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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lu Jun 10. 2024

[Review]고생 끝에 락이 온다[공연]

피크 페스티벌 2024를 다녀오며


 6월의 난지한강공원에서 초여름에 걸맞는 화창한 축제 ‘피크 페스티벌 2024’이 개최되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사랑하는 관객들과 함께한 이번 피크 페스티벌은 넬, 크라잉넛, FT아일랜드, 정용화, 소란, 글렌체크에 이르기까지 풍성한 라인업과 다양한 이벤트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번 피크 페스티벌 라인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밴드 아티스트 뿐만 아니라 김뜻돌, 마치, 다섯 등 음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예 아티스트까지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미 다수의 페스티벌에서 등장한 아티스트들이 야외 페스티벌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음악들을 선보여 더욱 풍성한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어느덧 페스티벌 관객 N년차가 된 필자는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오랜만에 참가한 축제에서 묵은 한을 풀고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투에 임했다. 뜨거운 햇볕을 막을 양산과 스탠딩에 있지 않을 때면 엎드리고 책을 읽기 위한 돗자리, 얼음물 두 병이 든 아이스박스와 도시락, 저녁이면 추워질 날씨를 대비해 담요까지. 페스티벌마다 반입금지물품이 다를지 몰라도 필수품은 공통적이기에, 모기 퇴치 밴드와 보조 배터리를 소중하게 품고 그늘진 자리에 돗자리를 폈다.



살아있는 음악, 우리들의 뜨거운 축제 



 페스티벌의 첫째 날인 1일 라인업에는 NELL, 김뜻돌, 너드커넥션, 로맨틱펀치, 마치(MRCH), 소란, 원위(ONEWE), 이승윤, 정용화, 크라잉넛, PL(피엘), 후이가 이름을 올렸다. 둘째 날인 2일 라인업으로는 FT아일랜드, PITTA(강형호), 글렌체크, 김윤아, 김필, 다섯, 몽니, 씨엔블루, 유라X만동, 이디오테잎, 하동균까지 총 23팀이 양일간의 무대를 채웠다.


 뜨거운 에너지로 스탠딩석의 관객들을 다함께 뛰게 만든 크라잉넛과 로맨틱 펀치, 부드러운 목소리와 무대 매너로 돗자리에 앉아 휴식을 즐기던 관객들까지 한마음으로 춤출 수 있게 한 소란, 특유의 까칠한 듯 솔직한 화법과 탁월한 가사로 청년층부터 중장년에 이르기까지의 팬덤을 확보한 이승윤과 음원과 동일한 감미로운 목소리로 관객들의 떼창을 이끌어낸 넬까지, <기억을 걷는 시간>을 흥얼거리며 첫째 날의 공연은 막을 내렸다.


 둘째 날엔 오랜 팬이었던 글렌체크와 김윤아의 무대가 있었다. 수직으로 내리쬐는 햇볕과 공연장의 열기에 지쳐있기도 잠시, 의 전주가 흐르자 스탠딩석은 함성으로 가득 찼다. <60's cardin>에는 음악에 맞춰 다 같이 뛰어놀며 현장의 에너지를 즐겼다.



 김윤아는 야외 페스티벌에서는 좀처럼 쉽게 볼 수 없는 무겁고 정열적인 멜로디의 곡으로 등장을 알렸다.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마음의 사치>와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라는 뮤지컬의 장엄한 느낌이 나는 선곡과 우아하고 관능적인 에티튜드와 함께 선보인 <체취>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뒤, “저희 1:1로 이야기 좀 할까요?”라는 대사와 함께 사랑, 행복, 꿈, 인생 등에 대해 이어서 이야기했다. 


 최근 발매한 신보의 <장미빛 인생>과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를 들을 때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그녀와 함께 겪어내는 기분이었다. 엄청난 집중력으로 숨결 하나하나에 영혼을 담는 목소리에 관객들도 숨을 참고 몰입했다. 찢어질 듯 커다란 목소리로 하나의 곡을 쥐어짜내듯 끝마치고는, “사랑만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지요, 꿈도 우리를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이끌고 가지 않나요?” 하며 나레이션하듯 나른한 목소리로 <꿈>, 을 이어 불렀다. 


