며 다정하게 등을 토닥여 내보냈는데, 짧은 복도를 걸어가는 S가 잠깐의 순간동안 수없이 뒤돌아보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냥 휙 들어가려다 결국 계단 밑으로 내려가는 S를 한참 바라보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여름방학이 마냥 좋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내내 오후수업만 하다가 오전에도 수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피곤하기만 했었다. 여름방학이 이렇게나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었다니 하고 이마를 짚기 일쑤였다. 그때 하는 수업들도 즐겁고 행복하다기 보단 그저 빨리 끝나버렸으면 하는 것들에 불과했다. 쉽게 걷지 못하고 수없이 돌아보는 S를 보며 조금 더 용기 내어 미친 척하고 한번 꽉 안아줄 걸 그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그 짧은 인연과 간단한 이별에도 수없이 머뭇거리는 작은 아이들은 정말 작구나.
나도 여럿 학원들, 과외들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 마지막 순간에 느꼈었던 시원섭섭한 감정. 나에게만 집중했었지 선생님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그 선생님들도 나를 보내면서 이런 생각했을까? 이런 후회들도 했을까? 이런 아쉬움들, 이런 걱정들도 나처럼 했을까? 이런 생각들이 들 때마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 선생님에게 묻고 싶다. 그 선생님의 표정들도 읽고 싶다.
방학 특강이 끝나서 늦잠을 잘 수 있는 순간도 생겼지만 귀여운 안경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었다. 이제껏 내가 지나왔던 수많은 학원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일찍 와서 혼자 자습하고 있던 나에게 건네주던 율무차 한잔이나, 밤늦게 집에 바래다주던 차 안에서 들렸던 라디오의 노래. 얼굴은 희미해졌지만 그때 전해줬던 마음들은 이렇게나 커버렸어도 불쑥 튀어나와 내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별 것 아닌 선행과 관심이었겠지만 여리고 작은 마음에는 큰 울림이 되어버린다는 거. 참 무섭지만 참 좋은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