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세다. 24시간 모자동실.
일본에선 대부분의 경우, 자연분만은 4박 5일, 제왕절개는 6박 7일로 전반적으로 출산 입원기간이 한국에 비해 길다. 거기다 출산 당일을 0일로 치기 때문에 실제로는 저 기간에 +1일이 된다고 보면 된다.
한국처럼 조리원 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 않은지라, 대신 입원기간을 길게 해서 산모는 쉬면서 회복을 한다는 느낌인데, 문제는 일본은 대체로 출산 당일부터 24시간 모자동실을 권장(이라고 쓰고 반쯤 강요)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산후 입원기간은 곧 회복 및 육아 부트캠프 기간인 것이다.
나는 출산 당일은 신생아실에 아이를 맡기고 쉬겠다고 했으나, 그다음 날부터는 얄짤없이 24시간 모자동실이 시작되었다. 24시간 모자동실 첫날 밤, 밤새 울어대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 왜 우는지를 모르니 어떻게 달래야 할지도 모른 채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출산 후 첫 이틀은 1인실이 만실이라 4인실에서 지냈는데, 다행인 건 같은 병실에 입원 중인 다른 산모도 피차일반이라, 아이가 밤새 울고불고 난리를 해도 클레임 걸릴 일은 없었다. 매콤한 첫날 밤을 보내고, 나는 너덜너덜해져서 오전 중에는 신생아실에 아기를 맡기고 잠을 좀 자겠다고 했고, 조산사는 딱한 표정으로 그러라고 했다. 밤새 지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지, 아이도 신생아실에서 분유를 받아먹고 오전 내내 꿀잠을 잤다고 했다. 엄마도 아이도 모든 상황이 처음이었다. 힘든 밤이었다.
그래도 둘째 날부터는 허덕허덕이나마 조금씩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출산과 동시에 받은 아이의 수유/배변 표를 채우며 아이는 먹고 싸고 자고, 나는 먹이고 치우고 재우고를 반복했다. 수유/배변표는 매일 아침 조산사가 신생아실에서 아이의 체중과 체온을 재면서 체크를 하고, 아이가 순조롭게 먹고 싸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조언을 해줬다. 가령 소변 횟수가 부족하면 분유를 더하자고 한다던지.
사실 이 무렵은 육아 허니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이는 먹고 자고 싸고만을 반복한다. 때맞춰 먹이기만 한다면 딱히 울 일도 없고, 배만 부르면 안아 재우지 않아도 알아서 스르르 잠들어줬다. 오히려 너무 자서 중간중간 깨워서 먹여야 할 정도였다. 나는 그래서 내 새끼가 그 드물다는 알아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유니콘 베이비인줄로만 알았다. 이는 당연히 크나큰 착각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녀는 내 배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그녀의 등센서는 국보급 성능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4시간 모자동실은 빡셌다. 병원에서부터 잠을 포기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했다. 거기다 나는 산후케어를 신청해서 추가로 5박 6일을 더 입원을 했다. 결국 마지막 이틀은 밤에는 아이를 신생아실에 맡기고 새벽에 한번 유축만 하기로 했다. 사실 이때의 결정을 나는 후회한다. 마지막 이틀이 아니라 입원 내내 이랬어도 됐을 것을.
그렇다고 해서 24시간 모자동실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24시간 내내 아이와 부대끼며 이 작은 친구가 뭐 때문에 울고 보채는지 조금씩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이런 적응 과정 없이 바로 실전 투입됐다면 나는 더더욱 멘붕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에 단 한 달뿐인 소중한 신생아 시기를 내내 지켜볼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었다. 지금 종종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며 벌써부터 애틋함에 잠기곤 한다. 이 시기의 아기는 정말이지 매분 매초 성장한다. 오늘 아침의 얼굴과 오늘 밤의 얼굴이 다르다. 그 순간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보물이다.
코로나로 인해 입원 중 교육 프로그램이 다 중지되어 다른 산모들과 교류할 기회는 없었지만, 퇴원 후 아이의 1개월 검진 때, 신생아실에서 같이 자고 있던 친구들의 이름을 듣고, 그 엄마들의 얼굴도 보았다. 다들 병원에서 배운 대로 잘 해내고 있을지. 같이 힘내자고 손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마음으로만 응원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