 여러 대표곡들을 부르고 난 뒤 공연의 말미를 장식한 곡은 <다 지나간다>라는 곡이었다. 그래, 기쁜 것도 슬픈 것도 결국은 다 지나가는 것이로구나.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롭고 근사한 희망보다도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불변의 사실이라는 점이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페스티벌에 걸맞게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화려한 마무리도 그럴 듯했겠지만, 서사와 맞지 않는 인위적인 결말이 아니라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느낌을 받아 더욱 인상적인 마무리였다.  


재밌게 놀고 싶다면 깃발 근처로



 첫째 날은 이승윤, 둘째 날은 이디오테잎의 공연에서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태극기가... 아니 깃발들이 휘날렸다. 깃발에는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속 가능한 덕질”, “고생 끝에 락이 온다”, “락페의 민족”, “락페가 장난이야? 놀러왔어?” 


 ‘놀러온 건데요.’ 속으로 중얼대자 그 말이 들리기라도 하는 듯 어느새 깃발 근처에 커다란 원이 생긴다. 설마.. 여기서 슬램을? 



 설마 하는 것은 머지않아 역시가 된다. 슬램(Slam)은 스탠딩석 한복판에 둥그런 원을 만들어 서로 몸을 부딪치는 놀이다. 시작은 서클핏(Circle Pit)부터다. 놀이문화에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질서는 필요하기에, 슬램을 만들 때는 늘 중앙에서 타이밍을 살피는 일종의 지휘자 역할을 맡은 누군가가 존재한다. 그가 천천히 달리며 원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는 동안, 원은 서서히 확장된다. 음악이 절정에 이르면, 공간을 정리하는 타이밍에 맞춰 이들이 수평으로 내려놓은 깃발을 수직으로 들어올린다. 오랜만에 마주한 슬램에 필자 역시 팔꿈치를 모아 가드를 만들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늪으로 스며들었다. 


 그뿐인가? 슬램존 안에서는 슬램 외에도 허공으로 싸우듯 팔다리를 휘두르는 모싱(Mosing)과 관객석에서 가운데 지점을 기준 삼아 두 편으로 나눴다가 서로를 향해 달려나가 부딪치는 '월 오브 데스(Wall of death)'도 이뤄진다. 음악에 맞춰서 팔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방방 뛰는 '스캥킹(Skanking)'을 하는 이들도 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이름 모를 이들과 잠시나마 나눈 소속감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다시 페스티벌을 찾게 되는 이유가 된다.


*


 피크 페스티벌 2024에서 유독 돋보인 부분은 아티스트들의 공연 간의 산뜻한 대기시간이었다. 강렬한 음악과 함께 살아있음을 느끼는 'ALIVE', 음악을 통해 공감을 나누는 'WITH'로 두 개의 스테이지를 나란히 구성하여, 한 아티스트의 무대가 끝나면 바로 옆에서 다음 무대가 이어지는 구성을 취한 것이다. 그동안 방문했던 여타 페스티벌들은 스테이지가 분산되어 있어도 긴 대기시간으로 인해 타오르는 햇빛과 무더위에 지치기 일쑤였는데, 이번 피크 페스티벌에서는 주어진 시간을 엄수한 진행 방식으로 인해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셔틀버스와 물품안내소 안내 등에 있어서도 전체적으로 잘 관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셔틀버스의 시간표나 배차간격을 명시해두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마지막 아티스트의 공연 후 물밀 듯 밖으로 빠져나오는 관객들이 질서정연하게 대기할 수 있도록 많은 인원들이 관리를 하고 있어 페스티벌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좋은 인상을 가져갈 수 있었다.


 오랜만의 페스티벌에서 펜데믹이 앗아간 기쁨들을 마주하며 가슴이 끓는 기분을 느꼈다. 아직 6월뿐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무르익은 여름에 방문할 다른 페스티벌들을 기다리며, 현생을 버텨내자. 고생 끝에 락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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