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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본사는 투칸 Dec 27. 2021

한국엔 당근마켓, 일본엔 메루카리

아이 키우는 집의 필수품은 중고거래 앱이다

임신을 하고 육아용품을 마련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본격적으로 중고거래의 늪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보다 앞서 아이를 낳고 기른 친구들이 왜 그렇게 중고거래 앱을 매일같이 들여다보았는지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었달지.


그도 그럴게 아이가 쓰는 물건들이란 아이가 커져서, 혹은 아이가 싫어해서, 또는 아이가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시즌 아웃되는 주기가 매우 빠르다. 그래서 새 물건을 사더라도 몇 번 쓰지 못하고 창고 한 구석으로 내몰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자연히 아이들 장난감, 옷 등등 육아용품들이 중고거래 앱에서 큰 포션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육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만국 공통으로 겪는 점인지라, 여기 일본땅에서도 아이 키우는 집에선 중고거래를 일상처럼 하고 있으며, 특히 메루카리(mercari, メルカリ)라는 중고거래 어플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 당근마켓이 있다면 일본엔 메루카리가 있다


당근마켓과 메루카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거래 방법이다. 직거래가 기본인 당근마켓과 달리 메루카리는 택배거래가 기본이다.


택배거래의 경우 서로의 주소나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드러내야 한다는 점이 심리적 허들인데, 메루카리는 거래 상대방의 개인정보 없이도 택배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뜩이나 개인정보 노출에 대해 한국보다 몇 배는 더 히스테릭하게 반응하는 일본에서 1위 중고거래 앱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도대체 어떻게 개인정보 노출 없이 택배거래가 가능한가 싶을 것이다.


메루카리에 상품을 올려서 팔리면 발송을 위한 QR코드가 생성되는데, 근처 편의점이나 택배 영업소에 가서 그 QR코드를 기계에 읽으면 전표가 인쇄된다. 그 전표에는 발송자와 배송지의 정보가 입력된 바코드가 있고, 물건을 보내는 사람은 그걸 택배 상자에 붙이기만 하면 된다. 배송업체에서 전표에 인쇄된 바코드를 읽어 들여야만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의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서로의 개인정보를 몰라도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굳이 상자나 봉투를 따로 구할 필요 없이, 편의점이나 택배 영업소에 가면 메루카리 거래 전용 상자와 봉투를 팔고 있어서, 보내려는 물건 사이즈에 맞는 걸로 적당히 골라다가 넣어서 부치면 된다는 점도 편리하다. 여러모로 잘 궁리한 서비스라고 쓸 때마다 느낀다.




아무튼 그리하여 나도 임신 전에는 별로 들여다보지도 않던 메루카리를 임신 후에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모빌이나 장난감, 모유 쿠션 등 사용 주기가 짧은 것들은 주로 메루카리로 사모았는데, 괜찮아 보이는 것들은 ‘좋아요’를 눌러두고 다른 상품들의 시세를 보면서 값이 더 싸지지 않나 열심히 눈치싸움을 해야 하는 피곤함이 있었으나, 그래도 좋은 가격에 좋은 상품을 손에 넣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희열이 끓어올랐다. 이렇게 아줌마가 되어가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지극히 일본스러운 UI다. 한 페이지에 이 산더미같은 정보량이라니.




그렇다면 메루카리에서 거래한 대금은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물건을 수령한 구매자가 상품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구매확정 버튼을 누르면 판매자의 어카운트로 판매 수수료 10%를 뗀 금액이 포인트화 되어서 들어간다. 그리고 이 포인트를 은행 계좌로 현금화해서 보내려면 은행 수수료가 또 발생하는 아주 사악한 구조인데, 이런 구조 특성상 중고거래임에도 상품 가격이 그렇게 싸지만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판매자 입장에선 배송료와 수수료 떼일 것을 고려하면 마냥 저렴하게 내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끈질기게 에누리를 시도하는 사람은 있고, 개중에는 말도 안 되는 값으로 후려치려는 빌런도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수수료 없이 직거래로 현금박치기를 하는 당근마켓이 여러모로 유저 입장에선 좋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사실 당근마켓도 캐럿(キャロット)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일본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는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만 서비스 중이라는 점이 아쉽다. 다행히 내가 사는 지역은 서비스 권역이라 당근마켓을 몇 번 이용했는데, 역시나 수수료와 배송료가 발생하지 않는 서비스 특성상, 메루카리에 비해 전반적으로 중고 시세가 저렴한 편이다. 다만 아직까진 서비스 초기라 그런지 올라오는 상품 가짓수가 많진 않아서 결국엔 눈물을 머금고 메루카리를 찾게 된다. 당근, 힘을 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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